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원격교육학부 리창수
2021.6.25.
오늘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며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의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향하여 힘찬 진군을 다그치고있다.
지난날 외래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력사마저 외곡당하였던 우리 조국이 자기의 민족사를 되찾고 온 세상에 그 존엄을 높이 떨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빛나는 예지와 과학적인 통찰력으로 외곡된 력사문제를 주체의 원칙에서 바로잡아주시고 우리 력사학자들을 자애로운 스승의 손길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 력사학자들속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속에서 우리 민족사를 빛내이는 길에 한생을 바친 권위있는 력사학자인 김석형선생도 있다.
김석형선생이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뵈옵고 가르치심을 받은것은 주체36(1947)년 10월 4일 김일성종합대학창립1돐 기념전람회장에서였다.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창립1돐 기념전람회장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오늘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과학적세계관에 튼튼히 서서 우리 나라 력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우리 인민의 우수한 전통과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켜 인민들을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여야 하겠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나라가 해방되였으나 력사연구의 목적과 과업,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견해를 세우지 못하고있었던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눈앞이 확 열리는것 같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석형선생이 과학연구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할 때마다 높이 평가하시며 연구방향도 제시해주시고 더 높은 연구성과를 이룩하도록 이끌어주시고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41(1952)년 4월 12일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송리에 자리잡고있던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으시고 김석형선생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학부의 교육사업, 특히 조선력사의 교육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참으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선전하는것은 우리 인민들을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우리 당과 인민 앞에 맡겨진 첫째가는 혁명임무는 조선혁명을 잘하는것입니다. 조선혁명을 잘하려면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
《김일성전집》 제14권 453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우리는 우리의것을 가지고 인민들을 교양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국의 력사와 문화를 옳게 정립하고 체계화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주체적인 력사연구의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김석형선생의 가슴을 감격과 흥분으로 높뛰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신심과 옳은 방법론에 기초하여 력사연구에서 성과를 내고있는 김석형선생을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사랑 과 믿음속에서 김석형선생은 《조선봉건시대 농민의 계급성》, 《량반론》을 비롯한 가치있는 론문들을 련이어 연구집필하였으며 이어 력사적으로 조선사람들이 일본문화의 발전에 준 영향을 종합체계화한 론문 《초기조일관계연구》를 발표하여 세계력사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석형선생의 이러한 연구성과에 대하여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자애로운 스승의 손길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때로는 우리 나라 력사와 민족문화연구에서 복고주의와 허무주의적편향을 다같이 배격하고 주체성의 원칙과 로동계급적원칙, 력사주의원칙을 철저히 구현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고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와 창조의 력사를 기본으로 하여 민족사를 연구체계화할수 있는 력사서술의 근본방향과 방도도 비범한 예지로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천수백년동안 내려오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살수대첩》의 위치문제도 바로잡아주시였고 원시사회와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도 명철하게 해명해주시였다.
주체적예지와 과학적통찰력, 해박한 지식으로 력사학의 중요한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김석형선생에게 그 어디에서도 배울수 없었던 민족사에 대한 새로운 견해와 풍부한 지식을 심어주었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5천년민족사의 기둥을 세워주시고 빛내주신 민족의 어버이,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구석기시대의 유적들이 발굴되여 구석기시대의 력사가 전기로부터 중기와 후기에 걸쳐 중단없이 발전하여왔다는 사실이 론의할 여지없이 확증되였으며 인류발생발전의 여러 시대 사람들의 화석이 발굴되여 조선사람의 원인, 고인, 신인단계를 거쳐 이 땅에서 살아왔다는것이 명백히 증명되였다.
동방천년강국이였던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왕릉과 조선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태조 왕건왕릉도 민족의 국보로 웅장하게 개건되고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이 로동당시대에 와서 비로소 실재한 인물로 발굴고증되여 우리 민족이 동방에서 제일먼저 문명사회로 이행하여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다는것도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를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는것이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석형선생을 자신의 곁에 데리고다니시면서 력사연구의 방법론을 가르쳐주시고 력사연구가 명실공히 조국과 민족을 위해 복무하는 참다운 애국으로 되도록 주체의 신념을 심어주시였으며 그를 국제무대에도 당당히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사를 빛내이는데 한생을 바쳐가는 김석형선생에게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고급승용차도 보내주시고 집에 들어가서도 불편없이 연구집필할수 있도록 훌륭한 고급살림집도 마련해주시였으며 사회과학원에 1부원장직제를 두어 김석형선생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이렇듯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위대한 사랑과 믿음에 떠받들려 80고령의 나이에도 김석형선생은 《삼국사기》주해원고 6천매의 집필을 짧은 기간에 완성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정녕 김석형선생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은 령도자이시기 전에 주체의 신념을 심어주고 애국의 넋을 키워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시였고 걸음걸음 따뜻이 이끌어주신 친근한 스승이시였다.
이처럼 김석형선생의 한생은 자애로운 스승, 위대한 민족의 어버이를 모셔야 평범한 지식인의 삶도 참다운 애국애족의 길에서 영생할수 있다는것을 가슴뜨겁게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