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건설을 책임지고 일을 잘하였다고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교수 박사 김미란
 2023.4.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원대한 구상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창립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다그치는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애국자들가운데는 강윤범도 있다.

강윤범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다니시던 창덕학교시절의 동창생이였으며 반일애국렬사였다.

그는 주체14(1925)년 1월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평양역까지 와서 정성들여 마련한 도중식사와 려비 3원을 편지와 함께 드리고 수령님을 바래드리였으며 그후 반일투쟁에도 참가하였다.

강윤범은 해방후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을 위한 사업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많이 보좌해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강윤범은 그후 종합대학건설을 책임지고 일을 잘하였다.》 (김일성전집》 제95권 94페지)

사실 창덕학교시절의 강윤범은 가산이 넉넉한 집 자식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는 그를 잊지 못할 동지로, 친우로 추억속에 소중히 간직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리밖에 있어도 내 고향을 생각하고 내 나라를 생각하자던 그의 애국심을 높이 내세워주시기 위하여 20년후 조국땅에서 다시 만나시였을 때 강윤범이 건국사업에 용약 뛰여들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를 찾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지 못한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는 그에게 종합대학건설을 책임지고 일을 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강윤범은 건국사업에 지식과 재능을 어떻게 바치면 좋을지 몰라 안타까와 모대기고있던 자기에게 민족간부양성을 위한 애국사업에 몸바쳐 일할수 있는 참다운 길을 열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은정에 보답하려는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1월 18일 강윤범을 비롯한 대학기성회발기인들과 담화하시면서 해방된 우리 나라에 첫 인민의 대학을 창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자진하여 맡아나선 여러분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대학기성회가 하여야 할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나라에서 대학을 창설하는것이 대단히 절실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다고 하시면서 나라가 해방된지 몇달밖에 안되고 모든것이 부족한 오늘의 형편에서 대학을 자체의 힘으로 창설한다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대학을 창설하자면 교원도 있어야 하고 청사도 있어야 하며 교재와 실험실습기재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어느 하나도 준비된것이 없는 말그대로 빈터우에서 대학건설사업을 시작하여야 하는 조건에서 대학을 창설하는 제일 좋은 방도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분야의 인재를 동시에 양성하는 종합대학을 먼저 창설하는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가 인민의 대학을 창설하는 사업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를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종합대학을 창설하는데서 대학기성회가 큰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대학기성회에서는 우선 자금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넣어야 하고 교원문제를 시급히 해결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해방된 우리 나라에 첫 인민의 종합대학을 창설하는 큰 사업을 하느라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애로도 많을것이지만 높은 애국열의를 가지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타개하면서 종합대학을 창설하는 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시켜나가리라고 확신한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이 어린 가르치심을 받으며 강윤범을 비롯한 대학기성회성원들은 애국사업에 헌신할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그때 일을 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윤범에게 지금 건국사업에서 제일 걸리고있는 문제가 간부부족인데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한 부분 맡아주지 않겠는가고 하였는데 그가 선뜻 응해나섰다고 회고하시였다.

사실 지금은 대학 하나를 건설하는것이 그닥 큰 문제로 되지 않지만 해방후에는 자금도 없고 자재도 없고 건설기능자도 없어 곤난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강윤범은 종합대학건설을 책임지고 일을 하다가 걸린것이 있으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밤새도록 가르치심을 받군 하였다.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이께서는 종합대학건설을 위한 문제만은 뒤로 미루지 않으시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강윤범을 만나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본청사
사진. 해방후 건설된 김일성종합대학 본청사

위대한 수령님의 새 민주건국로선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교사건설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끝내는데 이바지한 강윤범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맡은 소개사업을 마지막까지 끝내고 뒤늦게 후퇴하던중 적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늘 강윤범이 종합대학건설을 책임지고 일을 잘하였다고 자주 회고하시였다.

그의 묘는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소년시절의 첫 동지였던 강윤범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리와 혁명적동지애에 의하여 해방후 인민의 첫 대학으로 일떠선 김일성종합대학의 건설력사에도 한페지 남아 후대들에게 깊은 회억을 불러일으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