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마당가에서 찬이슬을 맞으신 사연

 2022.3.2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김일성전집》 제95권 2페지)

이민위천은 우리 수령님의 한생의 좌우명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은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끝없는 헌신의 한생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인민사랑의 길에는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인 주체41(1952)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동군 동암면 원화리(지금의 평원군 원화리)를 현지지도하시였다.

70호가량 되는 이 부락의 주민들은 일제시기 모두 소작농이였다. 해방후 토지개혁에 의하여 생활형편이 어느 정도 펴이기는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청장년들이 대다수 군대에 탄원하여나가고 더우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감행된 적들의 야수적학살만행과 략탈로 말미암아 영농토대가 매우 빈약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락에 도착하시였을 때는 샛별이 반짝이는 이른새벽이였다.

수행한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들어가실 방을 마련하려고 리녀맹위원장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집 뜰안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주인을 깨우지 말라고 하시면서 단잠을 자는 사람을 깨우면 얼마나 곤해하겠는가, 이제 얼마후이면 날이 밝겠으니 주인이 일어날 때까지 마당에 앉아 휴식이나 하자고 하시며 그를 만류하시였다.

《여기서야 어떻게…》

수행한 일군은 어쩔줄 몰라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괜찮다고, 마당에 앉아 이렇게 아침공기를 마시는것이 더욱 좋다고 하시며 짚단이나 얻어오라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짚단우에 앉으시며 일군들을 모두 와앉으라고 하시였다.

아직 싸늘한 새벽바람이 키낮은 수수바자를 넘어 마당으로 불어드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짚단우에 앉으시여 찬이슬을 맞으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시였다.

이윽고 어둠이 서서히 가셔지고 날이 밝자 잠에서 깨여난 리녀맹위원장이 집밖으로 나왔다.

눈을 비비며 마당에 내려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걸어오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아니, 수령님께서…》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는 송구스러움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어버이수령님을 방으로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밖이 더 좋으니 밭머리에 나가 이야기하자고 하시면서 밭벼를 심는 원화벌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들판으로 나가시여 농민들과 함께 손수 씨앗도 뿌리시고 삼태기를 들고 일군들에게 퇴비주는 방법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원화벌을 둘러보시며 장차 원화리일대의 밭을 논으로 풀고 밭에는 관수를 하도록 하며 주변야산들에는 과일나무와 뽕나무를 심으며 아담한 문화주택을 짓고 전기까지 끌어들일데 대한 원화리의 휘황한 전망을 밝혀주시였다.

원화리인민들은 인민을 그토록 사랑하시고 고락을 함께 하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은정에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정녕 이 세상에 어느 령도자가 인민의 단잠을 깨울세라 마당가에서 찬이슬을 맞으시며 기다리신 그런 꿈같은 일이 있었던가.

이것은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수놓으실수 있는 동서고금 그 어느 력사에도 찾아볼수 없는 인민사랑의 전설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