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은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는데서도 빛나는 전통을 창조한 재능있고 지혜로운 문명한 민족입니다.》 (
오랜 옛날부터 과학적창조와 발명의 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인민은 시계제작분야에서도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였다.
시계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생산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시간측정기구로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와 인류문명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재보이다.
이로부터 15세기 천문기상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여 그것을 널리 알려주기 위하여 여러가지 시계들을 창안제작하였다.
대표적인것이 옥루기륜과 자격루, 앙부일구이다.
우선 옥루기륜은 1438년 1월 흠경각안에 제작설치한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자동물시계장치이다.
이 옥루기륜은 종, 징, 북으로 해당한 시간과 함께 천체의 움직임과 동지, 춘분, 추분을 비롯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종합적인 자동물시계장치이다.
이 자동물시계장치는 물의 뜰힘을 리용하도록 제작되였는데 장영실과 리천이 창안하였다고 한다.
옥루기륜의 겉면에는 높이 7자되는 종이로 만든 산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를 상징한것이고 거기에 탄환만한 크기의 태양이 매일 이 산을 한바퀴씩 돌게 되여있다. 뿐만아니라 실지 태양이 계절마다 높이가 달라지듯이 그 높이도 달라지게 하였다.
옥루기륜의 기본부분에서 시간을 알리는 방법은 미신적관념에서 나오는 인형들로 만든 옥녀 4개와 4신의 짐승모형 4개, 사신 1개, 무사 3개와 12개의 짐승모형들을 움직이는것이다.
하루 12시간중 4개의 옥녀와 4신들에 각각 3시간씩 분담하여 매 시간마다 옥녀는 방울을 흔들게 하고 4신은 90°씩 돌게 하였다. 따라서 4신은 4시간만에 그 자리에서 한바퀴 돈다.
* 우리 선조들은 하루 24시간을 12시간으로 나누었는데 12시간은 년, 월, 일, 방향을 나타내던 간지의 12지로 표시하였다.
그리하여 23시-1시를 자시로 시작하여 마지막 21시-23시까지인 해시로 나누었다.
산의 남쪽기슭에 세운 사신이 해당한 시간이 되면 종을 치는 무사를 향하며 무사는 사신을 향하여 지시를 받고 종을 친다.
이런 식으로 매 경, 매 점마다 북, 징을 치는 무사들이 움직인다.
* 여기에서 경이란 우리 선조들이 하루밤동안을 다섯으로 나눈 그 하나로서 1경은 두시간씩이다.
초경은 20시-22시, 2경은 22-24시, 3경은 24시-2시, 4경은 2시-4시, 5경은 4시-6시이다.
점은 이러한 경(120)분을 5개로 나눈것인데 1점은 24분이다.
12개의 선녀와 짐승모형들은 그에 대응시킨 시간에만 나타나고 그외에는 여닫는 문을 열고 밑에 내려가 숨어버리였다.
물의 깊이가 달라져서 물단지(파수호)에서 내려가는 물량이 달라지면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물단지안의 물깊이가 일정한 깊이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도 생각하였다.
물단지에서 정해진 물량이 넘으면 그것이 관을 통하여 관인모형의 인형이 들고있는 금으로 만든 물병에 들어가게 되여있다. 그 물이 관인모형의 인형앞에 있는 그릇에 쏟아지게 되여있는데 그릇에 물이 절반이상 차면 그것이 저절로 기울어져서 물이 쏟아지게 되여있다.
이렇듯 복잡하고 정밀한 자동장치들을 15세기에 창안제작할수 있었다는것은 당시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기계구조에 대한 지식과 제작경험을 많이 가지고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자동물시계장치 옥루기륜의 제작원리와 기계장치들은 매우 정교하고 기묘한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기술발전사에서 하나의 자랑으로 된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도 창안제작하였다.
1434년에 장영실 등은 지레대원리를 적용한 자동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어 보루각에 설치하고 왕궁 표준시계로 사용하였다.
