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과 간신, 역적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윤신영
 2024.2.1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 력사에는 충신과 간신, 역적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력사에 나오는 충신과 간신, 역적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 하는것은 력사서술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충신과 간신, 역적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는것은 력사적인물들을 옳게 평가하여 우리 민족사를 정확히 정립체계화하고 인민들과 후대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천리혜안의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주체50(1961)년 5월 21일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장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삽질도 하시고 목고채도 메시면서 작업의 여가시간에 최영과 리성계, 성충과 흥수, 남이와 류자광, 리괄 등 우리 나라 력사에 나오는 중요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충신과 간신, 역적의 본질과 생존방식에 대하여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력사에 나오는 충신에 대한 리해를 바로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력사에는 간신과 역적만 있는것이 아니라 충신들도 많았다고, 충신에 대하여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으시고나서 동무들은 력사에 나오는 충신에 대한 리해를 바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원래 충신이라는 말은 봉건시대에 임금을 무조건 떠받들고 섬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씌여왔다고, 충신으로 불리우던 력사적인물들가운데는 순전히 봉건적인 충군으로 그친 사람도 있었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옛날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다는 사람들도 봉건적충군사상에 물젖어있었던것만은 사실이지만 력사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고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을 응당하게 평가하여야 한다고, 우리가 말하는 력사상의 충신이란 주로 이런 인물들을 념두에 둔것이라고 하시면서 고려말기의 애국명장이였던 최영의 공적과 사람됨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해주시였다.

최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진중한 어조로 사심이 없이 나라를 받드는 사람이 충신이라고, 나라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탐내는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충신은 간신의 모해로 갖은 고통을 당하고 지어 목숨이 끊어지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절개를 굽히지 않은 충신의 실례로 백제의 성충과 흥수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충신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지만 그들의 애국정신은 심각한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가지고있다고, 그들의 공적은 나라와 민족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남아 전해질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지난날의 력사적인물을 평가하는데서 언제나 당성, 로동계급성의 원칙과 력사주의적원칙을 철저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력사에 나오는 간신과 역적에 대하여서도 리해를 바로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옛날에는 농민폭동의 지휘자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인물들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역적으로 몰리웠다고 하시면서 삼별초군의 항전을 지휘한 배중손이나 평안도농민전쟁을 지휘한 홍경래,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같은 인물을 역적으로 취급한것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옛날 력사책에서는 간신과 역적을 구별하여 썼다고 하시면서 나라를 배반하고 외적에게 투항하였거나 나라를 뒤집어엎으려 한자들, 왕을 반대하여나선자들을 역적이라고 불렀으며 앞에서는 받드는척 하고 뒤에서는 공명과 출세, 부귀영화를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를 다 쓰는자들을 통털어 간신이라고 일러왔다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오락회시간에 남이장군의 시를 읊은 학생에게 봉건감투를 씌운 한 학생을 나무라시며 간신과 역적은 충신과는 달리 언제나 나라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한몸과 일문일족의 부귀영화만을 탐내였으며 그것을 위하여서는 못하는짓이 없었다고, 간신들은 온갖 아첨을 다하였으며 충신들을 헐뜯고 모해하였다고, 아첨과 모해는 간신들의 생존방식이라고 명백히 밝혀주시면서 조선봉건왕조시기 남이장군을 모해한 류자광에 대한 이야기를 실례들어 설명해주시였다.

그리고 간신을 철저히 경계하지 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된다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는 학생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간신들은 아첨과 모해의 방법이 잘 통하지 않거나 자기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생기면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많은 경우 나라를 뒤집어엎을 생각을 하군 하였다고, 간신과 역적은 평소에 만세도 많이 부르고 귀맛좋은 말도 많이 하지만 속으로는 딴꿈을 꾼다고, 어떤자들은 권력탈취의 야심을 깊숙이 묻어두고 그 발판을 닦기 위하여 한동안 충신인것처럼 하기도 한다고 하시면서 그 실례로 리성계의 죄상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우리 민족사에 반역의 수치스러운 흔적을 남긴 역적 리성계의 죄상을 들으며 상기된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간신과 역적들은 자기의 더러운 야욕을 충족시킬 구멍수를 노리면서 절개도 지조도 없이 바람따라 돛을 다는 식으로 유리한쪽을 찾아다니였으며 나라의 록을 먹고 살면서 충절을 다짐하다가도 나라에 어려운 형편이 조성되고 반역의 무리가 득세하면 그에 아부하여 나라를 뒤집어엎는데 한몫 끼여 한자리해보려고 시도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간에 붙었다 염통에 붙었다 하면서 반역을 하는자들은 제명도 채우지 못하고 량쪽의 칼에 맞아죽는것이 보통이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에 심취되여 그런 력사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청을 드리는 학생들에게 그이께서는 간신과 역적들은 자기 행동의 목적을 출세와 공명에 두고있기때문에 언제나 분배몫을 놓고 저울질을 하며 《공로》에 비하여 분배몫이 적다고 생각될 때에는 무슨짓이나 가리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1623년과 1624년에 있은 《인조반정》과 《리괄의 반란》을 실례들어 이야기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야기를 마감하면서 력사는 사리와 공명을 탐내는자들은 간신과 역적으로 굴러떨어질수밖에 없으며 간신과 역적이 성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우리는 언제나 사리와 공명을 탐내는자, 간신과 역적을 철저히 경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반만년 조선민족사에 대하여 환히 정통하시고 학생들이 알고싶어하는 충신과 간신, 역적에 대하여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