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박사 부교수 김기철
2019.8.2.
미래를 떠난 혁명이란 없다. 미래를 사랑하는것은 혁명가들의 고유한 기질이며 승리할 래일을 그려보며 웃음짓고 죽음을 맞받아나가는것이 참다운 혁명가들이다. 하기에 인민대중의 투쟁사에는 조국과 혁명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친 참다운 혁명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력량상의 현격한 차이로 강대한 적과 맞서 판가리싸움을 벌리던 그 준엄한 시기에 조국과 혁명의 앞날을 위하여 전후복구건설과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치고 그 실현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과 같으신 강철의 령장, 창조와 건설의 영재를 아직 인류는 알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계획도를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용사들에게는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더욱 북돋아주게 될것이며 원쑤들에게는 공포를 주고 무서운 폭탄을 들씌우는것으로 될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13권 7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준엄한 시기에 전쟁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혁명적락관주의, 천리혜안의 과학적예견성과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으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시는 전대미문의 기적을 이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원대하고 웅대한 구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신것은 전쟁의 초시기라고 할수 있는 주체39(1950)년 1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앞으로 전쟁이 끝나면 인차 인민경제복구건설에 착수할수 있도록 지금부터 필요한 준비사업을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고 적들이 공식석상에서 원자탄사용에 대하여 폭언한 직후여서 앞으로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되겠는지 누구도 예상할수 없었던 시기였기때문이다.
그 준엄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며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의 방향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4월에 있은 과학자대회에서 나라의 국방력과 경제토대를 더욱 강화하며 장래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축성을 위한 일정한 물질기술적조건을 마련하는것을 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에는 당면하게 전시공업생산의 토대를 강화하고 전시생산을 늘임으로써 전쟁수행에 필요한 물질적수요를 원만히 보장하고 인민생활을 빨리 안정시키며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가장 정확한 길이 밝혀져있었다. 또한 여기에는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발전시키고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를 위한 준비사업을 예견성있게 추진시킴으로써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적개조를 다같이 밀고나갈수 있는 곧바른 길이 명시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립장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우리자체의 힘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투철한 원칙적립장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으시였을 때 전후복구건설을 다른 나라의 원조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힘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력갱생은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시기부터 시종일관하게 견지하여온 혁명정신이라고, 전후복구건설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민자신인것만큼 우리는 자체의 힘,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에 의거하여 방대한 복구건설을 진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의 불구름속에서도 전후복구건설의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심으로써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은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전쟁이 끝난 다음 지체없이 전후복구건설전투를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주시였다.
전후복구건설을 진행하자면 복구건설계획도와 많은 인재와 기계설비, 원료자재들이 있어야 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난 다음 지체없이 복구건설에 달라붙자면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복구건설계획도와 인재와 기계설비, 원료자재들을 마련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명의 사람, 한kg의 철, 한g의 원유도 전선에 돌려야 했던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양시를 비롯한 온 나라의 복구건설계획도를 우리 인민의 지향과 영웅적기상을 반영하여 대담하고 통이 크게 작성하도록 하시였다.
주체40(1951)년 1월 21일 설계일군들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 평양을 전쟁전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현대적으로 복구건설하기 위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 작성방향을 제시해주시면서 평양시뿐아니라 도소재지들과 전국의 모든 도시들을 복구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미리부터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총계획도가 다 되였을 때에는 설계일군들이 작성한 총계획도를 친히 보아주시고 부족점을 지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거듭되는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가 완성되고 뒤이어 각 도소재지들과 도시들의 복구건설설계도들도 만들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떠메고나갈 민족간부육성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명의 전투원이 그토록 귀한 때에 한창 전호속에서 싸우고있는 대학생출신의 전투원들을 과학탐구의 길, 배움의 길로 부르시였다.
그리하여 전선에서는 적들의 《하기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있을 때 전선의 군인들이 후방으로 소환되는 전설같은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포연속에서 운영하는 대학사업이 념려되시여 몸소 대학들을 찾아주시였다.
주체41(1952)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송리에 나가있던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을 찾으시여 민족간부양성방향에 대하여 환히 밝혀주시였고 교수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주시였으며 교직원, 학생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을 떠메고나갈 민족간부들과 인재들이 수많이 육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파괴된 경제를 빨리 복구하고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물질기술적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희천을 비롯한 나라의 여러곳에 기계제작공업기지를 꾸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데 큰 힘으로 될 대규모적인 국영농목장들과 농기계임경소들을 창설하시였으며 나라의 자원조사사업과 자연개조대상지 조사사업들을 조직하시고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예견하시여 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1(1952)년 5월에 전국의 중요세멘트공장들을 복구확장하여 생산을 시작하며 각 도, 시, 군에 벽돌공장과 건재생산기지를 꾸리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쟁의 포화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가 작성되고 물질적토대와 기술력량이 마련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전후복구건설과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한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시고 그 준비를 착실히 갖추어나가신 만고의 위인이시며 창조와 건설의 영재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