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로 바꾸어드리신 가방

 2021.4.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생애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험난한 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한생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생애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의 가장 고결한 한생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얼마나 불철주야로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였는가는 장군님께서 쓰시는 가방을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네번이나 고쳐만들어드린 사실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새 가방을 장만하는것은 낡은것을 새것으로, 색갈이나 모양을 더 좋은것으로 바꾸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의 가방을 여러번 고쳐만들어드리게 된데는 흔히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있을수도 없고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류다른 사연이 있다.

네번이나 고쳐만들어드린 가방에 대한 이야기, 이것은 당과 국가의 천만가지 일을 돌보시며 불철주야로 사업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생활에서만 있을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 일군이 처음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서류가방을 새로 만들어드린것은 주체63(1974)년 정초였다.

그무렵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실 력사적인 시각을 앞두시고 참으로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집무실창문에는 밤마다 불이 꺼진적이 없었으며 장군님께서 언제 주무시고 언제 휴식하시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상한 정력으로 하루를 열흘, 한달맞잡이로 일하시면서 회의에 가실 때나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실 때나 댁으로 가실 때나 늘 가방에 한가득 문건을 가지고다니시였다. 그리하여 회의를 지도하시면서도 행사를 돌보시면서도 영화나 가극을 보시면서도 기차나 승용차안에서도 지어는 짧은 식사시간에도 쉬임없이 문건을 보시며 비준하시고 결론을 주시고 해당한 대책을 세우시군 하시였다.

날이 감에 따라 위대한 장군님께서 들고다니시는 문건의 량과 부피는 늘어나고 가방은 어방없이 작아졌다.

그리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방에 가득 문건을 넣으시고도 부족하시여 그만 못지 않은 량의 문건을 가방우에 겹쳐들고 다니시였다.

문건을 늘 가방우에 겹쳐들고 다니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를 덜어드리기 위하여 생각던 끝에 일군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쓰시던 가방의 두께보다 두곱이 되는 새 가방을 만들어가지고 장군님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문서들이 무드기 쌓인 책상을 마주하시고 문건을 검토하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 일손을 멈추시고 일군의 인사를 받으시고 새로 만들어온 가방의 크기며 겉과 안을 살펴보시며 큼직해서 좋다고, 잘 만들었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사실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면서 장군님께서 자신과 관련한 일로 하여 이처럼 만족해하시고 자신께서 사용하실 물품을 이렇듯 기꺼이 받아주신것을 일군은 이때 처음 뵈옵는것 같았다.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를 다소라도 덜어드리기 위하여, 장군님의 건강을 념려하여 일군들이 말씀을 올릴 때마다 그것을 한사코 막으시며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만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던 장군님이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날은 새로 만든 가방을 보시고 가방에 손수 문건을 가득히 넣어보시며 때마침 가방을 크게 잘 만들었다고 거듭 치하의 교시를 하시는것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하시는 일이 너무도 적다고 생각하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고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려면 하셔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고 생각하셨기에 이처럼 작은 가방을 큰 가방으로 흔연히 바꾸신것이였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신 새로운 력사적조건에 맞게 당사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마련하시기 위하여 낮에 밤을 이어 모든 정력을 다 바치시며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관철하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는 가운데 어느덧 위대한 장군님의 가방은 또다시 작아지게 되였으며 장군님께서는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가방우에 많은 문건들을 겹쳐가지고 다니시게 되였다.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일을 하고는 일정한 휴식을 하며 피로를 풀고 로동능력을 회복한 다음 다시 일을 한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쉬임없이 사색하시고 탐구하시고 사업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하루하루는 로동과 휴식의 한계가 없었을뿐아니라 보통의 시간척도로는 결코 잴수도 없는 거창한 사업으로 충만된 가장 긴장한 분과 초의 련속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잠시라도 쉬여주실것을 바라는 우리 인민의 간절한 념원을 생각하면 가방은 응당 더 작아야 할것이지만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매일매시각 기다리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방이 지금보다 응당 더 커야 했으므로 일군은 더 큰 가방을 만들어드리면서 장군님께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드리기로 하였다.

세번째로 가방을 만들어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였을 때 장군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손수 가방을 열어도 보시고 문건을 넣어도 보시며 지금 쓰는 가방보다 두배는 더 문건을 넣을수 있을것 같다고 여간만 기뻐하지 않으시였다.

만면에 웃음넘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더 말을 잇지 못하던 그 일군은 장군님께서 안색을 달리하시며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거듭 물으셔서야 다문 몇순간이나마 쉬여주실것을 그토록 바라는 혁명전사들, 온 나라 인민의 간절한 념원을 말씀드렸다.

일군의 이야기를 신중히 들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둠이 깃든 수도의 밤하늘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쳐오시며 편히 쉬지 못하시는데 자신께서 어떻게 잠시라도 쉴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그저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것이 안타깝다고 하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너무 무리하시는데 대하여 념려하시였고 그후 당중앙위원회의 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여 장군님의 사업을 잘 받들어줄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후에 이 사실을 아시고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전사들의 건강을 그처럼 극진히 념려해주시는데 우리가 열밤, 백밤을 새운들 무슨 일이 있겠는가고 교시하시였다.

가방에 깃든 사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가방은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작은 가방》으로 되였고 네번째로 더 큰 서류가방을 새로 만들어드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한생을 수놓아오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걸어오신 그길을 오늘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끊임없이 이어가신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오늘도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위대한 헌신이 있어 우리 인민은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