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녀성동맹창립 70돐에 즈음하여-
위대한 조선로동당창건 7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인 우리는 조선민주녀성동맹창립 70돐을 맞이하였다.
뜻깊은 이날을 맞으며 우리는 위대한
위대한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
녀성문제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에 관한 문제이며 인민대중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그들의 지위와 역할을 높일데 대한 정치적문제이다.
녀성들의 자주성의 유린에 근원을 두고있는 녀성문제는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한 부분으로, 사회혁명의 근본문제의 하나로 되며 그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력사적사명으로 하고있는 로동계급의 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업으로 된다.
위대한
위대한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총대를 직접 틀어쥐고 항일전에 용약 뛰여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국의 해방과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오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위대한
조선녀성운동에 쌓아올리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업적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은 우리 나라 녀성운동을 위대한
위대한
녀성운동의 강화발전에서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확고히 보장하는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려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녀성들속에 깊이 들어가시여 그들이 위대한
주체적인 항일무장투쟁로선과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 당창건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이것은 조선녀성운동이 자기발전의 첫 시작부터 위대한
해방후 녀성운동에 대한 위대한
분산적으로 활동하고있던 몇개의 녀맹단체가 하나로 통합되여 민주녀성동맹이 조직되는 틈을 타서 녀맹대오안에 기여든 일부 불순분자들은 녀맹조직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이모저모로 책동하였다.
주체34(1945)년 12월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결정관철을 위한 녀성동맹의 과업을 토의하는 녀맹중앙위원회 간사회의에서 일부 불순분자들은 공산당의 정치로선만이 아니라 《대동단결》하여 리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부르죠아공화국을 세울데 대한 민주당의 《정치로선》도 함께 토의해야 한다고 하면서 회의를 파탄시키려고 책동하였다. 이것은 녀성운동을 분렬시키려는 음흉한 기도에서 출발한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일군들에게 불순이색분자들의 정체를 까밝히시고 녀맹은 로동계급의 당의 령도를 받아야 녀성해방의 과업을 완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녀맹이 공산당의 정치로선을 적극 지지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이와 함께 녀맹핵심들을 발동하여 불순이색분자들의 반동적책동을 폭로규탄하고 녀맹대오안에서 그자들을 조직적으로 숙청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후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중앙위원회 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방직후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내부형편이 복잡하였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그때 우리가 불순분자들을 제때에 들어냈기때문에 녀성운동의 분렬을 막고 녀성대오의 조직사상적통일을 보장할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였다.
해방후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민주녀성동맹의 강령작성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위대한
주체35(1946)년 3월 강령초안작성정형을 료해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1920년대 자산계급출신의 녀성들이 들고나온 인권옹호와 관련한 강령을 그대로 받아외우거나 지난날 사회주의녀성운동자들이 제창하던 프로레타리아녀성해방강령을 기계적으로 옮겨놓는 두가지 편향을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모든 녀성들이 당의 기본정치과업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을 녀맹의 첫째가는 임무로 내세워야 하며 이와 함께 녀성들을 식민지적반봉건적착취에서 가장 철저히 해방하는 문제, 그들의 정치경제적지위를 높일데 대한 문제, 녀성들을 천시하는 전통적인 봉건적악습과 세기적무지와 몽매에서 그들을 해방할데 대한 문제들을 강령에 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심혈을 기울여 보살피신 민주녀성동맹의 강령이 마침내 주체35(1946)년 5월 10일부터 진행된 민주녀성동맹 제1차대표자회에서 채택됨으로써 녀성들과 녀맹조직이 자기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확신성있게 일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녀성운동의 전통을 옳게 계승하는것은 녀성운동을 위대한
해방후 민주녀성동맹이 결성된 후 녀성들과 녀맹일군들은 조선녀성운동의 뿌리에 대하여 똑똑한 견해를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그것은 해방후 우리 나라 출판물들에서도 표현되였다.
