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가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상에 있는 섬들을 장악한것은 먼 옛날부터였습니다.》 (
고대에 이어 삼국시기에 고구려, 신라사람들은 조선동해를 리용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렸다.
우선 고구려사람들은 조선동해를 활발히 리용하였다.
《삼국사기》에는 47년에 고구려왕에게 《동해사람 고주리가 고래의 눈을 바쳤는데 밤에 광채가 났다.》는 기록과 107년 《동해곡 우두머리가 붉은 표범(물개-필자)를 바쳤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고구려사람들이 조선동해에서 고래, 물개 등 큰 짐승들과 물고기들을 잡으면서 창조적활동을 벌린 사실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있다.
한편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위한 남방진출을 하면서 5세기말~6세기초에 동남쪽으로 경상북도 영덕계선에까지 진출하여 이시기 조선동해안을 크게 차지하였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고려사》에 울진군(경상북도)이 원래 고구려의 우진야현이였다고 하였고 이 현의 이름으로부터 울릉도와 우산국, 우산도의 이름이 파생되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명이름 유래 역시 울릉도를 거점으로 고구려사람들의 조선동해를 적극적으로 리용한 사실을 알수 있게 한다.
21세기초에 울릉도에서 고구려의 굽높은 잔으로 인정되는 고배와 붉은색의 연질토기, 회청색의 경질토기가 발굴되였다는데 이 자료 역시 고구려사람들이 울릉도에로의 진출, 정착과정에 조선동해를 활발히 리용한 사실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6세기초이전에는 울릉도를 중심으로 하고 우산도(독도)를 비롯한 주변섬들을 포함하는 우산국이라는 소국이 고구려의 영향밑에 형성되게 되였다.
한편 고구려사람들은 조선동해의 울릉도를 거점으로 일본렬도의 서북해안지대에로 대대적으로 진출하면서 조선동해를 적극적으로 리용하였다.
일본의 고고학자료들에 의하면 조선동해와 면한 일본의 서북부해안지방(시마네현, 돗도리현, 후꾸이현, 도야마현, 니이가다현)에서 수많은 고구려계통의 돌각담무덤, 횡혈식돌칸무덤, 방분, 신사 등의 유적들과 고구려칼을 비롯한 유물들이 나왔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이 지역의 고분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고구려계통의 소국들이 존재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와 함께 《일본서기》에는 고구려사람들이 5세기이전에 일본에 건너가 논농사와 함께 재봉, 방직, 무기제작, 제철기술 등을 보급한 자료와 고구려중 혜자가 6세기말~7세기초에 일본에 건너가 야마도왜왕정에 불교를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벌려 불교계의 우두머리로, 당시 집권자인 성덕태자의 정치고문으로 활동한 자료, 고구려의 중 담징이 6세기초에 왜인들에게 불교를 보급하고 채색과 먹, 종이, 전애(물방아) 등 선진문화를 전파한 자료들을 전하고있다.
이 자료들은 일본의 고분문화(4~7세기)와 아스까문화(6세기말~7세기)가 고구려사람들의 조선동해를 통한 일본에로의 대대적인 진출과 그 영향밑에서 크게 이루어진것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또한 신라사람들도 조선동해를 리용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렸다.
《삼국사기》에는 256년 동해에 큰 물고기 3마리가 나타났는데 물고기의 길이는 3장(9.09m)이고 높이는 1장 2척(3.696m)이나 되였다는 기록과 416년에 동해해변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뿔이 있고 크기가 수레에 가득찼다는 기록, 639년에 동해의 물이 붉어지고 또 더워서 어족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신라사람들도 조선동해를 조사하고 리용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렸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조선동해의 울릉도를 거쳐 신라사람들의 일본에로의 대대적인 진출이 벌어지는 배경속에서 신라동해안지명들이 일본서북부지명들에 많이 반영되게 되였다.
그것은 일본의 시마네현의 북쪽에 있는 오끼섬과 그 서쪽의 작은 지부티섬이 각각 경상북도 경주 동쪽해안가에 있는 영일현의 옛 이름인 근오지의 다른 이름인 오기와 언양현의 옛 이름인 《거지화》의 다른 이름인 《지부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것을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동해바다가 주민이였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157년에 동해를 거쳐 일본렬도에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신라사람들이 일본의 이즈모지방에 진출하여 소국을 세운 사실을 반영한것이였다.
일본의 고고학자료들에 의하면 고분문화시기 유적유물로서 조선동해에 면한 이즈모지방과 오미(시가현)지방의 신라계통의 큰 무덤들과 신궁, 산성, 스에끼(질그릇) 등 수많은 유적유물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 지역에 신라계통소국이 존재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라사람들은 5세기이전에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왜인들에게 거울, 칼, 구슬 등 3가지 보물을 전달하고 제철기술과 질좋은 스에끼를 만드는 도자기기술, 저수지(뚝)를 만들어 관개에 의한 논농사법, 배무이기술과 거문고제작기술, 높은 의술 등을 전달하였다.
6~7세기에도 신라사람들은 방직기술, 농업기술, 불교문화, 새기르기, 음악 등 선진문명을 보급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신라사람들도 고구려사람들과 함께 울릉도를 통해 일본렬도에 대대적으로 진출하면서 조선동해를 적극적으로 리용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삼국사기에 고구려, 신라인민들은 조선동해를 장악하고 창조적활동을 활발히 벌리면서 적극적으로 리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