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원격교육대학 리창수
2019.3.23.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에는 우리 과학자, 지식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믿음에 대한 사랑의 전설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자라난 그 수많은 과학자, 지식인들속에는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 초대학부장이였던 물리학자 도상록선생도 있다.
민족수난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지난날 과학탐구의 뜻을 실현할수 없는 원통함을 안고 몸부림치던 물리학자 도상록선생은 조국이 해방되자 애국적인 학자들과 함께 참다운 민족교육을 위한 교단에 나섰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과연 진정한 과학탐구의 길을 어디에 있는가, 나의 푸른 꿈이 실현될 그 품은 과연 어데인가고 한탄하며 갈길을 몰라 방황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도상록선생을 평양으로 불러주신분은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하기에 도상록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보내주신 위촉장을 받아안고 가족들과 함께 주저없이 길을 떠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로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도상록선생을 만나주시고 도상록선생의 몸건강과 생활에 대하여 물어주신 다음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제는 건국사업에 대하여 의논해보자고 하시며 민족간부를 키워내기 위하여 먼저 종합대학을 세우려고 한다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선생이 종합대학창설사업과 민족간부양성사업에서 한몫할것을 바라고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4권 41페지)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이 물리학을 전공하였다는것을 헤아리시고 물리학에 대한 연구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그와 2시간 가까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며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그에게 크나큰 믿음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이 창립되였을 때에는 선생을 물리수학부의 첫 학부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주체36(1947)년 10월 대학창립 1돐을 기념하여 열린 전람회장에 나오시여 도상록선생을 몸소 만나주시고 교육사업에서 이룩한 자그마한 성과도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 제1회졸업식에 나오시여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와 고무적힘을 주시였으며 전쟁이 가렬하던 주체41(1952)년 4월 12일 백송리에 자리잡은 산속의 종합대학을 찾으시고 선생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그의 과학연구사업정형을 알아보시면서 조국과 인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과학연구사업을 추진시켜야 하겠다고 고무를 주시고 과학연구방도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보름이 지나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진행된 전국과학자대회장에 몸소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을 대회에 참가시켜 주석단에 앉도록 해주시였으며 대회에 참가한 과학자들에게 과학원을 창설하는것은 동무들의 소원이자 자신의 소원이라고 하시며 모든 곤난을 무릅쓰고 전시조건에서 과학원을 내오게 된데 대하여 매우 기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도상록선생에게 물리학부문의 첫 원사의 영예도 안겨주시였다.
그러나 도상록선생의 인생길은 순탄치 않았다.
한때 사대주의에 물젖은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도상록선생의 과거경력을 두고 시비질을 하다못해 그의 과학리론상의 성과를 두고 아직은 리론에 불과하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면서 묘하게 트집을 걸어 그를 대학에서 내보내려고까지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한 평범한 물리학자의 운명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사랑의 한품에 더욱 뜨겁게 안아주신분은 오직 한분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주체55(1966)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창립 20돐기념보고회에 몸소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을 불러주시고 그들에게 우리 당은 오랜 지식인들을 언제나 믿고 그들의 운명을 끝까지 보살펴줄것이라고, 지식인들이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주체를 확고히 세워 자기들이 전공하는 과학기술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데 대하여서와 오랜 학자들이 젊은 교원들을 잘 도와주어 그들의 수준을 높여줄데 대한 사랑의 교시를 주시였다.
도상록선생은 그후 새로운 신심과 활력에 넘쳐 가치있는 수많은 론문들을 완성하여 대학신문과 여러 잡지들에 발표하였으며 나라의 동력기지를 튼튼히 꾸리는데 이바지하는 물리학분야의 연구성과들을 이룩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범한 물리학자에게 힘을 주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고도 그가 과학연구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을 때에는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선생에게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생일 70돐을 맞을 때에는 생일상을 차려주도록 해주시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귀중한 선물도 안겨주시였으며 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도상록선생에게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해주시는 최상의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그가 고목이 되여 허전한 생각으로 밥술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있는 그 때에도 누구보다 그의 심정을 헤아려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은 지식인대군이 자랐지만 해방후에는 지금 종합대학에 있는 도상록선생을 비롯하여 몇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있었을뿐이였다고 하시면서 이들이 나라의 과학기술발전과 기술인재양성사업에 이바지한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오랜 지식인들을 더욱 아끼고 내세워줄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주체75(1986)년 11월 19일 김일성종합대학창립 40돐기념행사장인 인민문화궁전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아직도 강의를 하는가고, 대단하다고 하시며 그를 자신의 가까이에 세우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시는 교육자,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피심속에서 권위있는 학자로, 만사람의 부러움을 자아내며 제자들과 학생들의 존경속에 보람찬 삶을 이어가던 그가 여든살을 넘기면서 로쇠와 병으로 교단을 지켜내기 어렵게 되였다.
하여 도상록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흘러보낸 행복한 나날들을 눈물속에 추억하며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바로 이러한 때 한 로학자의 마음속고충을 헤아려주시는분이 계시였으니 그이는 바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이시였다.
당과 국가, 군대의 전반사업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이 로환으로 비록 교단에 설수는 없지만 김일성종합대학에 적을 그대로 두고 일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현대적인 살림집에서 아무러한 불편이 없이 행복하게 살도록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상록선생을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대표로 불러주시고 생일 80돐상도 마련해주시였으며 인민과학자의 칭호도 안겨주시고 자신의 명의로 표창장까지 안겨주시였다.
하기에 도상록선생은 그 품속에서 물리학분야의 여러 과목을 개척하고 수만페지에 달하는 수십종의 교재를 집필한 관록있는 물리학자로, 가치있는 과학론문들을 수십여건이나 발표하고 어엿한 학위학직소유자들을 수많이 키워낸 공로있는 교육자로 한생을 빛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육자, 과학자로 값높은 애국의 한생을 빛내인 도상록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자신의 명의로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고 조선혁명박물관에 그의 사진과 집필한 주요책들을 비롯한 론문들을 전시하여 로학자의 공적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지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이렇듯 끝없는 믿음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넓고 따사로운 품속에서 물리학자 도상록선생은 사회주의조선의 과학계의 원로로 오늘도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