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2016.1.21.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워주신 첫날부터 교원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교원들의 사업과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으며 그들의 생을 영원히 빛내여주시였다.
그 영생의 대오속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총장이였던 허헌선생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헌선생에게 해방된 조국에서 첫 인민의 대학 종합대학총장의 무거운 임무를 안겨주시던 그날부터 그 책임적인 사업보다 오히려 그의 건강에 대하여 걱정하시면서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함께 주체38(1949)년 6월 11일 몸소 허헌선생의 생일에 그의 집을 찾아주시고 총장선생의 생일을 축하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그러시면서 해방후 복잡한 일들을 치르다보니 지금껏 환갑을 차려드리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래년에라도 기회를 봐서 차리도록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늘 이것을 마음속에 품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의 작전대앞에서 밤을 련일 새우시는 그 바쁘신속에서도 주체40(1951)년 6월 11일 허헌총장의 환갑상을 친히 차려주시였으며 다음날에는 최고사령부에서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가 끝났을 때 정치위원들에게 어제가 허헌선생의 생일이였는데 바빠서 미처 가보지 못하였다고, 오늘 이렇게 다 모였는데 점심식사도 할겸 모두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하시면서 허헌선생을 앞세우시고 댁으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0(1951)년 8월 17일 총장선생이 뜻밖에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누구보다도 통분해하시면서 좀처럼 비감을 누르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장의 시신을 찾지 못하시였다는것을 아시고 인민군대를 동원시켜 청천강바닥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꼭 시신을 찾아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헌총장의 시신을 찾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시신을 평양에 올려오도록 하시고 제일 안전한 곳인 모란봉지하극장에 안치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인과 영결하는 그날에는 몸소 맨 앞장에서 령구를 메시고 지하극장에서 령구차가 있는 밖에까지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후 단신으로 허헌총장의 령구가 안치된 모란봉기슭을 찾으시고 위치는 좋은데 미제놈들의 폭격이 심하여 걱정된다고 매우 심려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에 대하여 두고두고 심려하시던 끝에 그후 묘지를 대성산으로 옮기도록 하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비록 전사는 떠나갔어도 떠나간 전사를 잊지 못하시여 베풀어주시고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하늘과 바다에도 비길수 없는 무한대한 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