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평민의 모습에서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현철
 2019.1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신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고 빛내이시였으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애국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습니다.》

예로부터 평민적품성은 위인의 인격을 특징짓는 중요한 품격으로 일러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며 인민들앞에서 자신을 극력 낮추고 내세우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는 한없이 겸허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신 희세의 성인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외워오신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라는 말씀은 어느 하루에 문득 떠오르신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혈연으로 이어온 인민들과의 교감속에서 찾아낸 고귀한 정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혁명사적관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학급학생들과 어울려 가운데줄 측면에서 평범하게 찍으신 한장의 사진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학생들속에 알릴듯말듯 뒤자리에 서계시는 위대한 장군님, 수수한 옷차림에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서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 이것이 우리 인민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처음으로 뵈온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이였다.

주체52(1963)년 1월 어느날 민주청년사(당시) 기자들은 인민들속에서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는 위대한 장군님위대한 풍모를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고싶어 김일성종합대학에 취재의 길에 올랐다.

그들의 가장 큰 념원은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에서 만나뵈옵고 청년학생들의 사업과 생활에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는것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쉽게 성취될수가 없었다.

한없이 겸손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자들의 청원을 받으실 때마다 굳이 사양하시였던것이다.

기자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옵지 않고는 그냥 돌아갈수가 없었다.

기자들이 본사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린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거듭되는 청을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대학의 어느 한 자그마한 방에서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문독자들인 청년학생들을 위하여 사업과 생활에서 지침으로 될 말씀을 해주실것을 청드리는 기자들에게 우리 시대 청년들의 시대적사명감에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기자동무들이 투쟁속에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도록 우리 청년들을 교양하는 글을 더 많이 써주었으면 한다고 뜨겁게 당부하시였다.

기자들은 뜨거워지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며 그이의 영상을 신문에 모실수 있도록 사진촬영에 응해주실것을 간절히 말씀드렸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무엇때문에 나의 사진을 신문에 내겠는가고 하시며 자신보다도 오히려 집단과 다른 동무들을 신문에 크게 소개하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그들을 문밖에까지 바래주시며 글이 되면 자신께 꼭 보여달라고 부탁하시였다.

하지만 기자들은 청년지도자로서의 위대한 장군님의 풍모를 글에 낼수가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자들이 드렸던 글에서 자신과 관련된 대목은 모두 빼도록 하시였던것이다.

기자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도 존함도 모시지 못한 기사를 신문지상에 발표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였다.

그러던 주체52(1963)년 2월 4일 마침내 그들은 소원을 성취할수가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있는 학급 2중천리마기수들이 기념사진을 찍게 되였는데 신문사에 그 촬영을 의뢰하여왔던것이다.

그리하여 기자들은 서둘러 대학으로 달려나갔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촬영장소에 나오시게 되였다.

기자들은 위대한 장군님께 맨앞줄 복판자리에 서주실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벼이 웃으시며 이번에는 기념촬영인것만큼 하는수없이 사진을 찍기는 하겠다고, 그러나 내가 복판에 서서 사진을 찍어서야 되겠는가고, 일을 많이 한 동무들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기자들은 꼭 복판자리에 서셔야 한다고, 이것은 저희들의 심정만이 아니라 신문을 기다리는 독자들,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이라고 절절하게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한없이 겸손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어코 앞자리에는 다른 동무들을 세우시고 자신께서는 뒤자리에 서시여 기자들에게 어서 찍자고 말씀하시였다.

기자들은 자신은 언제나 뒤에 서시고 온갖 영예는 동지들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모습을 우러르며 샤타를 눌렀다.

이렇게 되여 다음날인 2월 5일 우리 나라 출판물력사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신문에 높이 모시였다.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뒤자리에 서시여 수수한 옷차림에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존귀하신 모습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또 한분의 위대한 평민,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의 모습을 뵈옵게 되였다.

일찌기 어린시절부터 평범한 인민들과 꼭같이 입고 쓰고 생활하는것이 체질화되고 관습으로 굳어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실 때에도 다른 학생들과 구별이 없는 위대한 평민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학에 입학하시는 날에도 대동강역-미산행 로선뻐스를 타시고 수수한 대학생복차림에 비좁은 손들속에서 머리우의 손잡이봉대에 몸을 의지하며 대학으로 등교하시였고 대학전기간 학생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였다.

와산동-룡성사이도로확장공사에 몸소 참가하시여 할머니의 석탄바께쯔에 석탄을 퍼담으시고 언덕에까지 올려다주신 이야기, 공사장에서 떨치신 로력적위훈으로 하여 3중로력혁신자의 칭호를 받으신 이야기, 어은동에서 군사야영생활을 하실 때 다른 야영생들과 꼭같이 1소대 1분대 대원이 되시여 병사생활을 하신 이야기, 뜻깊은 졸업식날에 배경에 사무실비품이 보이는것이 더 좋다고, 후날 이 옷걸개판을 보면서 대학시절을 추억하게 될것이라고 정겹게 말씀하시며 못잊을 스승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신 이야기…

정녕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학생들과 자그마한 간격도 없이 어울리시고 옷차림은 물론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학생들과 꼭같이 생활하신 위대한 평민이시였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인민사랑이 체질화된 평민적인 소박성과 허물없는 태도, 겸손성과 검박한 생활…

바로 이런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지니고계셨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제낀옷에 넥타이가 아니라 수수한 잠바옷을 입으시고 인민들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였고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야전솜옷을 입으시고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세월이 멀리 흐른 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김일성종합대학 혁명사적관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간직하고계시던 대학생교복을 보내주시였다.

학창의 나날에 팔소매와 혼솔이 닮고 대학휘장이 달려있던 부분에는 녹물이 올라있는 교복, 그 교복차림으로 열정의 미소를 지으시며 크나큰 보폭을 내디디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이 그이께서 오르내리시던 모교의 청사앞에 모셔져있다.

오늘도 수수한 교복차림으로 해솟는 룡남산마루에 거연히 서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우리 장군님 그대로 인민을 위한 애국헌신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이 땅우에 반드시 인민의 념원이 현실로 꽃핀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울 불타는 맹세를 다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