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자들과 함께 계시며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교수 박사 정경순
 2019.5.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방직기계공장은 내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닐 때 생산실습을 한 공장입니다. 그때 한 20일동안 여기에 나와 로동자들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인상이 깊습니다.》 (김정일전집》 제9권 238페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50(1961)년 4월 21일부터 5월 8일까지 평양방직기계제작소(오늘의 평양방직기계공장)에서 생산실습을 하시며 로동자들과 함께 귀중한 현실체험의 나날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산실습 첫날부터 학생복을 로동복으로 갈아입으시고 로동자들과 꼭같이 생활하시며 인민적령도자의 고귀한 풍모를 보여주시였다.

아침이면 첫사람으로 직장에 출근하시여 로동자들과 함께 작업장도 청소하시고 주변뜨락도 말끔히 쓸어놓군 하신분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업이 시작되면 담당기대공과 함께 분초를 아껴가시며 긴장하게 기대를 돌리시였고 점심시간이 돌아오면 로동자들고 함께 작업장휴계실의 긴의자에 앉으시여 허물없이 밥곽을 풀어놓으시였다.

생산실습에 나오신 첫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기저기 작업도구들까지 널려져있는 현장휴계실에 장군님을 어떻게 모시랴해서 주저하는 로동자들과 학생들에게 여기가 뭐라는가고 하시며 손수 의자를 들어옮기시며 식사할 자리를 마련하시고 싸오신 밥곽을 내놓으시였다.

옹색해하는 로동자들과 학생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진수성찬이란 별것이 아니라 준비해가지고 온 점심을 한곳에 모아놓으면 진수성찬이 된다고, 음식은 여러사람이 모여앉아서 같이 먹어야 맛이 있다고, 공장에 나와서 하는 첫날 점심식사가 아주 인상적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산실습 전기간 이날처럼 보자기에 싼 밥곽을 가지고다니시며 공장휴계실에서 로동자,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에도 로동자들과 같이 시내뻐스를 리용하시였다. 그 시각은 장군님께 있어서 더없이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였다. 저녁이 되면 퇴근길에 오른 로동자들이 뻐스정류소에 물밀듯이 모여들군하였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들속에 스스럼없이 어울리시여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들으시며 로동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찌나 겸허하고 소탈하게 생활하셨던지 로동자들은 그이와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함께 뻐스를 타고다니면서도 얼마동안은 장군님께서 누구이신줄 전혀 모르고 지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로동자들속에 깊이 들어가시여 그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면서 생산실습의 나날을 보내시였다.

생산실습기간에 보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적풍모는 고아들에게 돌려주신 사랑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전후에 새로 건설된 이 공장에서 전쟁시기 적들에게 부모를 빼앗긴 전재고아들이 적지 않게 일하고있었는데 그들은 혈육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을 안고 생활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구직장의 한 고아가 어렸을 때 헤여진 형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아픔을 안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찾지 못한 혈육을 두고 모대기는 고아들의 아픔이 남다른 감회를 가지고 가슴에 안겨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말끔히 가셔주어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군 하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친히 여러곳에 전화를 거시여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을 찾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장군님에 의하여 뜻밖에도 혈육을 찾을수 있는 길을 알게 된 그는 그달음으로 관계기관을 찾아갔다. 형의 이름과 같은 사람이 강원도에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사자보다 몇갑절 더 기뻐하시며 이날 밤이 깊도록 그와 마주앉아 편지초안을 만드시였다. 그가 몽롱한 안개속에 가물거리는 형의 표상을 눈을 감고 애써 상기하면 장군님께서는 활달한 필치로 문장을 만들어내려가시였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써보낸 편지에 대한 회답이 왔는데 그 사람이 몇해전에 황해제철소(당시)에 옮겨갔다는 소식이 적혀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업반장과 의논하시여 그를 즉시 황철로 보내게 하시였다.

다음날 형을 찾고 공장에 돌아온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와락 안겨들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도 목이 메이시여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그저 세차게 들먹이는 그의 어깨를 꽉 그러안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어린 한 선반공의 형을 찾아주신데 뒤이어 불과 며칠사이에 또다시 다섯명의 고아들에게 혈육을 찾아주시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로동자들속에서는 동지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며 서로 돕고 이끌어나가는 미풍이 높이 발양되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동자들을 위하여 합숙뜨락에 꽃밭도 만들어주시고 5.1절날에는 야유회도 조직해주시였으며 여러가지 다채로운 사업들도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은 며칠밖에 안되는 생산실습의 나날에 언제나 로동자들의 벗이 되시고 스승이 되시여 그들을 따뜻히 보살펴주시고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로동자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평양방직기계공장에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는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적풍모를 보여주는 수많은 혁명일화들과 더불어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빛을 뿌리며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