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2018.3.5.
주체41(1952)년 4월 13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백전리(오늘의 평안남도 평성시 백송리) 밤나무골안에 있는 조선어문학부 남학생기숙사를 찾으시였다.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게 된 학생들은 그이께 군대식으로 영접보고를 힘있게 올리였다.
군사복무나날의 그 투지, 그 패기를 잃지 않고있는 학생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학생에게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그는 전선에서 싸우다 부상을 당한 영예군인이였다.
가슴아픈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군복소매를 쓰다듬어주시면서 어느 전선에서 싸웠는가, 고향은 어디이며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고있는가도 다정히 물으시고나서 그의 생활형편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사실 그 학생은 후방병원에서 대학으로 올라온지 이틀밖에 안되여서 그때까지 이불을 받지 못하고있었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일군에게 영예군인들은 조국을 위하여 피흘리며 싸운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이라고, 대학에서는 영예군인들이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의 생활을 성심성의로 돌봐주어야 하겠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평범한 한 학생이 생활에서 느낄 사소한 불편까지 걱정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에 접한 대학일군들과 학생들은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후 지금은 전쟁때이니 동무들의 생활에는 곤난한 점이 많을것이다, 하지만 동무들은 무엇보다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 당은 전후복구건설을 예견하고 어려운 전쟁을 하면서도 동무들을 공부시키고있다, 동무들은 당의 의도를 잘 알고 더 열심히 배워 자기의 실력을 부쩍 높여야 한다, 동무들은 전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몫까지 배워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고나서 방안을 쩡 울리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이제부터는 학습전선에서 잘 싸우라고, 학습도 전투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학생들은 《학습도 전투이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선에서 싸우던 그 기백으로 학습을 정열적으로 하여야 하겠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나지막한 평범한 기숙사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종합대학 학생들모두가 영웅조선의 대학생들답게 학습전투에서 승리자의 영예를 떨쳐 조국의 래일을 걸머지고 나갈 혁명인재로 준비될것을 바라시는 높은 기대와 뜨거운 사랑의 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