어떤 책에서는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시원을 주체13(1924)년에 조직되였던 《조선녀성동우회》로 보았고 지어 어떤 책에서는 일제의 어용출판물이였던 《애국부인회》의 활동을 찬양하고 내세우는 반동적인 견해까지 나타났다. 또 어떤 책에서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모든 투쟁을 조선녀성운동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으로 내세우고있었다.
항일의 불길속에서 마련된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력사적뿌리를 정확히 인식시키는것이 녀성운동발전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려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수많은 녀성들과 녀맹일군들을 만나시여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전통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심어주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시였다.
함경북도에서 정치활동을 벌리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4(1945)년 12월초 녀맹조직준비위원회를 찾으시여 녀성일군들에게 위대한
한편 녀맹조직이 우리 나라의 참다운 혁명적녀성운동의 전통이 언제부터 이룩되였는가 하는 내용을 가지고 녀성들속에서 강연, 해설담화사업을 널리 진행하며 출판물을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시였다.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혁명전통이 튼튼히 고수되고 그것이 빛나게 계승발전되게 된데는 김정숙동지의 이렇듯 크나큰 로고와 심혈이 깃들어있다.
참으로 위대한
조선녀성운동에 쌓아올리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업적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은 다음으로 광범한 녀성들을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광범한 녀성들을 반일부녀회에 묶어세우기 위한 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녀성들을 조직에 묶어세우고 그들을 혁명화하는것은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였다.
1930년대 초 연길현 부암유격구를 비롯한 여러 유격구에서 활동하시던 나날 녀성들을 계몽시키고 계급적으로 각성시켜 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1930년대 후반기 광범한 녀성들을 반일부녀회에 망라시키기 위한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시였다.
이 시기 광범한 녀성들을 반일부녀회에 묶어세우는것은 위대한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과의 사업의 첫 고리를 로인들과의 사업으로 보시고 그들을 교양하는 한편 지하조직성원들의 누이, 안해, 어머니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어 그들을 핵심으로 키우도록 하신데 기초하여 4월 20일 장백현 도천리반일부녀회를 결성하시였다.
뒤이어 주체26(1937)년 여름에는 신파, 신흥, 단천, 리원, 북청 등을 비롯한 국내깊이에 진출하시여 조국광복회조직들과 부녀회를 조직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이르는곳마다에서 각계각층의 광범한 녀성들이 혁명조직에 망라되고 조국해방위업수행에 힘있게 떨쳐나설수 있게 되였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녀성운동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 조선민주녀성동맹을 튼튼히 꾸리고 광범한 녀성들을 녀맹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더욱 정력적으로 벌려나가시였다.
해방후 녀성운동앞에는 하루빨리 녀성들의 정치조직을 내오고 거기에 광범한 녀성들을 결속하여 새 조국건설에로 한사람같이 불러일으켜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이로부터 위대한
녀맹이 결성된 초기 조직건설사업에서는 편향들이 나타나고있었다.
즉 녀성조직이 중앙과 도, 시, 군, 면소재지를 비롯한 도시와 가두를 중심으로 결성되고 공장과 농촌녀성들속에 뿌리박지 못하고있었다.
평양곡산공장만 하여도 종업원 1 100명 가운데서 녀성이 800명이나 되였지만 녀맹조직이 나와있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4(1945)년 12월 청진시안의 녀맹일군들에게 하신 말씀과 주체35(1946)년초 중앙녀맹일군들의 협의회에서 하신 말씀들에서 녀성동맹은 반드시 근로녀성들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한 녀성들을 자기 대렬에 묶어세우며 그들을 꾸준히 교양하여 새 민주조선건설에 적극 떨쳐나서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주체35(1946)년 3월 중앙녀맹에서 각 도, 시, 군녀맹조직들에 과업을 주어 공장과 농촌들에 녀맹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빨리 추진시키도록 하시였으며 한편 곡산공장에서 녀맹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도와주도록 하시였다.
