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부원을 무제한으로 략탈하며 조선인민의 고혈을 짜내기 위하여 우리 나라에 자본을 투자하였습니다.》 (《
일제는 우리 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는 첫날부터 저들의 가치없는 통화를 강제류통시킴으로써 우리 나라 인민들의 재부를 야수적으로 수탈하였을뿐아니라 우리 나라의 화페제도를 저들에게 예속시키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이미 우리 나라에 재정금융적지배와 략탈의 척후병으로 침입해들어와있던 일본《제1은행》부산지점에서 1902년 5월부터 《제1은행권》을 발행하여 우리 나라에 뿌리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서 그것을 봉건정부의 법화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모략책동을 감행하는데 이르렀다.
이러한 강도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제는 우리 나라에 저들의 주화, 은행권을 강압적으로 마구 뿌려 우리 나라의 통화제도를 수습할수 없는 혼란속에 빠뜨려놓고 그것을 수습한다는 미명밑에 저들의 통화로 우리 나라 통화제도를 완전히 지배하는 식민지화페제도를 세웠는데 그것이 해방전에 놈들이 감행한 이른바 《화페정리사업》이다.
《화페정리사업》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 류통하고있던 백동화를 비롯한 주화를 걷어들여 《제1은행권》을 기본으로 하는 저들의 통화로 바꾸어놓은 조작이다. 다시말하여 일제가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은 《제1은행권》을 봉건정부의 법화로 규정하고 그것을 우리 나라에서 무제한 강제류통시킬것을 강요한 조치였다.
일제가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화페제도는 일제의 화페제도에 완전히 예속되였으며 민족화페의 자주권이 일본침략자들에게 여지없이 침해당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화페정리사업》은 일제가 우리 나라의 화페제도를 예속시키고 우리 인민의 재부와 화페소득을 무한정 략탈해갈수 있는 지반을 마련해놓는 조건으로 되였다.
일제가 해방전에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의 략탈성은 무엇보다먼저 그것이 불환지페람발에 의한 인플레적수탈제도라는데서 드러났다.
1905년 1월 30일 봉건정부는 《제1은행》이 강요한 계약에 합의하였는데 이 계약 3조에서 일본침략자들은 《…한국정부는 제1은행권을 공인하고 공사의 거래에 관계없이 무제한 통용시킬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제1은행권》을 우리 나라의 유일한 법화의 자리에 올려놓게 되였으며 봉건정부는 나라의 화페적자주권을 송두리채 빼앗기게 되였다.
일제는 《화페정리사업》을 통하여 《제1은행권》뿐아니라 저들의 모든 주화까지도 우리 나라의 법화로 규정하고 무제한 람발하여 류통시킴으로써 인플레적수탈을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단행할수 있게 되였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자들이 저들의 식민지나라와 화페적거래를 하는 경우 환자시세를 저들의 식민지략탈정책에 유리하게 내려먹여 식민지에 부등가교환을 강요하기 위한 공간으로 리용하였으며 이러한 예속적인 환자시세에 기초하여 대외무역도 국제결제도 화페적으로 예속시키고 지배하는것을 상투적수법으로 삼았다.
지난 시기 영제국주의자들이 인디아에서 조작한 식민지화페제도도 철저한 예속성을 띠고있었으나 인디아의 민족화페단위인 루피를 말살하지는 못하였으며 오직 환자시세와 발권제도를 좌지우지하는 방법으로 루피를 영국파운드의 종속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일제는 우리 나라에서 력사적으로 내려오던 민족화페단위를 흔적마저 없애버리고 저들의 화페단위를 고스란히 강요하였다.
일제는 처음부터 우리 나라의 민족화페자체를 말살하는 책동을 감행했기때문에 놈들이 1945년 8월 패망할 때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환자시세라는것이 문제로 제기될 여지조차 없었다. 이것은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화페정리사업》을 통하여 부식한 식민지화페제도가 첫날부터 비할바없는 예속성과 략탈성을 띠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일제가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의 략탈성은 다음으로 그 방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일제는 낡은 주화와 새 주화를 교환할듯이 선전하였지만 그놈들의 본심은 낡은 주화를 전적으로 종이쪼각에 지나지 않는 《제1은행권》과 교환함으로써 낡은 주화의 조재를 무상으로 수탈하려는데 있었다.
백동화교환에서는 그 액면대로 1잎당 2전 5리로 평가하기로 되였지만 제가치대로 평가한다는 구실밑에 품위, 량목인상에 따라 정화만 제값대로 교환하고 그렇지 못한것은 1전으로 평가하거나 무효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더욱 질이 나쁜것은 다시는 못쓰게 절단하여 반환하는 악랄한 책동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백동화중에서 질이 나쁜것들의 많은 부분은 일제가 불법적으로 대량 주조하여 뿌려놓은것들이였다.
일제는 교환을 하기 위하여 먼저 서면으로 신청한 무데기금액에 한해서만 교환에 응하게 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이 복잡한 수속절차를 몰라서 교환에 제때에 참가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교환하려고 하여도 금액이 많지 못한탓으로 응할수 없었으며 이 사업에서 결국 제거되여버렸다. 특히 악화가 대량적으로 류통되고있었던 조건에서 그것을 가지고있는 인민들은 그것이 무효로 되거나 교환되더라도 액면가격보다 훨씬 적은 금액밖에는 받지 못하였다.
일제는 저들이 보유한 주화의 가치는 보존하고 우리 인민들이 보유한 주화의 가치는 무효화하는 악랄한 기만책동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화페정리에 대해서 일본인들에게는 그 방법을 사전에 알려주고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을 엄격한 비밀에 붙여놓았다.
