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잘해야 한다시며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정봉찬
 2023.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에 우리 민족사교육에도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력사학부 조선력사연구실(당시)의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잘하도록 하는 사업에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는 지난날 우리 나라 력사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고구려는 삼국시기에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놀았을뿐아니라 그 이후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 큰 영향을 준 나라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181페지)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이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를 대를 이어 전해주며 인민들을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데서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9(1960)년 11월 10일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조선력사연구실을 돌아보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교원들과 학생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든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잘하는데서 나서는 강령적지침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원시시대의 유물전시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당시 조선력사연구실에 전시된 원시시대의 유물들은 뿔괭이, 갈돌, 질그릇 등 몇점의 신석기시대유물들뿐이였고 인류력사의 첫 시기에 해당하는 구석기시대유물은 한점도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시시대의 유물들을 돌아보시면서 조선력사연구실에 신석기시대유물을 전시해놓으니 좋다고 하시면서 뿔괭이나 갈돌, 돌활촉, 질그릇을 비롯한 신석기시대의 여러가지 유물들을 보면 그때 우리 선조들이 벌써 농사를 짓고 가축기르기와 사냥, 물고기잡이, 실낳이, 질그릇제조와 같은 다양한 생산활동을 하면서 한곳에 머물러 생활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원시사회의 유적과 유물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자료이라고 밝혀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구석기시대 유물을 전시하지 못한것이 유감이라고 하시면서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것이 없지만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발굴사업을 다그쳐 구석기시대유적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다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대시기의 유물들을 돌아보시면서 우리 나라 고대사를 과학적으로 정립체계화하며 고대시기의 력사유물과 자료전시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우리 나라 고대사는 옳바로 정립체계화되지 못하고있었다.

우리 력사학계에서는 고조선, 부여, 진국이 원시사회상태에 있었는가 아니면 노예소유자국가였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한 론쟁이 벌이지고있었다. 게다가 고대시기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조사와 발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여 조선력사연구실에는 몇점의 고대유물들만이 전시되여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력사연구실에 고대시기의 유물이 너무 적다고 하시면서 몇점의 고대유물들을 간단히 진렬해놓으니 눈에 띄우지도 않고 보는 사람들에게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이 성립되기 전까지도 원시사회가 계속된듯한 인상을 준다고 하시였다.

삼국이전시기를 원시사회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심원한 뜻이 담긴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순간 교원,학생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조선력사연구실을 돌아본 교원,학생들은 많고많았지만 그들중에는 고대시기 유물이 적다고 아쉬움을 표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삼국이전시기의 력사문제와 직결시켜 생각해본 사람은 없었다.

오직 모든것을 주체의 안목으로 꿰뚫어보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조선력사연구실에 전시된 고대시기유물들을 보시는 첫 순간에 벌써 그것을 우리 나라 력사의 중대한 문제,조선력사발전의 합법칙성과 결부시켜 이렇듯 심각한 문제점을 도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 력사학계에서는 고조선과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있고 부여도 고대국가로 보자는 의견이 있는데 이러한 주장이 옳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력사자료가 전혀 없다면 몰라도 그 시기의 력사를 증명하는 자료가 어느 정도 있는 이상 고조선, 부여, 진국을 고대국가로 규정해놓고 연구를 심화시켜나가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고대시기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이런 방향에서 개편하여야 할것 같다고 하시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고대시기의 유물이 적지 않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헌자료가 제한되여있는 고대사연구에서는 고고학적자료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유적유물발굴사업을 다그쳐 고대유물을 더 많이 찾아내야 하며 그에 토대하여 고대사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가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대유물에 이어 고구려유물들을 돌아보시면서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고구려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히시면서 고구려시기의 유물들을 잘 전시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구려시기의 유물을 보니 우리 선조들의 재능이 훌륭하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고구려의 막새기와에 새겨진 문양들은 힘있는것이 특징이며 대성산에서 새로 발굴된 불상조각도 잘 만들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조선력사연구실에는 이런 생동한 유물과 자료를 많이 진렬해놓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조선력사연구실에는 고구려의 강대성과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차지하는 고구려의 력사적지위가 잘 안겨올수 있게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여있지 못하고 몇장의 막새기와들과 벽돌들, 대성산의 불상조각 등과 안악3호무덤(고국원왕릉)투시도, 살수대첩그림 같은것들이 있었다.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고구려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자료는 응당 고구려의 이러한 강대성과 력사적지위에 맞게 전시되여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고구려의 막새기와와 벽돌을 몇장 가져다놓고 안악3호무덤투시도나 그려놓은것으로 동방의 대강국이였던 고구려에 대한 표상을 안겨줄수는 없다고, 물론 살수대첩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부족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구려가 최대로 강성했던 시기의 령역도를 그려놓고 광개토왕릉비자료 같은것도 전시해놓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조선력사발전일람표도 보아주시면서 그 부족점을 대번에 포착하시고 우리 나라 력사서술체계를 과학적으로 바로 세우도록 해주시였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우리 력사학계에서는 발해를 우리 나라 력사의 당당한 한 부분으로 취급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력사학계의 실태를 바로잡아주시기 위하여 주체49(1960)년 10월 29일 불후의 고전적로작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하여》에서 우리 민족사의 기본흐름을 주체적립장에서 바로 정립해주시고 우리 나라 력사서술에서 발해를 신라와 함께 기본체계에서 취급하여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그런데 당시까지도 우리 력사학자들이 사대주의, 교조주의적인 사고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데로부터 조선력사연구실에 전시된 조선력사발전일람표에는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가 빠져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력사발전일람표에 발해가 빠졌는데 발해를 신라와 병렬시켜 기본체계에 넣어야 할것 같다고 하시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7세기말부터 10세기초까지 200여년간 존재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해동성국》으로 이름을 떨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발해는 신라보다 훨씬 더 넓은 령토를 차지하고있었으며 이 시기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놀았다고 하시면서 발해를 무시하고 조선력사서술체계에서 빼버리거나 간단히 스쳐버리는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으며 발해는 응당 신라와 병렬시켜 우리 나라 력사서술의 기본체계에 넣어 취급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학계에서 아직까지 발해문제가 명백하게 해결되지 못하고있는것은 자료가 부족하기때문이라고만 볼수 없다고 하시면서 력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옳바른 관점을 가지고있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하루빨리 조선력사서술에서 신라중심의 서술체계를 깨고 고구려중심의 력사서술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고구려중심의 력사서술체계만이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객관적과정에 맞는 과학적인 력사서술체계라고 생각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력사연구실을 돌아보시면서 지난날의 력사적인물들을 계급적립장에서 정확히 평가할데 대한 문제와 고려자기의 우수성을 밝혀주시였고 꽃신과 짚신, 량반의 옷들과 평민의 옷들을 진렬해놓고 계급교양을 할데 대한 문제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력사유물과 자료를 더 수집보충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조선력사연구실에는 아직도 자료가 부족하여 전반적으로 허전한 감이 든다고 특히 근대사관계자료가 거의 없는데 이 시기 자료들도 수집정리하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는 반드시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과 기본흐름이 뚜렷이 안겨오도록 전시하여야 학생들이 조선력사연구실을 돌아보고 우리 나라 력사발전과정에 대한 정확한 리해를 가질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날에 하신 담화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잘할데 대하여》는 력사유물과 자료전시를 언제나 력사과목교수의 목적에 맞게,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대한 정확한 리해를 가질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것을 밝혀준 강령적지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