중앙녀맹에서는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따라 물엿직장에 먼저 시범적으로 녀맹초급단체를 내오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공장의 모든 직장들에 녀맹초급단체를 내왔으며 3월 하순에는 곡산공장녀맹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곡산공장녀맹조직이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 녀성운동은 근로녀성들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와 함께 녀맹조직에 근로녀성들만을 받아들이고 중소기업가, 상인, 종교인 등 여러 계층의 녀성들을 녀맹가입대상에서 제외시키고있는 편향을 극복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4(1945)년 11월 녀맹이 결성될 당시 15만명이였던 녀맹원수는 주체35(1946)년 5월 녀맹 제1차대표자회 때 이르러 60여만명, 주체35(1946)년 말에는 무려 100여만명으로 장성하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민주녀성동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는 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다.
녀맹조직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선차적인 문제는 녀맹조직의 지도체계를 합리적으로 세우는것이였다.
도시와 농촌의 이르는곳마다에서 녀맹조직들이 확대됨에 따라 그에 대한 조직지도체계를 옳게 세우는것은 녀맹사업을 정연하고 실속있게 진행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당시 평양시만 하더라도 시안에 80여개의 리녀맹조직들이 조직되여있었다.
시녀맹이 시안의 80여개 리녀맹조직을 직접 대상하여 일하다나니 강연이나 해설담화사업 하나 포치하자고 해도 여간만 분주하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녀맹아래에 리녀맹과 공장, 기업소, 기관녀맹단체들을 지도하는 중간단위를 내올것을 발기하시고 사동특별구녀맹조직의 경험을 받아들이게 하시였다.
당시 사동지역에는 3 000여명에 달하는 녀맹원들을 하나의 리녀맹에 망라시켜 생활시키는것이 어려운 조건에서 남주택, 북주택, 태성지구 등 부락단위로 녀맹지부를 결성하고 그것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사동특별구녀맹조직을 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경험을 받아들여 시녀맹산하의 동평양지구녀맹위원회를 먼저 내오신데 이어 중구, 서구, 북구에도 지구녀맹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였다.
지구녀맹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중앙과 시녀맹의 지도가 기층녀맹조직들에 더 잘 미치게 되였으며 사업에서 복잡성을 없애고 녀맹일군들이 자기 사업을 더 실속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민주녀성동맹을 튼튼히 꾸리기 위하여 녀성들속에서 조직생활을 강화하고 그들의 정치사상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잘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녀맹원들의 조직생활을 강화하고 그들의 정치의식수준을 높이는것은 녀성들이 민주조선의 녀성다운 사상정신적풍모를 갖추기 위한 중요한 방도였으며 나아가서 민주녀성동맹의 질적공고화를 위한 필수적요구였다.
녀성들의 사상의식수준을 높이는데서 중요한 문제로 나선것은 그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빼고 민주조선의 녀성으로서의 건전한 사상의식수준을 갖추는것이였다. 나라는 해방되였으나 미신행위와 같은 낡은 사회의 페풍은 녀성들의 머리속에서 인차 가셔지지 않았다.
간고한 항일의 나날 어려운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시면서 각계층 군중과의 사업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의 생활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미신행위를 극복하자면 묘리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시고 이 문제해결에 깊은 주목을 돌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들이 자기 고장에서 실제한 사실을 가지고 미신타파를 주제로 한 소품들을 만들어 녀성들속에 들어가 공연하도록 가르쳐주시였다. 한편 지난날 먹고 살아가기 위해 무당이나 점쟁이노릇을 하던 녀성들을 장악하고 그들을 교양각성시켜 대중모임장소에서 미신의 허황성을 폭로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널리 리용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주체35(1946)년 4월 양덕군 대탕지마을에 가시였을 때에는 그곳에서 치료받던 녀성들속에 들어가시여 미신행위의 해독성을 차근차근 깨우쳐주시였다.
