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권하신 청수봉전

 2021.4.12.

온갖 꽃이 만발하는 4월의 강산은 한없이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시고 우리 인민을 은혜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흠모의 정으로 물결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대해같은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닌 성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품에 안아 믿음을 주시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영원한 동행자로 내세워주시였다.》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생애의 전기간 언제나 인민대중속에 들어가시여 고락을 같이 하시며 그들의 속생각까지 다 헤아려주시고 보살펴주신 민족의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국내와 국경일대의 넓은 지역으로 확대강화하시던 주체25(1936)년 11월 중순 어느날 천도교도정 박인진이 장백현 종리원장 리전화와 그의 아들, 풍산의 리윤직 등 여러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사자봉밀영으로 찾아왔다.

전국의 천도교 29개의 포들중에서 가장 큰 포조직의 하나였던 지원포의 도정인 박인진은 일명 령북도정으로 불리웠는데 그는 여러개 군의 종리원을 관할하면서 교인들을 지도하고있었다. 그는 천도교도로서의 오랜 경력과 풍부한 지식, 강직하면서도 너그러운 성품으로 하여 관할하의 수십만 교인들이 우상화하면서 따르는 사람이였으며 중앙의 상층교직들속에서도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인진일행이 조국광복회의 취지를 찬동하고 찾아온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를 뜨겁게 맞아주시고 사령부귀틀집에서 밤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들과 담화를 하시면서 천도교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달리 조선의 《한울님》을 믿는 종교인데 자신께서는 나라가 있어야 《한울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자 박인진은 자기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보고서야 왜적을 몰아내고 《포덕천하》하여 《지상천국》을 세울 참다운 길을 찾게 되였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큰절을 올리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무조건 타도한다고 하는 일본놈들의 악선전에 대한 장군님의 고견을 들었으면 한다는 박인진의 청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천도교인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해방의 길에서뿐아니라 조국이 해방된 다음에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시간이 퍼그나 흘러 저녁 9시가 되여올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 한그릇을 정히 떠오도록 하시고 박인진도정에게 청수모실시간이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순간 박인진도정일행이 어떻게 자기들의 내속까지도 그리도 잘 아시는가고 하면서 깜짝 놀라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어찌 대구 장대에서 참을 당한 최수운대신사의 신혈을 모르겠는가고 하시며 어서 청수를 봉전하라고 하시였다.

저녁 9시가 되면 가족단위로 또는 개별적으로 있어도 어김없이 해야 하는 계률까지도 다 헤아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박인진은 너무도 감격하여 장군님은 정말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실 대영걸이시고 천도교인들이 숭상해야 할 대신사이시라고 하면서 장군님은 진정 조선의 《한울님》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니 자신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진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오직 조선의 아들로서 나라와 민족앞에 지닌 의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여러날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박인진을 비롯한 교인들은 장군님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절대지지찬성한다고 하면서 진정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의 《한울님》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휘하에 교도들을 묶어세워 광복성전에 떨쳐나설것을 맹약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빨리 결심을 내리게 된것은 전설적영웅으로 인민들속에 널리 칭송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권위와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조국광복성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의 사상에 크게 공감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한없이 겸허하고 소탈하신 품성과 너그러우신 도량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그들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의탁할수 있게 하는 대성인의 품이기때문이였다.

박인진은 위대한 수령님께 맹약한대로 천도교조직망들을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으로 전환시키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 많은 교인들을 광복성전에 불러일으켰으며 1937년 10월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악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희생되는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훌륭히 싸웠다.

천도교도정 박인진은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속에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