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력사에는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한생을 바쳐 이름을 남긴 녀성들과 전장에서 남성들 못지 않게 용맹을 떨친 녀걸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항일의 녀성영웅
주체24(1935)년 9월 18일
《나는 혁명선렬들의 피가 스며있고 인민들의 조국광복념원이 어리여있는 이 총을 잡고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브라질의 한 녀성인사는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10대의 소녀시절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18살에는 총을 잡고 10여년세월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우신
생각해보면 총과 녀성은 거리가 멀다. 예로부터 《전쟁은 녀성을 배제하였다.》는 말과 함께 총은 녀성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녀성들이 두려워한 물건이라고 할수 있다.
더우기 당시는 조선녀성들이 망국과 봉건의 사슬로 하여 2중3중의 억압을 받으며 바깥출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단연 총을 잡고 나라찾는 성업에 한몸바칠 용단을 내린것은 참으로 놀랄만한것이였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15년간에 걸친 조선의 항일무장투쟁은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외부의 도움도 없이 유격전으로 진행되였다. 상대는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여 동방천지를 종횡무진하던 신흥군사강국이였다.
일본당사자들까지도 조선의 빨찌산을 두고 《창해일속》, 즉 바다속의 좁쌀알만한 존재라고 비유했다니 빨찌산시절의 간고함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것이다.
녀사의 빨찌산생활은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
총알에 눈이 달렸다고 할 정도로 신비스러운 사격술이며 수많은 적들을 단신으로 유인하여 부대의 안전을 지켜낸 이야기, 적의 대부대와의 접전에서 힘찬 노래선창으로 적들을 전률케 한 이야기…
또 국제련합군시절에는 전술훈련, 항공륙전대훈련, 도하훈련, 스키훈련, 무선통신훈련을 비롯하여 현대전에 대비한 각종 훈련에서 막힘이 없어 중국과 이전 쏘련의 한다하는 군사가들을 놀래웠다고 한다.
함께 싸운 녀투사의 말에 의하면
세계녀성운동사에는 국제로동운동의 저명한 녀성활동가 로자 룩셈부르그며 3.8국제부녀절창시자의 한사람인 클라라 제트낀, 에스빠냐의 돌로레스 이바루리를 비롯한 녀성혁명가들이 있다. 이들의 투쟁방식을 보면 주로 시위나 집회, 계몽사업이나 저술활동 등 정치투쟁에 많이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또 력사에는 프랑스의 자유와 독립의 상징인 장느 다르크나 인디아의 항전영웅 라크슈미 바이, 로씨야의 《처녀기병》 두로바처럼 남성들 못지 않게 싸움터에서 용맹떨친 녀걸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이 무훈담들은 한두해 혹은 어느 한 전투와 관련된것들이다.
그러나
나도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투사라고 자부하는터이지만 머리가 숙여진다.
예로부터
녀성들은 육체적한계로 하여 군사분야에서는 남자들을 초월하기 어려운것이다. 그래서 뛰여난 녀성은 많아도
에꽈도르의 한 녀성은 자기의 글에서
《나는 녀
그러나 력사에는 명성높은 녀
담력과 지략의 진가는 역경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녀
계속하여 그는 녀성들에 대한 력사적인식을 바로세우며 수십억의 녀성들에게 크나큰 긍지와 자부를 안겨주신 조선의 녀
아시아지역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은 《항일의 녀성영웅
녀사께서는 항일혁명전쟁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시여
녀사께서는 전투마당에서 대담성과 백발백중의 사격술,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커다란 공훈을 세우시였다.
캄보쟈 아까뻬통신은 주체92(2003)년 12월 10일 세계에는 수많은 녀걸들이 있지만 조선의
그이께서는 일찌기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여 나라가 해방될 때까지 온갖 사선을 다 헤치며 혈전만리를 이어오시였으며 조국과 인민앞에 커다란 공헌을 하시였다.
이것이 바로 신화속의 장수가 아니라 10여년세월 전장을 달리신 항일의 녀
혁명가의 영웅적위훈과 인생의 가치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혁명실천에서 나타나며 검증된다.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간고하고 시련에 찬 항일무장투쟁은 적들의 발악적공세와 모략책동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와 행군, 모진 추위와 굶주림으로 이어진 난관과 시련의 극점이였다.
항일의 녀성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