비범한 안목으로 문제해결의 묘술을 찾아내시고 혁명적전개력으로 사업을 밀고나가시는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과 보살피심에 의하여 미신행위는 점차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였으며 녀성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출판물과 방송선전을 통하여 녀성들을 각성시키고 교양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위대한
잡지《조선녀성》은 위대한
해방후 각계각층의 광범한 녀성들이 민주녀성동맹에 망라되고 녀성동맹이 조직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되게 됨으로써 녀성들이 단합된 위력한 력량으로 새 조국건설사업에 이바지할수 있는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조선녀성운동에 쌓아올리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업적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은 다음으로 녀성들을 조국해방위업과 새 조국건설사업에 힘있게 불러일으키심으로써 녀성운동이 주체혁명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도록 하신것이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성들이 혁명과 건설에 적극 참가하는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업을 더욱 힘있게 다그치고 녀성들의 사회적지위와 역할을 높이며 혁명실천속에서 그들의 사상정신적풍모를 개변하기 위한 중요한 담보로 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 사회건설에서 녀성들이 노는 역할을 헤아려보시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녀성들을 조국해방위업수행에로 적극 불러일으키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군사정치활동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 때 다진 맹세와 위대한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녀대원들뿐만아니라 모든 녀성들이 조국해방위업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하기에 장백현 도천리와 가재수, 국내 신파를 비롯한 각지에서 수많은 녀성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식량과 피복, 신발, 소금 등을 보내주기 위한 원호활동에 적극 떨쳐나섰으며 자기의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쳐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활동을 보장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에도 녀성들이 부강한 새 조국건설에 적극 기여하도록 하시였다.
녀성들이 새조국건설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는것은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빨리 다그칠수 있게 할뿐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녀성들의 사상정신적풍모를 개변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민주녀성동맹이 첫 인민경제계획수행에로 전체 녀성들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도록 하시였다.
당시 일부 녀성일군들은 경제사업에 낯을 돌리지 않고 국가의 경제과업수행과는 녀맹이 크게 인연이 없는것과 같이 생각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6(1947)년 2월하순 중앙녀맹일군들을 만나시여 방대한 경제건설과제는 녀성들의 적극적인 참가를 전제로 하고있으며 또 그들이 동원되여야만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의 대중정치조직인 녀성동맹이 녀성들을 나라의 경제계획수행에로 불러일으키는것을 자기의 중요한 임무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을 인민경제계획수행에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평양제사공장을 시범단위로 정해주시고 주체36(1947)년 4월 공장을 찾으시여 걸린 문제들을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평양제사공장에서는 년간계획을 이해 10월 9일 현재 100% 완수하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녀성들속에서 건국사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운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속에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로력지원사업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시였다.
특히 주체35(1946)년 2월 녀맹조직들을 발동하여 당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나섰던 식량문제를 푸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헌포운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녀맹단체들에서는 궐기모임이 진행되고 격문들이 채택되였으며 헌포운동해설대가 무어져 각 시, 군들에 나가 정치선전사업을 벌렸다.
녀성들의 첫 대중운동으로 벌어진 헌포운동은 주체35(1946)년 6월에 이르러 20필의 목표를 빛나게 수행하였으며 이것은 나라의 식량문제를 푸는데 큰 도움으로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밖에도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옷을 해입히시려는 위대한
김정숙동지께서 이끌어주신 녀성들을 새 조국건설사업에 적극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업은 녀성들을 조직적으로 단련시키고 정치적으로 각성시켰을뿐아니라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의 경제적토대를 튼튼히 다지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참으로 조선녀성운동을 위대한
세월은 멀리 흘렀으나 고귀한 한생을 바치시며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대를 튼튼히 세워주시고 자랑찬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김정숙동지의 고귀한 업적은 오늘도 래일도 우리 혁명의 년대기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