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자리를 통해 본 주체건축 (3)
명당자리에 뿌리를 내린 나라의 맏아들대학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은철
 2020.3.23.

사회주의조선의 수도 평양의 명승 모란봉 북쪽에는 높지 않은 룡남산이 있다.

룡남산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사랑속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떠선 나라의 맏아들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이 우뚝 솟아있다. 여기 룡남산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의 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하실 높은 뜻을 안으시고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신 불멸의 업적이 력력히 깃들어있다.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 민족간부육성기지로 그 명성을 떨치고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이 명당자리인 룡남산에 억세게 뿌리를 내리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김일성종합대학청사를 건설할 때 처음에 정한 대학위치가 고구려의 토성자리라는것을 아시고 대학위치를 다른데로 옮기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현지에 나가시여 대학터전을 룡남산마루에 잡아주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8권 236페지)

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건설이 결정된지 얼마후인 주체36(1947)년 4월 어느날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모형사판을 보여드리였다.

모형사판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앞으로 짓는 대학은 건물도 중요하지만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대학의 위치는 공기도 맑고 경치도 아름다운 대동강기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대학주변은 교원들과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알맞게 꾸려야 한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새 교사건설이 일정에 오른 때부터 그 위치에 대하여 항상 생각해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당자리를 직접 고르고고르시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월 10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친히 모란봉에 오르시여 청암리쪽을 돌아보시고 그 둔덕에 위치를 잡아주시였다. 그런데 얼마후 기공식준비를 하던 일군들이 뜻밖에도 그곳에서 고구려때의 토성자리를 발견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9월 8일 김일성종합대학 건설관계자들과 함께 이미 잡았던 대학터전을 찾아주시였다.

대학터전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옛 토성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위치로는 여기가 참 좋은 곳이지만 토성을 허물고 교사를 지을수는 없다고, 대학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토성도 보존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대학터전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시였다.

대학일군이 대학터전을 잡을바에는 력사유적도 있고 명승지로 알려져있는 모란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으면 좋겠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짧은 생각을 바로잡아주시며 모란봉기슭에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종합대학교사를 세우는것은 아주 의의있는 일이라고, 이곳에 동양에서 제일가는 새 교사를 지으면 명승지로서의 모란봉은 더욱 빛을 뿌릴것이라고 하시면서 미암산으로 가시였다가 교사를 앉히기에는 적합치 않으므로 또다시 룡남산마루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룡남산마루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인 주변을 한동안 둘러보시다가 여기가 좋을것 같다고, 앞뒤가 환히 열려서 전망이 아주 좋다고, 대동강과 모란봉이 가까워서 경치도 매우 아름답다고, 이 일대에 앞으로 교사들을 짓는다면 훌륭한 대학촌으로 될수 있다고 확신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이때 한 건설일군이 주변의 바위들을 까내기가 무척 힘들것 같다고 우려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큰집을 짓는데 땅이 굳다고 나무라는것이 리치에 맞지 않다고, 땅이 굳을수록 큰집을 세우는데는 더 좋다고, 종합대학교사는 튼튼한 지반우에 세워야 후대들에게 영원히 물려줄수 있다고 뜨겁게 교시하시면서 룡남산지구를 훌륭한 대학촌으로 전변시킬데 대한 웅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바로 그 뜻깊은 자리에 해방된 우리 인민이 자체의 힘과 기술로 웅장하게 건설한 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가 일떠섰다.

룡남산의 명당자리,

그것은 단순히 자연이 준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헌신속에 마련된 명당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