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본질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하여온 사실주의미술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앙양되던 력사적시기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한단계한단계 발전하였다.》 (
18세기 후반기-19세기 중엽에 직업적인 도화서화가들에 의하여 적지 않게 그려졌던 사실주의그림은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민간화가들에 의하여 화첩형식으로 새롭게 발전하였다.
그러한 화첩형식의 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가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김준근이였다.*
* 김준근은 호를 《기산》으로 불렀는데 그의 생존년대와 가정환경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것은 없고 다만 고향이 경상도 부산이였다는것과 부산, 인천 등지에서 창작활동을 진행하였다는것, 그가 그린 거의 모든 작품들이 현재 프랑스 빠리에 있는 기메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데 이것을 통털어 《기산인물화첩》으로 부르고있다.
김준근은 우리 나라에서 근대화가 촉진되던 19세기 후반기에 창작활동을 벌린 민간화가의 한 사람이였다.*
* 민간화가란 관청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의 그림재간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민간화가들이 출현한것은 17세기 중엽경이였다.
300여점으로 구성되여있는 《기산인물화첩》에는 통치배들이 인민들에게 여러가지 형벌을 가하고 지주놈들이 농민들로부터 소작료를 받아내는 장면 그리고 로동생활과 문화생활을 폭넓게 보여주는 장면 등이 묘사되여있다.
무엇보다먼저 김준근의 《기산인물화첩》에 반영된 그림들은 주제에 따라 세가지 부류로 갈라볼수 있다.
첫째로, 《기산인물화첩》에는 당시 불합리한 봉건사회의 계급적모순과 대립관계를 보여주는 주제의 그림들이 있다.
이러한 반봉건적성격의 주제는 불합리한 사회현실을 비판적안목에서 들여다보고 통치배들과 인민들의 계급적대립관계를 두드러지게 반영한 그림들에서 찾아볼수 있다.
우선 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착취계급들의 죄행을 예리하게 폭로비판한 그림들이 있다.
인물화첩에 《주리틀기》, 《형벌주는 모양》, 《사약먹이기》, 《정배보내기》 등 봉건사회의 중세기적인 형벌제도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신랄히 폭로비판한 작품들이 있는데 이러한 그림들은 착취계급들의 반인민적성격을 폭로하는 그림이라고 볼수 있다.
김준근은 이 그림들에서 근대시기의 계급적대립관계를 전시기보다 한층 두드러지게 표현함으로써 당대 사회를 예리하게 폭로하였다.
또한 착취계급들을 풍자조소하고 그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린 그림들이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탈춤을 들수 있다.
탈춤에서는 한 화면에 여러명의 탈군들이 량반, 농민을 형상한 각이한 탈을 쓰고 여러가지 춤동작을 펼쳐보이고있는데 이것은 착취자, 억압자들에 대한 반항의식을 보여주고있으며 전시기보다 계급적대립관계를 한층 부각시키고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인민들의 반항의식을 잘 보여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반봉건적성격을 강하게 띠고있다.
둘째로, 《기산인물화첩》에 반영된 그림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인민들의 생활모습과 여러가지 민족적풍습들을 보여주는 주제의 그림들이 있다.
전시기에 김홍도의 《씨름》이나 《야장간》 등에도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생활모습들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으나 그것은 많은 경우 농촌들에서 벌어지는 부분적인 생활들을 취사선택하여 그려진것들이였다.
그러나 김준근은 변화된 사회생활을 민감하게 포착한데 기초하여 도시로부터 농촌의 현실생활과 도시빈민층들의 생활 그리고 농사군들로부터 품팔이군에 이르기까지 각이한 계층의 생활을 화폭에 담아 다양한 근로인민들의 생활모습을 폭넓게 보여주었다.
김준근의 300여점에 달하는 인물화첩중에서 75점이 농민들의 김매기와 모내기와 가을걷이 그리고 농촌부업경리, 수공업자들이 진행하는 여러가지 생산활동과 동냥살이로 살아가는 사회의 최하층 인민들 그리고 량반과 선비들, 중과 무당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우리 인민들의 오랜 민속놀이를 보여주는 그림들에는 화가의 조국에 대한 애착의 감정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있다.
