600년만에 나타난 왕씨족보와 옥새

 2020.11.1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는 덕망으로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를 빛내이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체적립장에서 5천년민족사를 정립하시면서 재평가하여 내세워주신 력사적인물들중에는 고려태조왕인 왕건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왕건왕릉은 통일국가였던 고려를 상징합니다. 력사문화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는데서 쌓으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우리 민족뿐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다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1권 408페지)

왕건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건국자이다.

주체81(1992)년 5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성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는 왕건의 릉을 찾아주시였다.

왕건의 릉은 자그마하고 보잘것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웬만한 지주묘같이 조촐한 고려왕의 릉을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태조왕은 고려국가를 창건한 시조왕인데 왕릉이 초라하다고 하시면서 력사학자들이 태조왕릉을 고증하고 건축가들과 토론하여 잘 꾸리기 위한 안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는 조선반도의 첫 통일국가의 창건자인 왕건이 이룩한 업적에 대한 응당한 평가와 함께 력사유적으로서 왕릉이 가지는 귀중한 가치에 대한 깊은 고려가 담겨져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씨가문의 후손들은 몇밤을 감격의 눈물로 지새우다가 대대로 고이 간직해오던 가보인 왕씨족보와 옥새를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기로 하였다.

그 왕씨족보와 옥새로 말하면 1392년 고려왕조가 무너진 후 왕씨일족참살을 피하여 요행 목숨을 건진 몇몇 왕씨후손들이 장장 600년을 숨어살면서 보관해온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왕씨족보와 왕의 옥새를 보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족보에 있는 왕건의 초상을 보시고 화상을 보니 그가 아주 잘 생겼다고 하시며 개성왕씨족보와 왕건이 쓰던 도장을 잘 보관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왕씨가문 후손들의 소행을 기특하게 여기시여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과 발기에 따라 시작된 왕건왕릉개건공사는 주체83(1994)년 1월에 완공되였다.

왕건왕릉은 5만 5 000m2 넓은 부지에 왕릉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크고 훌륭하게 개건되였다.

왕릉안에 있던 벽화와 유물들도 영구보존되여 참관자들에게 보일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고려태조왕건왕릉개건비》라는 친필을 써주시고 왕건의 생일인 1월 31일에 왕릉개건식을 의의있게 하도록 해주시였다.

이처럼 만민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는 덕망으로 민족의 력사를 찬란히 빛내여주시였을뿐아니라 수백년세월을 두고 말 못하던 사람들의 그늘진 마음속에도 행복과 기쁨의 꽃을 활짝 피워주시여 로동당시대의 사랑의 전설을 창조하시였다.

600년만에 나타난 왕씨족보와 옥새에 대한 이야기는 5천년민족사를 정립한 김일성시대의 전설로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