그후 1536년 류천, 최세정 등이 장영실의 자격루를 개량하여 설치한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물시계는 한 물단지에서 다른 단지에로 흐르는 물량이 시간의 흐름과 정비례하게 만들어졌는데 물이 고이는데 따라 띄움표가 떠오르면서 시간눈금을 가리킨다. 자격루에서는 띄움표가 올라가는 힘으로 쇠덩어리를 굴러떨어지게 하여 지레대장치로 종을 치고 시간을 알리게 하였다. 보루각안에 설치되였던 자격루는 높은 곳에 물을 보내는 물단지(파수호) 4개를 놓고 그밑에 물받는 물단지(수수호) 2개를 놓았는데 수수호에 고이는 물이 점점 높아지는데 따라 띄움표가 우로 떠오르게 되고 그것이 쇠덩어리를 받쳐들고있는 받침판을 떠밀어주므로 쇠덩어리가 굴러떨어진다. 그 다음 굴러떨어진 쇠덩어리가 그밑에 있던 철판을 치면서 밑으로 누르면 철판의 다른 한쪽이 우로 올라가면서 시간을 알리는 인형의 팔을 움직여 그앞에 걸쳐놓은 종을 치게 되여있다.
나무인형들은 3개 있는데 그 매개앞에 각각 종, 북, 징이 걸려있다. 종치는 인형은 사시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루 12시간을 알리며 북치는 인형은 사경, 징치는 인형은 사점이라고 하는데 각각 경, 점의 밤시간들을 알리는것이다.
그리고 매 시간을 알리는 12개의 인형들이 해당 시간에 시간표시판을 들고 나타나게 되여있다.
현재 자격루는 비록 3개의 파수호와 2개의 수수호만이 남아있어 기묘하면서도 웅장한 근 500여년전의 옛 모습을 다는 알수 없으나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고 또 규모가 큰것이라는 사실들을 고려할 때 이것만으로써도 이렇듯 훌륭한 자동물시계를 만들어낸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을 충분히 가늠할수 있는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 선조들은 자동물시계뿐아니라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들도 창안리용되였다.
앙부일구는 1432~1434년에 리천, 정초, 정린지 등이 만들었다.
뚜껑이 없는 가마같이 생긴 해시계라는 뜻에서 앙부일구라고 한다.
앙부일구는 수평을 보장하여 리용하였는데 천구(天球)의 북극을 정확히 향한 구침의 그림자를 반구모양으로 만든 시판에 받아서 그림자의 끝점이 가리키는 위치를 보고 시간과 계절을 알수 있게 하는 해시계의 한 종류이다.
구조를 보면 시판의 안면에 1년의 24절기를 13개의 계절선(위선)으로 표시하고 그에 대응하는 절기의 이름을 시판의 테두리(수평으로 된 부분)에 새기고 계절선에 수직으로 시간선(자오선)을 새기였다.
앙부일구는 기술적으로 볼 때 천구를 반곡면으로 축소한것으로서 평면해시계보다 오차가 적고 정확성이 매우 높은 해시계의 완성품이다.
일본에서 1980년에 출판된 《해시계백과》라는 책에서도 우리 나라의 앙부일구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도꾜 우에노의 과학박물관에 보존된 도자기로 만든 구면해시계(앙부일구)는 조선에서 만들어진것이다. 그 구조나 구면상에 새겨진 선들이 매우 합리적으로 만들어져있어 리론적으로 완벽하다. 고대그리스에는 이것보다 완벽한 구면해시계가 없었을것이다.》라고 하였다.
앙부일구가 완벽한 해시계로 창안제작될수 있은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미 중세초기부터 해시계를 만들어 리용한 창조적활동과 전통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그밖에도 이 시기에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등 여러가지 형태의 해시계들도 창안리용되였다.
이렇듯 15세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대표적인 시계장치들은 우리 나라의 기계제작발전과 함께 천문학발전수준을 보여주며 오늘도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