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성혁
2019.2.12.
후대들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지니고있는 사랑가운데서도 가장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후대들에 대한 태도와 관점은 매 인간들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시작이라고 할수 있으며 위인의 인간상을 규정짓는 후대관도 결국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표현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온 나라 아이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극진히 보살펴주시여 아이들 모두를 나라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억세게 키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가렬처절했던 조국해방전쟁시기 부모없는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되시여 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재고아들을 잘 교육교양하여 사회주의건설의 훌륭한 역군으로 키우는것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응당한 도리이며 숭고한 의무입니다.》 (《김일성전집》 제18권 504페지)
주체40(1951)년 2월 초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 호위성원들에게 급히 출장준비를 갖출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 전선시찰을 떠나시는것으로 알고 부관을 비롯한 호위성원들은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그이께 보고드리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뜻밖에 원쑤들에게 부모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그들의 부모들을 대신하여 그애들을 잘 돌봐주자고, 이제 가서 아버지가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집아이를 한명 데려올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부모잃은 아이들이 얼마나 가슴에 걸리시였으면 밤잠도 못드시고 전쟁의 운명을 걸머지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직접 아이를 데려다 키우려고 하시겠는가.
가슴들먹이는 격정을 안고 호위성원들은 급히 어느 한 애육원으로 가서 4살난 총각애를 데려왔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던 수령님께서는 장군감이라고, 인사할줄 아느냐고 매우 반가와하시며 애를 바라보시였다.
그런데 그 애는 인사는 하지 않고 쭈밋거리며 눈을 올롱하게 뜨고 마주보기만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참동안 그 모양을 지켜보시다가 부모없이 자라니 이렇게 양기가 없다고, 아이들은 활달하고 명랑해야 하겠는데 우리 아이들이 원쑤놈들때문에 이렇게 되였으니 정말 가슴아픈 일이라고 하시며 부모잃은 아이들도 가슴을 쭉 펴고 마음껏 뛰놀며 자라도록 양기를 돋구어주고 배짱을 키워주어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무릎을 끓고 앉으시여 그애의 작은 손을 꼭 잡아 품에 안으시고 먼길을 차타고 오느라고 손이 시렸겠다고 하시며 입김으로 손을 녹여주시였다.
하지만 데려올 때부터 낯가림이 몹시 심하던 그 애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없다고, 여기는 네집이라고 하시며 총각애와 정넘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살뜰하신 그이의 정에 끌리워선지 마침내 그 애는 이제는 손이 시리지 않는가고 또다시 물으시는 수령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하며 반응을 하였다.
그러는 그 애에게 수령님께서 조용히 몇살인가고 물으시자 이번에는 대답대신 손가락 넷을 펴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펴보이시면서 4살이면 말을 해야지 이게 뭐냐고 하시며 그 애의 볼을 가볍게 다독여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아무것도 줄것이 없다고 하시며 웃주머니에서 연필 한자루를 꺼내여 그 애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연필을 받아든 그 애는 그제서야 그이의 품에 슬며시 안기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야 돌아섰다고 환하게 웃으시며 애를 번쩍 안아들고 일어서시여 방안을 거니시며 이런 아이들을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나라의 기둥감으로 잘 키우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호위성원들에게 아이를 키우는데서 류의해야 할 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아이의 생활일과를 짜가지고 자는 시간, 노는 시간, 밥먹는 시간을 꼭꼭 지키고 운동도 시키며 노래도 배워주도록 하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하루에도 몇차례씩이나 애가 있는 방에 오시며 잠은 잘 자는가, 밥은 잘 먹는가, 옷은 어지럽히지 않았는가를 세심히 보살펴주군 하시였다.
어느날 밤이 지새도록 집무를 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새벽녘에 아이의 방에 오시여 잠든 애의 이마를 짚어보시다가 안색을 흐리시며 저녁에 애가 밥을 다 먹었는가고 물으시였다.
여느때보다 좀 적게 먹었지만 잠은 제시간에 들었다는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애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벌써 몸이 좋지 못한것이라고 하시며 애가 앓을 때 쓸 구급약을 늘 갖추어놓도록 이르신 다음 그길로 교육성과 보건부문의 일군들을 부르시여 모든 애육원, 유자녀학원들의 실태를 료해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이 나날에 그렇게도 낯가림을 하던 그 애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루에 몇번 나오시여도 그때마다 《아버지!》하고 부르며 엎어질듯 달려와 그이의 품에 안기면서 친아버지로 따르게 되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하시다가 휴식시간에 정치위원들과 함께 아이를 찾아가신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들앞에서 노래를 시키시였는데 그 애는 늘 부르군 하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해주니 애는 너무 기뻐 수령님품에 달려가 덥석 안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를 꼭 껴안으시고 여기에 아이가 있으니 웃음이 있고 아이의 랑랑한 노래소리도 들을수 있으니 참 좋다고, 어려운 전쟁을 하면서 고생스럽더라도 우리는 이 애들을 잘 길러야 한다고 하시며 이것은 피흘리며 싸우는 전우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보나 또 장차 조국을 떠메고나갈 후대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사업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지금 유자녀학원과 애육원을 내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적들의 야수적만행으로 매일 고아들이 나오고있다, 전사회적운동으로 고아들을 키우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 간부들이 우선 그 앞장에 서야 하겠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과 그이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에 깊이 감동된 간부들은 앞을 다투어 고아들을 데려왔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각 도녀맹위원장들을 부르시여 우리는 이미 여러곳에 초등학원과 애육원을 세우고 전재고아들을 국가적으로 키우고있지만 아직 모든 전재고아들을 다 데려다 키우지 못하고있다고, 얼마전 형제나라들에서 우리 전재고아들을 양육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보내달라고 하였지만 적들에게 희생된 그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그들을 한명도 다른 나라에 보내고싶지 않다고, 부모잃은 아이들을 다른 나라에 보낼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절절한 당부를 받아안고 온 나라의 녀성들이 떨쳐나 고아들을 맡아 키우는 운동을 벌렸다.
이리하여 그처럼 가렬처절했던 조국해방전쟁시기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 할데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우리 나라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일반적으로 전쟁과정에 인명피해는 어쩔수 없는것이며 그로 하여 수많은 고아들을 산생시킨다. 세계적으로도 지금까지의 전쟁으로 하여 산생된 고아문제를 원만히 해결한 나라가 없으며 그들은 대부분 떠돌이생활을 면하지 못하였다.
세계전쟁사를 둘러봐도 전쟁의 운명을 책임진 최고사령관이 부모없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으며 이것은 오직 조국의 미래를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고 끝까지 보살피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불멸의 화폭이다.
오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해빛같은 그 사랑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온 나라 강산에 빛을 뿌리고있으며 나라의 방방곡곡에 애육원과 육아원, 초등학원과 중등학원이 훌륭하게 일떠서 부모없는 아이들은 고아의 설음을 모르고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며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경애하는 원수님의 참된 아들딸들로 억세게 자라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