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말기의 력사가 남긴 교훈을 밝혀주시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김운
 2025.2.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력사적인 사건과 사실을 통하여 경험과 교훈을 잘 찾아야 합니다. 력사에는 교훈적인 사건이 적지 않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력사학분야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인 통찰력으로 력사가 남긴 교훈들에 대하여 명확한 해명을 주시였다.

1961년 4월 2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이 우리 나라에서 천년강국으로 이름났던 고구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하여 토론하는것을 듣게 되시였다.

학생들의 토론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구려가 무너지게 된것은 신라통치배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켰기때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문제를 이렇게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웃나라의 300만대군도 성과적으로 물리친 고구려가 왜 신라와 외세의 무력침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였는가 하는것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부 학생들은 고구려말기에 국력이 점차 약화되였기때문에 신라와 외부의 련합세력을 막아낼수 없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강대하였던 고구려가 하루아침에 멸망하게 된 원인과 교훈에 대하여 고구려말기의 력사자료에 근거하여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시였다.

사실 고구려가 힘이 약하여 신라와 주변나라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였다고 볼수 없다. 고구려의 국력이 마지막시기까지도 강하였다는것은 640년대로부터 660년대 전반기에 걸쳐 이웃나라의 거듭되는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그때마다 성과적으로 물리친 사실만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당시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이름난 애국명장이였고 나라의 실권자였다. 연개소문은 사대주의적경향에로 기울어지던 투항분자들을 단호히 제거하고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였으며 외적의 거듭되는 외교적 및 군사적위협과 무력침공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연개소문때문에 강대한 나라로 더욱 소문이 났다.

우리 나라에서 국력이 강한 나라로 소문났던 고구려가 갑자기 무너진것은 668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구려가 무너진것은 힘이 약해졌기때문이 아니라 집권층안에서 일어난 추악한 권력싸움과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의 투항변절때문에 자기의 강대한 힘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었던것과 관련되여있다고 그 원인을 밝혀주시였다.

666년에 연개소문이 죽은 다음 맏아들 연남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라의 실권을 잡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권력싸움에 말려들어 국내에 큰 정치적혼란이 일어났다.

고구려내부에서의 권력싸움은 지방순찰을 나간 연남생이 어떤 자로부터 지금 수도에서 당신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꾸며지고있다는 무근거한 소리를 들은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처음 남생은 음모군들이 아무리 리간을 시켜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언도 있고해서 마음과 힘을 합쳐 고구려를 받들려고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음모군들이 너무나도 리간질을 하는 바람에 주대가 약한 남생이 넘어갔다. 그리하여 남생은 동생들인 남건과 남산이 정말 자기를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자기 첩자를 평양에 들여보냈다. 남생이 파견한 첩자를 잡은 남건은 정말 형이 자기들을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음모군들의 말을 확신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즉시에 왕명을 꾸며 남생을 소환하였다. 남생은 남생대로 자기가 첩자를 보낸 일이 있으니 수도에 들어가면 죽을것 같아 두려워하던 나머지 국내성으로 달아났다가 결국에는 적국인 이웃나라로 넘어갔다.

이렇게 남생은 이웃나라의 완전한 주구로 전락되였다.

남생이 거란과 말갈병들 그리고 자기가 거느리는 무력을 끌고 이웃나라에 투항하였기때문에 고구려는 내부가 크게 혼란되였고 군력도 사분오렬되였었다.

나라의 군사적실권을 잡고있던자들속에서 권력싸움이 일어나고 나라의 중요한 비밀을 거의다 쥐고있던 대막리지 연남생이 적지 않은 군대까지 끌고 적에게 투항하게 됨으로써 국가통수체계와 방위체계는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남생은 적들이 주는 벼슬까지 받아가지고 침략자의 길잡이가 되여 평양으로 쳐들어왔다.

고구려의 국경방어진과 요새시설, 평양에로 향하는 모든 길목들을 환히 꿰뚫고있는 남생은 적들을 끌고 어렵지 않게 평양으로 쳐들어와 고구려의 보장왕을 생포하였다.

아무리 적들의 수백만대군이 쳐들어와도 끄떡없던 강대한 나라 고구려였으나 충신의 가문에서 난 역적때문에 하루아침에 망하고말았다.

사실 연남생이 음모군들의 간계에 걸려들어 권력싸움에 말려든것도 그렇지만 자기 한몸을 생각하면서 나라를 배반하고 외적의 앞잡이로 굴러떨어진것은 더욱 한심한 일이였다. 연남생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였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수도로 돌아가 음모군들의 정체를 밝혔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의 길이 아니라 반역의 길을 택했으며 결국은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것이였다.

해박한 식견으로 력사자료를 들어가며 분석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구려말기의 력사는 나라의 통수체계와 방위체계가 마비되고 국내의 단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무리 강대한 국력을 가진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으며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그 교훈을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나라의 통수체계와 방위체계의 마비, 국내의 분렬과 권력싸움, 력사는 피의 교훈으로 이것을 가르쳐주고있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이날의 가르치심은 강대한 나라가 언제나 견지하고 새겨야 할 교훈을 밝혀준 력사의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