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조영남
2015.10.28.
값높은 삶을 누리고 영생하려는것은 인간의 본성적요구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란다고 하여 저절로 실현되는것이 아니다.
값높은 삶을 누리고 영생하려는 사람의 본성적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자주적인 삶을 가꾸어주고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누릴수 있게 하는 태양의 품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류력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철리이다.
오늘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나라 사회주의사회에는 살아서는 값높은 삶을 누리고 죽어서는 영생하게 하는 참으로 위대한 품, 태양의 품이 있다.
우리 인민은 세기를 이어 수령복, 태양복을 누리는 말그대로 태양민족이며 우리 나라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태양의 나라이기에 값높은 삶, 영생의 삶들이 빛을 뿌리고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수천수만의 평범한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이 태양의 품속에서 값높은 삶과 영생을 누려가고있다.
전용식선생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중의 한사람이다.
주체31(1942)년 10월 대학을 졸업한 후 식민지지식인의 설음과 파란많은 곡절을 체험한 전용식선생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오매에도 그립던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에서는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주체40(1951)년 12월부터 당시 백송리에 자리잡고있던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후대교육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그후 선생은 주체44(1955)년 4월부터 당의 조치로 송도정치경제대학에 파견되여 강좌장으로 사업하였으며 주체52(1963)년 7월 다시 김일성종합대학에 소환되여 경제학부 교원, 강좌장, 연구사로 사업하였다.
이때부터 전용식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장군님께 강의를 해드리는 최상최대의 영광을 지니였다. 사실 그는 다른 교원들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장군님께 강의를 해드리기보다 장군님의 직접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교원혁명가로 성장한 혁명전사의 한사람이였다.
《벌써 수십년전 그때부터 우리 지식인들모두의 심장속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이시야말로 정치와 경제, 력사와 철학, 문화와 군사에 이르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 학문의 모든 령역에 걸쳐 비길데 없이 심오하고 다방면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간직되여있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 경제학부의 교원이였던 전용식선생이 터놓은 마음속 고백이였다.
진정 대학시절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의 자애로운 스승이시였다.
이 시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드팀없는 신념으로, 자신의 모든 사상리론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으시고 조선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사회과학이 제기하고있는 수많은 미지의 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시였으며 여러 학문분야들에서 나타나고있던 이러저러한 편향들을 전면적으로 바로 잡아주는 과정에 사회과학부문의 모든 학문들을 주체의 궤도우에 확고히 올려세우시였다.
사실 김일성종합대학시절의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관심밖에 있은 학문이란 없으시였지만 정치경제학이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자애로운 스승의 손길에 이끌려 주체가 선 학문으로 발전완성된것은 전용식선생을 비롯한 이 부문 교원, 학자들과 학생들이 받아안은 남다른 행운이며 크나큰 영광이 아닐수 없었다.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위대한 력사적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보좌해드리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사대주의적이며 교조주의적인 요소가 다분히 남아있던 정치경제학을 주체의 궤도우에 확고히 올려세우시고 우리 식의 정치경제학으로 발전풍부화시키신 불멸의 업적만으로도 장군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스승이시였는가 하는것을 뜨겁게 느낄수 있다.
이러한 위대한 스승의 손길이 있었기에 전용식선생은 생의 전기간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 끝까지 충실하였으며 사상리론전선의 전초병으로서 당의 로선과 정책을 옹호고수하고 해설선전하는 사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투쟁할수 있었다. 특히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56(1967)년 5월 25일 교시를 높이 받들고 반당수정주의분자들과의 투쟁에 앞장서서 당의 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들을 높이 받들어모시는 사업에서 투철한 혁명정신을 발휘하였다. 선생은 교육사업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정치경제학교수내용을 주체사상화하는 사업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하였으며 《주체정치경제학》, 《정치경제학연구의 몇가지 문제》를 비롯하여 수십권의 가치있는 교과서, 참고서와 100여건의 소론문, 토론문, 방송원고들을 집필출판, 발표하여 당의 경제정책을 널리 해설선전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선생은 나라의 교육과학후비를 전망성있게 키울데 대한 당의 방침을 받들고 20여명에 달하는 박사, 석사를 양성하였으며 오랜 기간 경제학부문 과학심의위원회 위원장, 정치경제학 학위론문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나라의 사회과학발전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이 보람찬 나날에 선생은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 원사, 교수, 박사로 자라났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표창장을 비롯한 높은 국가표창을 수여받았고 태양절과 광명성절, 설명절때마다 귀중한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았으며 환갑과 진갑때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상을 받아안는 더없는 영광을 지니였다.
전용식선생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4(1995)년 1월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군에게 김일성종합대학은 자신께서 다니던 대학이라고, 김일성종합대학은 력사가 깊은 대학이라고, 김일성종합대학에는 실력있는 교원들이 많다고 교시하신 다음 전용식선생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전용식선생은 경제학부에서 가장 실력있는 교원의 한사람이라고, 그는 나의 존경하는 선생이라고 과분한 평가의 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길림육문중학교시절의 스승인 상월선생에게 늘 경의를 표시하시였다고, 인간일수록 자기 스승을 존경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용식선생에게 새해에 즈음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금시계를 선물로 보내주고 자신의 인사도 전하는것이 좋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인민의 자애로운 스승으로 만민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고계시면서도 평범한 전용식선생을 존경하는 선생이라고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시고 뜨겁게 회고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전달받던 날 장군님의 한없이 겸허하신 위인적풍모와 숭고한 도덕의리심에 로교수는 물론 대학안의 전체 교원들이 송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으며 그 사랑, 그 믿음에 높은 교육과학성과로 보답할 충정의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9월 우리 당의 숭고한 도덕의리의 빛나는 상징인 애국렬사릉을 돌아보시면서 여러 일군들에 대하여 회고하시다가 김일성종합대학시기 교원들도 회고하시며 전용식선생도 나를 배워준 선생이라고 또다시 값높이 추억해주시고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그가 주체88(1999)년 2월 18일 오랜 병환끝에 애석하게도 우리곁을 떠났을 때에는 자신의 명의로 화환도 보내주시고 애국렬사릉에 안치하여 영생의 복을 누리도록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진정 우리 지식인들에게 주실수 있는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주고싶어하시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고귀한 사랑과 믿음의 세계였다.
하기에 그 품에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였던 전용식선생은 살아서는 값높은 명예와 행복을, 죽어서는 영원한 삶을 받아안고 오늘도 영생의 언덕우에서 그 사랑, 그 믿음의 위대함을 조용히 속삭이며 후세에 새겨주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