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학수
2022.5.2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이민위천을 평생의 지론으로,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9권 100페지)
세상에는 인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도 많았고 《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순결한 인간애로 간직하시고 그 길에서 자신을 깡그리 바치신 인민의 수령, 그런 위인은 어디에도 있어본적이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휴식이란 있을수 없고 인민의 행복을 마련하는데서 찾는 기쁨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하시며 명절날, 휴식날에도 언제나 인민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고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을 받으셔야 할 생신날조차 인민들에게 더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고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인민을 위한 그 사랑의 전설속에는 생일선물과 관련한 이야기도 있다.
전쟁의 포성이 울부짖던 주체41(1952)년 4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이였다.
일군들은 나라의 사정이 하도 긴장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을 즐겁게 쇨수 없게 된 안타까움을 달래고있었다.
그런데 밤 11시가 되였을 때 쏘련대사관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쓰딸린에게서 온 전보를 올리였다.
전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이신 김일성동지께 쏘련인민의 이름으로 밀가루 5만t을 선물로 곧 보내드리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장의 축하장보다 이렇게 밀가루를 선물하는것이 좋지 않은가고 하시며 기쁨을 금할수 없어 하시였다.
그때 쓰딸린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앞두고 많은것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당시 우리 나라의 식량사정은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미제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함포사격 특히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강점지역에서의 적들의 략탈만행으로 하여 축적하였던 식량예비는 거의나 다 없어진데다가 1951년도 농사는 례년에 없는 가물과 큰물로 숱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절량농가들이 생겨나고 로동자, 사무원들은 자기들의 식량을 절약하여 전재민구호미로 나라에 바치고있었다.
이로부터 쓰딸린은 오로지 인민을 위한 일을 첫자리에 놓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그이의 탄생일을 맞으며 가장 절실한 식량을 선물로 드리기로 하였던것이였다.
일반적으로 생일선물로는 생일을 맞는 사람의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귀중품들을 특별히 마련하여 보내는것이 관례로 되여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란한 축하전문이나 그 어떤 희귀한 물건보다도 우리 인민들에게 필요한 선물을 더 반갑게 여기시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다시한번 절감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였다.
쓰딸린은 그후 우리 일군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때 김일성동지의 생신날에 축전을 보내기보다 밀가루를 보내야 김일성동지께서 더 기뻐할것이라고 생각되여 밀가루를 차에 실어놓았다가 4월 15일에 조선에 도착시키도록 하였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을 위하여 얼마나 마음써오시였으면 그이의 생신날에 외국의 수반이 축전이나 진귀한 선물이 아니라 관례를 벗어나 특이하게 인민생활에 절실한 물자를 마련하여 생일선물로 보내드렸겠는가,
쓰딸린이 보낸 선물에는 여러 차례의 상봉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출중한 인품에 매혹된 그의 심정과 사회주의동방초소를 지켜 미제침략자들과 어려운 싸움을 하고있는 조선인민에 대한 쏘련인민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이 담겨져있었다.
특이한 생일선물, 이것은 온 나라 인민들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언제나 인민의 행복속에서 기쁨을 찾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인류의 다함없는 존경과 위인칭송의 분출이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시였고 오늘도 인민의 심장속에 영생하시며 어버이의 그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 인민을 따뜻이 보살펴주고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