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첫 대학을 창립하던 나날에 새겨진 불멸의 업적

김일성종합대학 평양농업대학 현림
 2018.11.25.

룡남산마루에 높이 솟아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존함으로 빛을 뿌리는 주체교육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

인민의 첫 대학으로 자기의 창립을 온 세상에 자랑높이 선포한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 어느덧 72번째의 년륜을 아로새겼다.

세상에는 200여개를 헤아리는 나라들이 있고 나라마다 자랑하는 대학들이 있지만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이 자기의 창립을 선포한 그날로부터 수령의 존함으로 빛을 뿌리며 세기와 세기를 이어 영광찬란한 력사를 수놓아온 대학은 없다.

김일성종합대학은 그 력사적뿌리와 창립과정, 대학발전의 력사로 보나 위대한 수령님과 혈연적으로 이어진 명실공히 어버이수령님의 대학이다.

창립 72돐을 맞으며 온 나라 교육일군들과 교육자들은 민족간부양성사업을 혁명의 중대사로 여기시고 해방직후 악독한 일제놈들이 모든것을 빼앗아가고 파괴한 빈터우에서 종합대학창립과 같은 거창한 위업을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그 업적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종합대학의 창설은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의 영광이며 우리 민족 력사에서 찬란한 한페지를 차지하는 거대한 사변입니다.》 (김일성전집》 제4권 206페지)

주체34(1945)년 11월 3일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광주학생사건 16주년기념 평양시청년학생군중집회에 몸소 참석하시기 위하여 평양공설운동장(오늘의 김일성경기장)에 나오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이 흠모하여마지 않는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게 된 감격으로 하여 마중나온 일군들은 크나큰 흥분속에 잠겨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중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교육부문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김일성종합대학창설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야외휴식장의 어설픈 걸상에 허물없이 앉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서 앉으라고 이르시고나서 오늘 여기에 어떤 학생들이 모였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평양시내의 2개 전문학교와 13개 중학교 학생들이 모였다고 말씀올리자 시내의 중학교이상 학생수에 대해서까지 다시금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중하신 어조로 평양은 40만의 인구가 사는 큰 도시인데 중학교와 전문학교가 몇개밖에 없고 학생수는 겨우 8 000명밖에 안된다니 매우 적다고 하시면서 이 사실을 놓고도 일제의 식민지노예화정책의 후과가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을 건설하자면 많은 민족간부가 있어야 한다고, 민족간부가 있어야 국가도 세울수 있고 나라의 경제와 문화도 발전시켜나갈수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민족간부가 적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민족간부를 많이 육성하는것은 해방된 조국의 현실이 요구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이라고 강조하시고나서 지금 우리 나라의 형편에서는 많은 대학을 한꺼번에 세울수 없으므로 종합대학부터 먼저 내와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해방직후 그 어려운 형편에서 단과대학도 아닌 과학의 여러 부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간부양성기지인 종합대학을 단꺼번에 세워주겠다고 하시니 그 자리에 참가했던 일군들은 너무도 꿈만 같아 위대한 수령님을 뜨거운 경모의 마음으로 우러렀다.

당시 일군들은 해방직후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형편에서 중학교나 전문학교라면 몰라도 대학을 내오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과대학도 아닌 종합대학을 세우실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던것이다.

끝없이 격동된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합대학을 창설하는것은 우리 나라 실정에서 절실히 필요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종합대학은 우리 나라의 튼튼한 민족간부양성기지로 될것이며 앞으로 내올 대학들의 모체로 될것이라고 신심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부강조국건설의 위력한 기둥으로, 주체교육의 최고전당으로 일떠세우시려는 확고한 의지와 드팀없는 신념이 어려있었다.

그날 일군들의 눈앞에는 앞으로 세워지게 될 김일성종합대학의 웅장한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

이렇게 되여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되고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인민의 첫 대학을 일떠세우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당시 종합대학창립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애로와 난관들중에서 제일 걸린 문제는 교수교양사업을 담당수행할 교원력량이 부족한것이였다.

그때 우리 나라의 교원력량은 일제의 식민지노예화정책의 후과로 하여 거의 백지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여서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 성원들의 가슴에는 재가 앉았다.

그러던 어느날 창립준비위원회 일군들은 뜻밖의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종합대학창립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제기되고있던 교원문제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지에 흩어져있는 교원, 학자들을 데려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이 사업을 맡아 수행하게 될 일군들에게 자신의 친필로 된 교원위촉장을 보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파견되는 일군들을 만나시여 교원, 학자들을 데리고 들어올 때의 경로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인민정권기관들이 들어오는 교원, 학자들의 생활을 특별히 잘 돌봐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리고 우리를 따라오려는 교원, 학자들을 빠짐없이 다 데려오도록 그들에게도 위촉장을 써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쓰신 위촉장을 받아안은 교원, 학자들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의 품을 찾아 평양으로 들어왔다.

일군들이 대학교사문제를 풀지 못하여 고심할 때에도 기존건물을 넘겨받아 리용하도록 해주시고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여 당장 고등교육을 받을수 없는 처지에 있던 로동자, 농민들과 그 자식들을 놓고 어떻게 할지 몰라 론의만 거듭할 때에도 종합대학에 예비과를 내오도록 명철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인민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은 예견된 날자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자기의 탄생을 온 세상에 자랑높이 선포하는 뜻깊은 개교식을 가지게 되였다.

인민의 첫 대학이 창립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70여년간 김일성종합대학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은혜로운 사랑에 떠받들려 주체교육의 최고전당, 민족간부양성기지로서의 면모를 가장 완벽하게 갖춘 대학으로 몰라보게 전변되였다.

룡남산지구에 옹근 하나의 거대한 대학촌을 이루고 솟아있는 웅장한 교사들과 기숙사들, 체육관과 수영관, 전자도서관, 우리 당의 교육중시사상의 기념비로 21세기 주체건축예술의 미래, 사회주의문명의 높이를 자랑하며 새로 일떠선 려명거리의 궁궐같은 살림집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오늘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은 이 세상 부러운것 없이 사랑의 금방석에 앉아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사회주의강국을 떠메고나갈 혁명인재들의 대부대를 키워내고 첨단돌파전을 과감히 벌려나가고있다.

인민의 첫 대학에 새겨진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그 업적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수령님의 존함과 더불어, 무궁번영할 김일성, 김정일조선의 찬란한 미래와 더불어 세세년년 길이길이 빛을 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