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수령님과 손정도목사

 2021.12.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손정도목사는 지난날 나의 초기혁명활동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1권 341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초기혁명활동을 벌리시던 길림시절을 회상하실 때마다 언제나 잊지 못해하시며 추억하신 사람들가운데는 손정도목사도 있다.

손정도목사로 말하면 1879년 7월 평안도 강서군 증산면(당시의 지명)의 한 유학자가정에서 태여나 평양숭실중학교를 마치고 감리교계통의 협성신학교를 졸업한 다음 교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름있는 목사였다. 그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방략을 찾아 조선과 중국의 여러곳들을 돌아다니며 심혈을 기울이였다. 한때 《상해림시정부》의 의정원 부의장, 의장으로도 있은 그는 일제가 《특사》까지 상해로 보내여 온갖 감언리설로 회유하려할 때 《다른 긴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일본이 조선에서 나가면 된다.》고 항변해나서기도 하였다.

그후 자기의 활동무대를 길림으로 옮긴 그는 교직자로 활동하면서도 일제침략자들에게 짓밟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한 투쟁에 자기의 량심을 바쳤을뿐 아니라 특히 조선독립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적극 도와나섰다.

이미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일찍부터 연고관계가 깊었던 손정도목사는 너무나도 젊으신 나이에 누구도 따를수 없는 비상한 식견과 고결한 인품을 지니시고 광범한 대중의 커다란 신뢰와 존경을 받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섰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에 오신 첫날부터 종파와 당쟁에 물젖지 않은 새 세대의 반일청년핵심들을 육성하시기 위해 모든 정력을 다바쳐 혁명활동을 벌리실 때 자기의 집과 례배당을 리용하시도록 하였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동경찰에 체포되시였을 때에는 장작상을 비롯한 길림독군서의 실권자들과 교섭을 진행하고 돈도 많이 쓰면서 출옥운동을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서 손정도목사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해주었다고, 자신께서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있을 때 장작상에게 뢰물을 먹이면서 석방시키기 위한 청원운동을 이끌고나간 주동인물도 바로 그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리고 자신을 친구의 자식으로뿐만이 아니라 일가견을 가진 혁명가로 대해주었다고 하시며 그는 이름난 애국지사였다는 값높은 평가도 해주시였다.

손정도목사가 세상을 떠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 대하여 추억하시였고 새 조국건설이 시작된 첫 시기부터 손목사와 그 가족들의 생사여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우리 당의 혁명력사연구사업을 담당한 일군들을 만나시여서는 길림에서 초기혁명활동을 하실 때 그들과 인간적으로 몹시 가까왔다고, 그들을 잊을수 없다고 교시하시였고 작가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는 그들을 문학작품에 담을수 있도록 하나하나의 생동한 사실들을 이야기도 해주시였다.

그리고 조국을 찾아온 해외교포들과 담화를 하실 때에도 손정도목사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의 가족들의 행처에 대하여 묻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시절의 그 나날로부터 60여년이라는 긴긴세월이 흐른 주체80(1991)년 4월에 미국에 살고있던 손정도목사의 아들 손원태선생이 올린 편지를 보시고 그토록 기뻐하시면서 그를 조국에 불러 친어버이의 다심한 정으로 극진히 환대해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정도목사의 가족들을 자주 조국에 불러주시여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고 평양시교외에 새집까지 지어주시였으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 5월에는 손원태선생을 또다시 만나주시고 그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바치시였다. 이날 헤여지기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원태와 같은 친구를 늘그막에 다시 만난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더 늙으면 조국에 오라고 이제 갔다가 8월달에 다시 와서 80돐생일을 쇠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하늘땅이 꺼지는 민족대국상의 시기에도 수령님의 유훈대로 손원태선생에게 80돐생일상도 차려주시고 그를 비롯한 손정도목사의 가족들이 아무때나 오고싶을 때 조국에 찾아와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집에서 살도록 해야 그들을 보는 자신의 마음도 섭섭하지 않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손정도목사의 가족들에게 대를 이어 베푸신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를 몇마디의 말이나 한두페지의 글에는 도저히 담을수 없다.

하기에 손원태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지만 언제나 김일성주석께서 크게 믿어주시고 사랑하여주시고 아끼시던 그 숭고한 뜻과 정을 가슴속깊이 간직하고 그이께 언제나 충실하였던 손정도일가의 가풍을 살려 여전히 변함없는 충신으로, 애국자로 살겠다고 격정에 넘쳐 토로하였다.

한번 맺은 정을 귀중히 여기시고 대를 이어 변함없이 지켜가시는것은 사랑과 의리의 최고화신이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천품이고 숭고한 미덕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사람들과 한번 맺은 정을 그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시며 한평생 변함없이 간직하시고 대를 이어 소중히 지켜나가도록 하신 인간중의 인간, 위인중의 위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