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박사 지일신
2019.12.18.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우리 나라 근대력사를 주체적립장에서 새롭게 정립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일반적으로 근대력사는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생발전한 력사적시기를 말한다.
계급이 출현한 이래 인류력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력사로 흘러왔으며 이 과정에 노예소유자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사회에로의 순차적이행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중세봉건사회로부터 근대자본주의사회에로의 이행이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합법칙성에 따라 18세기이후부터 봉건사회태내에서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생발전하여왔으며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무시할수 없는 사회경제형태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력사적시기 우리 나라는 유미자본주의렬강들과 일제의 침략을 받게 되였으며 이로 하여 민족적위기가 격화되고 자본주의적발전이 억제되게 되였다. 특히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제의 침략으로 하여 자본주의적발전은 심히 억제되였으며 나중에는 그 길이 완전히 차단되여 자본주의적발전이 정상적인 자기발전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되였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제와 대국주의사가들은 우리 나라 근대력사를 애써 외곡하며 우리 민족을 자본주의단계를 거치지 못한 《렬등》민족으로 집요하게 묘사하고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의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문제를 그 발생발전의 합법칙적견지에서 과학적으로 해명하는것은 일제의 침략책동을 폭로단죄하고 어용사가들의 궤변을 짓부시며 우리 인민들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당시 학계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가 어떻게 발생발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정확히 해명하지 못하고있었으며 따라서 대국주의반동사가들이 주장하는 《외인론》을 철저히 분쇄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학자들은 일제어용사가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조선에서 자본주의적관계는 일제가 침입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듯이 주장하고있었다. 학계의 주장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학과토론들에서는 자주 그릇된 주장이 나오군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고 주체52(1963)년 9월 20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하신 담화 《우리 나라 력사를 외곡하는것을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를 비롯한 여러 담화들에서 우리 나라 근대력사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세기 후반기 우리 나라에서는 개화사상이 발생발전하고 그에 토대하여 부르죠아개혁운동이 벌어졌는데 갑신정변은 이러한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산물이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164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문제도 주체적립장에서 력사적사실에 철저히 의거하여 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본주의적관계는 임금로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관계로 특징지어지는것만큼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과정을 옳게 파악하려면 자본가와 임금로동자의 출현과정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상품화페관계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상인계층의 진출이 강화되고 도시들에서 많은 화페자본을 그러모은 대상인들이 광업이나 유리한 생산분야에 침투하여 류랑민들이나 품팔이군들을 돈에 얽매여놓고 착취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경영방법이 자본주의적경영으로 된다는것은 명백하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자료를 보면 외래자본주의렬강들이 우리 나라에 침략의 손길을 뻗치기 훨씬 이전에 우리 나라에는 이미 자본주의적관계가 존재하였다는것이 증명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봉건사회가 오래동안 존재하였으나 일찍부터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고 자본주의적관계도 발생발전하였다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움터자라기 시작한 자본주의적관계는 외래자본주의의 침투로 인하여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걸을수 없게 되였다고 가르치시였다.
사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우리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킨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살하고 파괴하였으며 봉건적인 제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장하여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전을 각방으로 억제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문제와 관련하여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비롯한 근대적개혁운동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도록 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근대적개혁운동의 성격을 옳게 해명하는것은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그러나 당시 일제의 어용사가들과 사대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김옥균에 의하여 단행된 갑신정변을 친일파들이 일으킨 하나의 궁중사변처럼 묘사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부르죠아개혁운동이 없었던것처럼 력사를 외곡하였다. 그리고 갑오개혁의 담당기구였던 《군국기무처》도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기관으로 보면서 갑오개혁이 마치도 일제의 조종밑에 실시된듯이 설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근대개혁운동에 대한 외곡된 견해를 바로잡고 그에 옳바른 인식을 주기 위하여 갑신정변의 성격을 주체적립장에서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신정변은 친일파가 일으킨 궁중사변이 아니라 나라의 근대화를 목적으로 하여 개화파가 단행한 우리 나라 력사상 첫 부르죠아개혁이라고 하시면서 지난날 일부 사람들이 갑신정변전야에 개화파가 일본사람들과 접촉을 가진 사실과 정변당시에 일본군대가 왕궁호위에 동원된 사실을 피상적으로 보고 갑신정변을 친일파들의 소행으로 속단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갑신정변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개화파였으며 그들이 일본군대를 끌어들인것은 자기 목적수행에 그들을 리용하려는데 있었던것만큼 김옥균을 친일파로 보고 갑신정변을 일본의 조종밑에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것은 력사적사실과 어긋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갑신정변의 부르죠아적성격은 갑신정변직후 개화파가 내놓은 정강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하시면서 개화파는 정강에서 근대적인 제도수립을 주장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러한 력사적사실로 보아 갑신정변은 나라의 자본주의적발전을 지향한 부르죠아적개혁운동으로 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갑오개혁의 성격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근대력사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갑오개혁을 바로 리해하자면 개혁에서 주동적역할을 한 세력과 그들의 동향을 잘 분석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갑오개혁이 실시되게 된 력사적배경과 개혁담당기구의 출현과정 그리고 갑오개혁의 실시과정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혁신관료들이 친일분자가 아니라 청일간의 대립을 리용하여 나라의 근대화를 실현하려고 한 인물들이며 개혁담당기구인 《군국기무처》도 혁신관료들이 독자적으로 설치한 정치기구인것만큼 그에 의하여 실시된 개혁이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필연적산물로 일어난 부르죠아개혁운동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의 성격을 새롭게 밝혀주심으로써 우리 나라 근대력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지위가 뚜렷해지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나라 근대력사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을 주심으로써 우리 민족의 력사와 그 발전의 합법칙성이 명백히 밝혀지게 되였으며 제국주의어용사가들의 궤변을 짓부셔버릴수 있는 지침이 마련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