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수 박사 궁영숙
2023.6.16.
풍치수려한 대성산의 주작봉마루에는 륭성번영하는 주체조선의 수도 평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며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이 렬을 지어 서있다.
사진. 대성산혁명렬사릉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렬사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전사들에게 돌려주신 크나큰 신임의 표시이고 선물이며 그들의 투쟁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의 상징입니다.》 (《김정일전집》 제38권 436페지)
주체34(1945)년 8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은 승리적으로 끝나고 조국은 해방되였다.
장구한 기간 이국땅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고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대원들은 누구나 감개무량함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이날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나간 동지들에 대한 간절한 생각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9월 16일 군사정치간부들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된 건국투사가 되자》라는 담화를 하시면서 우리는 이국의 산야에 그들을 묻고 비석 하나 제대로 세워주지 못하였다고, 그들을 두고 조국으로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혁명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념원대로 해방된 조국땅우에 인민의 세상을 반드시 일떠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가렬한 항일전의 나날에 함께 싸우다 전사한 동지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혁명적의리와 전우애에 대원들은 깊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대원들은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중에 얼마나 원대한 구상을 안고계시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해방된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해방후 조국의 첫눈을 보니 희생된 동지들의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그처럼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혁명렬사들의 위훈을 영원히 빛내주시기 위하여 마음쓰시며 렬사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찾아내시여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땅의 아늑한 곳에 안장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렬사들의 고향에 동상도 세워주시고 도시와 마을, 공장과 학교들을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해주시였으며 해마다 생일이나 서거일에는 출판물과 방송을 통하여 그들의 생애와 업적도 널리 소개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부족하시여 희생된 전사들의 혁명업적을 력사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분묘를 한곳에 모아 혁명렬사릉을 세울것을 구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 탄생 60돐을 앞두고 온 나라가 감격과 기쁨으로 설레이던 주체61(1972)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성산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오르내리시며 몸소 주작봉마루에 혁명렬사릉의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리고 4월 17일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당시)를 여시고 혁명렬사릉건설을 전당적과업으로 내세워주시면서 빨리 건설할데 대하여 구체적인 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주체62(1973)년 8월과 주체63(1974)년 9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건설장을 찾으시고 혁명렬사릉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렬사릉에 안치할 투사들 100여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혁명에 참가한 년대와 전사한 날자와 지명까지 상세하게 적어주시였고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떠나간 투사들을 형상하기 위한 대책도 친히 세워주시였으며 그들을 안치할 순위와 렬사들의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렇듯 혁명전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하고 열렬한 혁명적사랑, 끝없는 믿음이 그대로 드놀지 않는 고임돌로, 어떤 풍화의 영향도 받지 않는 영원한 조각상으로 되여 주체64(1975)년 10월 혁명렬사릉이 세워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맞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을 보다 웅장하게 현대적으로 개건확장할데 대한 구상을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새롭게 개건확장할 결심을 하신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의 깊은 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어오시는 전화를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박눈이 쏟아지니 산에서 싸우던 때가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적후공작나갔던 전사들이 돌아오지 않아 밀영밖에서 눈을 맞으시며 그들을 기다리시던 일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모두가 잠이 든 이밤에 누구에게 전화를 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밤에 피어린 항일의 나날을 회고하시며 한시간나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밤 잠못이루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생각하시며 집무실에서 한밤을 지새우시였다.
이튿날 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밤에 있은 일을 이야기해주시고나서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많은 투사들이 희생되였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잊지 못해하신다고 하시면서 렬사릉을 더 잘 건설하여야 하겠다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전면적으로 개건확장할것을 결심하시고 일군들에게 혁명렬사릉개건공사를 어버이수령님의 의도에 맞게 통이 크게 작전하고 대담하게 할데 대해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1(1982)년 10월 대성산혁명렬사릉 개작형성시안을 보아주시면서 혁명렬사릉개건확장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고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지시문을 내려보내여 혁명렬사릉개건확장공사가 전당적, 전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되도록 하시였으며 당원돌격대를 비롯한 강력한 건설력량을 꾸려주시였다. 그리고 공사 전기간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주체73(1984)년 6월과 11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건설장에 나오시여 혁명렬사릉개건확장공사를 몸소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주체73(1984)년 여름 현지에 나오시여 일군들이 준비해놓은 반신상견본들을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조대리석으로 만들어놓으면 우리의 량심이 허락치 않는다고 하시면서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을 다른 재질로 만들지 말고 동으로 만들어 세우는것이 제일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동사정이 아무리 긴장하다고 하여도 렬사들의 반신상을 동으로 만들어 세워야 무게도 있고 보기도 좋다고, 보다 중요하게는 우리의 정성이 깃들게 되고 그 품위와 정중성도 더욱 높아지게 되여 좋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반신상구역 뒤배경에는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기발을 형상하여 세우도록 하시였으며 혁명렬사릉 화환진정대에는 오각별대신에 영웅메달을 크게 잘 부각해놓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어린 친필비를 정중히 세우도록 해주시였다.
읽어볼수록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와 추모군상, 항일혁명렬사들의 영웅적투쟁업적을 상징하는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 그리고 그 웃쪽으로 넓게 전개된 반신상구역에 항일혁명렬사들의 동상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세워져있고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기발이 웅장하게 형상되여있는 대성산혁명렬사릉은 혁명동지들에 대한 절세위인들의 열렬한 사랑과 혁명적의리의 결정체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이고도 세심한 령도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맞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로동당시대의 불멸의 대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서게 되였다.
혁명렬사릉이 훌륭히 개건확장됨으로써 혁명렬사들의 투쟁정신과 업적을 영원토록 빛나게 내세워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이 빛나게 실현되게 되였다.
참으로 대성산혁명력사릉은 동지애로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완성시켜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의 력사를 후대들에게 영원히 전해주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불멸의 대기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