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경위
2020.10.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49(1960)년 10월 11일 불후의 고전적로작 《가야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옳게 인식하여야 한다》를 발표하시였다.
뜻깊은 이날을 맞으며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로 우리 민족사연구에서 제기되는 미해명문제의 하나였던 가야문제를 명철하게 밝혀주신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새겨보게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 전제밑에서 보면 진국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고있던 변한지방에서 발생한 6가야가 원시상태에 머물러있었다거나 원시상태를 겨우 벗어났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될수 없다고 봅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127~128페지)
삼국시기에 우리 나라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가야라는 봉건국가가 존재하였다.
금관가야와 대가야,성산가야와 소가야,아라가야,고녕가야 이렇게 6개의 소국들로 이루어진 가야국은 대체로 오늘의 락동강서쪽 경상도일대에 자리잡고있었다.가야국은 동쪽으로는 신라,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고있던 엄연한 하나의 국가였다.
그러나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학계에서는 가야가 국가인지 아닌지 또 국가였다면 6개의 가야소국들이 어떻게 뭉쳐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다고 보아야 하겠는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리하여 6가야가운데서 금관가야나 대가야만이 국가형태를 초보적으로 갖추었을뿐이고 나머지 가야소국들은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있었던것처럼 보고있었다.
이러한 해석의 밑바탕에는 삼국시기력사의 전반부분을 뭉텅 잘라버리고 그 이전시기력사를 마치 문명이전의 락후한 원시시대처럼 묘사하던 제국주의어용사가들의 반동적주장의 여독이 깔려있었다.
그러므로 가야문제를 정확히 해명하는것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 력사를 주체적립장에서 옳게 정립하는데서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였다.
학계의 이러한 실태를 환히 꿰뚫어보시고 이 중대한 문제에 과학적해답을 주신분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주체49(1960)년 10월 11일이였다.
이날 학생들과 력사강의와 관련된 의견을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력사강의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지만 고급중학교때와는 달리 고대국가들의 존재문제,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와 관련된 학계의 움직임같은것도 알려주고 대국주의, 사대주의사가들과 제국주의어용사가들이 들고나온 외곡된 견해같은것도 분석평가해주니 강의가 흥미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런데 강의를 받아보면 아직 조선력사과목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며 6가야문제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선 가야의 국가성립과 국가형태에 관한 문제를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가야문제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강의에서도 그렇고 력사책을 보아도 6가야가 국가였는지 아니였는지 하는것이 분명치 않다, 강의에서는 6가야가운데서 소가야, 성산가야를 비롯한 4개의 가야는 신라에 의해 통합될 때까지도 원시사회의 말기상태에 머물러있었고 금관가야, 대가야만이 국가형태를 초보적으로 갖추었다고 하였다, 과연 6가야가 이렇게 락후한 상태에 머물러있었는가 하는것이 의심스럽다고 교시하시였다.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근 력사학계에서 진국을 노예소유자국가로 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견해가 제기되고있는데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을 론의하는 과정에 삼국에 선행하여 조선반도의 중부이남지역에 마한, 변한, 진한의 3한으로 이루어진 진국이라는 노예소유자국가가 존재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물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질문에는 6가야문제해명의 기본열쇠가 바로 삼국이전시기력사에 대한 리해를 바로하는데 있다는것을 깨우쳐주시려는 깊은 뜻이 깃들어있었다.
새 주장이 옳은것 같다는 학생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의견을 긍정해주시고나서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 전제밑에서 보면 진국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고있던 변한지방에서 발생한 6가야가 원시상태에 머물러있었다거나 원시상태를 겨우 벗어났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될수 없다고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고대진국과의 관계속에서 가야의 국가성립문제를 밝혀주신 심오한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순간 학생들의 머리속에는 6가야가 국가였으며 그것도 고대노예소유자국가를 이어받아 성립된 봉건국가였다는 새로운 인식이 깊이 새겨졌다.
비범한 예지로 6가야가 국가였다는것을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야의 국가형태에 대하여 6가야를 금관가야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하여 뭉친 소국들의 련맹체와 비슷한 국가로 볼수도 있을것 같다고 교시하시였다.
6가야를 금관가야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하여 뭉친 소국들의 련맹체로 보아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하나의 과학적발견이였다. 이 가르치심이 있어 우리 나라 중세초기에 소국들의 련맹체와 비슷한 독특한 형식의 봉건국가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고 6가야문제를 정확한 궤도우에서 옳게 풀어나갈수 있는 넓은 길이 열리게 되였다.
그후 학계에서는 일찌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에 밝혀주신 가르치심을 지침으로 하여 가야문제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심화시켜나갔다. 그리하여 고대진국말기 변한지방에서 진행된 봉건화과정에 토대하여 1세기 중엽에 6개의 봉건소국들로 이루어진 련맹체형식의 가야봉건국가가 형성되였으며 그 가야국은 처음에는 금관가야, 후에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뭉쳐 상당히 오래동안 발전하다가 6세기 중엽에야 자기 존재를 마친 나라였다는것이 뚜렷이 밝혀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일제어용학자들은 가야지방이 옛날에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떠벌이고있는데 이 문제도 똑똑히 리해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부당성을 하나하나 까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옛날에 우리 나라가 일본보다 훨씬 먼저 발전하였다는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백제의 왕인이라는 사람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고 고구려의 혜자라는 사람은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활동하였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삼국시기에 조선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가 활동하면서 크게 이름을 떨친 사실들은 옛날 일본력사책들에 많이 남아있지만 일본사람들이 삼국시기에 우리 나라에 건너와 살면서 활동한 사실은 우리 나라 력사기록에 별로 남아있는것이 없다고,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삼국시기에 일본이 가야지방을 오래동안 식민지로 가지고있었다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일 실제로 가야지방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면 이 지방에 일본사람들이 많이 건너가 살았을것이고 그들이 남긴 유적유물들도 많았겠는데 그런것은 아직 발굴된것이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삼국시기에 일본이 가야지방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일제어용사가들이 저들의 조선침략책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궤변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가야사를 비롯한 우리 나라 삼국시기력사를 주체적립장에서 옳게 해명할수 있는 강령적지침을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이 빛나는 예지는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에 바탕을 두고있는것이였다.
참으로 수천년세월의 장막에 파묻혀 빛을 잃고 외곡되였던 우리 민족사의 본태를 하나하나 찾아주고 빛내여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숭고한 조국애와 열렬한 민족애를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