그러므로 악화가 무효화된다는것을 사전에 알게 된 일본인들은 저들이 보유하고있던 악화를 모조리 골라서 우리 인민들이 보유한 량화와 슬쩍 바꾸어버렸다.
우리 인민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결국 악화만 보유하게 됨으로써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일제가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의 략탈성은 다음으로 우리 나라 농민들의 토지매수에서도 나타났다.
일본상인들은 악화를 수집하여 그것으로 아직 《화페정리사업》의 내용을 모르는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매수하였다.
농민들은 비교적 비싼값으로 흥정하는 간교한 일본상인들에게 속아 토지를 팔아넘김으로써 결국은 그들에게 토지를 공짜로 넘겨주는 봉변을 당하였다.
이리하여 화페교환과정에 침략자들의 수중에 더욱 큰 재부가 집중되는 반면에 우리 나라의 근로인민들과 중소자본은 대량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가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의 략탈성은 다음으로 《화페정리사업》과 관련한 비용을 부당하게 봉건정부에 차관의 방법으로 들씌우고 그 교환조건으로 리권을 강요하는데서도 드러났다.
일제가 《제1은행》을 내세워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은 그자체가 우리 인민들의 화페소득을 수탈하는 과정이며 또한 일부 주화를 제대로 교환해주는 경우에도 그것은 종이쪼각에 지나지 않는 은행권으로 바꾸는 무상수탈과정이였기때문에 비용이 따로 요구될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봉건정부에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300만원의 막대한 비용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이 비용을 저들이 빌려준다는 명목밑에 봉건정부와 《제1은행》사이에 이른바 《차입계약》놀음을 벌려놓았는데 이 《계약》에서는 차관교환조건으로 일본정부가 관세권을 가진다는것을 밝혀놓았다.
결국 일제는 300만원 차관과 6%라는 비싼 리자로 봉건정부를 금융적으로 얽매여놓았을뿐아니라 그 교환조건으로 자주국가가 양보할수 없는 절대권에 속하는 관세권을 가로챔으로써 봉건정부의 중요재정권까지 빼앗았다.
일제가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의 략탈성은 다음으로 《화페정리》과정을 통하여 조선에도 일본에서와 꼭같은 금본위제를 세운다고 떠벌이면서 제놈들이 조작한 식민지화페제도의 본질과 정체를 가리우고 더 많은 화페적수탈을 한데서 드러났다.
일제는 《화페정리사업》을 감행하면서 《한국화페 본위는 일본것과 동일하다.》고 떠벌이면서 조선의 화페제도가 일본의 화페제도와 같다고 하였다.
조선의 화페제도가 일본의 화페제도와 같다고 떠벌인것은 우리 나라의 민족화페를 말살하는 동시에 우리 나라의 화페제도를 일본의 화페제도에 완전히 종속시키기 위한 기만적책동을 드러내놓은것이다.
놈들은 《화페정리》를 통해서 우리 나라의 화페제도를 통채로 삼켜 말살하고 식민지화페제도를 새로 조작하였다.
새로 조작된 화페제도는 일제침략자들의 통화금융적략탈의 도구이다. 그것은 《화페정리》과정을 통하여 우리 나라에서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한 민족화페제도를 완전히 말살하고 불환지페인 《제1은행권》을 우리 나라 전역에 강제류통시켜 법화로 내려먹이고 그것을 람발하여 우리 인민들의 재부와 피땀을 닥치는대로 짜내는 식민지화페제도였기때문이다.
일제는 《화페정리사업》을 감행하면서 조선에도 《금본위제》를 적용하게 되였다고 떠벌이였다.
원래 금본위제라고 할 때 그것은 류통령역에 금화와 자유태환을 담보하는 태환은행권, 보조주화 등이 류통되면서 금화가 본위화로서 화페류통의 기초를 이루는 통화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세웠다고 하는 《금본위제》는 태환은행권을 일본의것에 대응시키고 일본태환권을 금과 같은 자리에 앉혀놓은 예속적통화제도이며 발권량이 저장금에 의하여 규제되는것이 아니라 일제의 지령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거짓 《금본위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상 본위화가 없는 《금본위제》라는 요술로 우리 인민들을 기만한 《금본위제》였으며 금 또는 금화의 자유태환이 거세된 종이쪼각의 통화제도를 조작해놓고 그것을 《금본위제》로 위장한것이였다.
한g의 금이라도 닥치는대로 략탈해간 일제가 저들의 나라에서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주조하고있던 금화를 우리 나라에 가져다가 은행권과 바꾸어준다는것은 도대체 있을수 없는 일이고 또 일제가 저들의 금화 한잎도 우리 나라에 가져다 류통시켜본 일도 없었다.
일제가 조작해놓은 《금본위제》란 《제1은행권》을 일본의 태환은행권과 교환해주는 《금본위제》라는 뜻인데 우리 나라에서 강제류통시킨 식민지은행권으로서의 《제1은행권》을 일본에서는 류통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기때문에 이것은 일제가 우리 인민을 우롱한 기만술책이였으며 식민지적화페제도의 정체를 가리워보려는 시도였다.
이렇듯 일제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화페정리사업》과 《화페정리》를 통하여 세워놓은 예속적인 식민지적화페제도는 불환지페를 어떠한 제한도 없이 람발하여 우리 인민들의 피땀을 야수적으로 짜내는 공간이였으며 우리 나라를 채무노예로 굴러떨어지게 한 력사에 류례없는 화페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