김준근은 간명한 구도속에 년중 우리 인민들속에서 진행되는 여러가지 민속놀이를 그려놓았는데 그림에는 놀이에 열중하는 남녀로소들의 각이한 모습들이 그야말로 진실하고 생동하게 펼쳐져있다.
실례로 처녀들의 널뛰기와 쌍그네뛰기, 총각애들의 팽이치기, 바줄당기기, 돌팔매놀이 등의 모습에서 풍기는 구수한 맛은 김준근이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얼마나 끝없는 애착심을 가지고있었는가를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인민들의 생활모습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풍속화적성격을 강하게 띠고있다.
셋째로, 《기산인물화첩》에 반영된 그림에는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상품화페관계가 급속히 촉진되고있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업관계주제의 그림들도 있다.
거기에는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 지게에 여러가지 물건을 얹어놓고 그것을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 그리고 두부장사, 옹기장사, 어물장사, 철물장사, 떡장사 등 각이한 품종의 물품을 장사하러 다니던 사람들의 생활이 세부적으로 묘사되여있다.
김준근의 인물화첩에는 상업관계주제의 작품이 무려 80여점이나 있는데 이것은 당시 상품화페관계가 발전되여가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김준근은 전시기에는 찾아볼수 없는 여러가지 주제의 그림들을 창작하여 인물화첩에 묶어놓음으로써 근대시기 우리 인민들의 다양한 생활과 생활풍습들을 연구하는데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긴 민간화가였다.
다음으로 김준근의 《기산인물화첩》에 반영된 그림들은 일정한 사료적가치도 가지고있다.
《기산인물화첩》의 사료적가치는 첫째로, 당시 정치, 경제, 문화, 풍습 등 사회생활전반을 폭넓고 깊이있게 잘 알수 있게 한데 있다.
인물화첩에는 이 시기 주류를 이루던 농민들의 농업생산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수공업자들의 로동생산활동은 물론 민족체육과 민속놀이, 어린이들의 체육오락과, 글배우기, 상제례와 병치료 등 그야말로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량적으로도 전시기의 그림들과는 비할바없이 많다.
김준근의 인물화첩에 반영된 300여점의 그림들가운데서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이들의 다양한 생활모습과 창조적인 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그림이 무려 250여점에 달하는것만 보아도 력사를 전진시키고 생산물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근로하는 인민들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하기에 이시기 인물화첩에 반영된 그림들은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거의다 조명해볼수 있는 사료적가치를 가지고있다. 《기산인물화첩》에는 우리 인민이 조상전래로 창조하여온 여러가지 생활풍습들이 잘 반영되여있다. 특히 인물화첩에 반영된 적지 않은 그림들은 고구려나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우리 인민들속에서 계승발전되여온 여러가지 민속적인것들을 주제로 설정하고 그것을 고수하고 적극 장려할데 대한 요구를 회화적언어를 가지고 강하게 제기하고있다.
실례로 《활쏘는 모양》에서 고구려이래로 내려오던 활쏘기가 전통적으로 적극 장려되여온것은 사실이지만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이러한 그림을 그려낸것은 사람들에게 상무적기풍이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오랜 민족풍습의 하나라는것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기 인물화첩에 반영된 민족생활풍습은 전시기에 찾아볼수 없는 다양하고 폭넓은 각이한 계급과 계층들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있다.
《기산인물화첩》의 사료적가치는 또한 우리 나라 민족미술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회화사적으로도 잘 알수 있게 한것이다.
그것은 이시기 화면구성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작품내용을 보다 명백하게 표현한데서 나타나고있다.
실례로 그림 《벼가을》에서와 같이 2명의 농군이 열심히 벼가을하는 장면은 당시 농촌에서 벌어지던 벼가을모습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이면서도 서로 도와주는 우리 인민의 민족적풍습을 직관적으로 진실하게 펼쳐보인 작품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묘사선택과 회화적표현들은 전시기 도화서화가들인 김홍도, 김득신 등의 그림들에서 찾아볼수 있는것이였다.
《기산인물화첩》에는 변화되여가던 당대 사회의 생활을 첨예한 극적관계속에서 취급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미술발전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