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책들에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전통이 반영되여있습니다.》 (
정약용은 조선봉건왕조 말기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실학자(1762-1836)였다. 본향은 라주이고 호는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탁(文度)이다. 벼슬은 승지를 지냈다. 카톨릭교사건에 련루되여 1801년부터 근 20년 가까이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는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및 학술적견해를 담은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하여 우리 나라 중세 과학문화의 발전과 실학의 완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로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아방강역고》, 《대동수경》, 《아언각비》 등과 함께 속담집으로서 《이담속찬》이 있다. 그의 저술들을 한데 묶은 《여유당전서》 153권이 전한다.
우리의 선진적인 문인들과 학자들이 인민들의 일상 언어행위속에서 전해지고있는 구전문학의 주요한 한 형태인 속담들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것은 그 력사가 퍽 오래다고 말할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작품들에는 일정한 수의 재미있는 속담들이 이러저러한 형태로서 수록되여있다.
그러나 비교적 의식적형태로서 속담을 대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수집, 정리,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이후 실학파사상가들의 문필활동이 그 이전에 비하여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다고 말할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의 17세기의 학자인 홍만종은 자기의 저서 《순오지(旬五志)》에서 속담이 오랜 력사적기원을 가지며 광범한 인민적토대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지적하면서 이 책 하권에 134장에 달하는 우리 나라 속담들을 수집정리하고 그 밑에 하나하나 해석을 붙여서 편찬하였다.
18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성호 리익의 《백언해》, 18세기 후반기의 리덕무의 《앙엽기(盎葉記)》와 같은 속담집은 다산의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이 나오기 이전에 이룩된 속담연구 및 수집의 가장 뚜렷한 본보기적인 저작들이다. 물론 이밖에 속담에 관심을 돌린 문인학자들은 다산이전에 《용재총화》의 저자성현, 《패관잡기》를 쓴 어숙권, 실학자인 박지원 등이 있다.
다산의 《이담속찬》은 바로 이와 같은 문인학자들의 경험을 계승하여 그것을 보충하고 공고발전시킨것이였다.
다산은 40살이후 류배지생활기간 선행학자들이 수집정리한 속담들을 주의깊게 연구하는 한편 인민들속에서 근기있게 하나하나 속담들을 수집채취하고 정리하였다.
그의 《이담속찬》서문을 보면 리익의 《백언해》를 자세히 연구하였고 명나라사람인 왕동궤가 수집편찬한 속담집 《이담》 등을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선행속담집들을 보충완성하는 립장에서 자기의 속담집을 편찬하였다. 보충완성하는 정도에 머문것이 아니라 자기의 독특한 체계와 편술법에 의한 개성적성격을 가진 속담집을 만들었다.
《동언》이라는 편목아래 214개 문장의 우리 나라 속담편이 있고 중국의 경서와 사기문헌들에서 발취정리한 177개 문장의 중국속담이 모아진 속담편이 있다.
214개 문장의 속담편은 자신이 직접 인민들속에서 수집하여 정리한것들이다.
다산은 성호의 《백언해》를 토대로 하면서 전체 8자의 한문으로 된 일종의 단구운문형식의 한자속담으로 재치있게 만들어 거기에 일일이 한문으로 된 해석을 붙여서 편술하여놓았다.
다산은 우리 나라 속담과 중국의 속담을 명백히 갈라서 편술하였다.
우리 나라 속담들은 그의 발전력사가 유구할뿐아니라 유산이 풍부하다. 그것은 우리 인민들과 함께 그들의 언어행위와 사고 즉 생활의 뗄수 없는 한 부분으로서 전승발전되여왔으며 근로인민대중의 투쟁과 생활적교훈의 좌우명으로, 그들의 생활경험과 사상감정이 압축되고 정식화된 형상적인 진리적표현의 결정체로서 부단히 보충되고 풍부화되여왔다. 그것은 인민들이 살고 일하는 어디에나 같이 있고 또 쉽사리 들을수 있으며 채집할수 있는것이다.
《이담속찬》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것은 그속에 인민들 특히 농민들의 생활적인 절실한 념원들과 반봉건적인 사상감정들이 심각하게 표현, 반영되여있으며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이며 민족적인 특성이 뚜렷이 표현된것들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 점이다.
그에 대하여 몇가지 주제별로 나누어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민들의 봉건지배계급에 대한 반항적계급의식과 착취자들의 부정적측면들을 폭로저주한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相彼蚯蚓踐之則蠢)
사흘굶어 아니날 생각없다.(人飢三日無計不出)
내 배부르면 종의 배고픈줄 모른다.(我腹旣飽不察奴飢)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始用升授迺以斗受)
진상은 꼬챙이로 꿰고 뢰물은 바리로 싣는다.(貢以串輸賂用駄驅)
나먹자니 싫고 개주자니 아깝다.(我厭其餐予狗則慳)
눈감으면 코떼갈 세상.(瞬目不亟或喪厥鼻)
우의 속담들을 통하여 그속에 들어있는 당시 우리 인민들의 계급의식, 통치계급들의 가혹하고 파렴치한 착취압박과의 오랜 투쟁속에서 얻어진 진실한 생활적체험들을 정식화한 근로인민들의 사상감정, 기분, 통치배들에 대한 증오와 착취자들의 부패상과 비인간성에 대한 타매와 저주를 똑똑히 볼수 있다.
또한 농민들의 간고한 생활과 그러한 처지에서 살아가면서 얻은 그들의 생활적신념과 신조,단결과 협조를 강조하며 또한 그러면서도 생활에 비관을 모르는 그들의 락관주의를 표현, 반영한것이다.
《재는 넘을수록 높고 내는 건늘수록 깊다》(嶺踰越嶔川涉越深)와《대끝에서도 삼년》(竿頭苟延或至三年) 등은 곤난한 생활을 반영하고있다.
《소금에 안쩐것이 장에 쩔가》(鹽所不醃豈畏豉鹹), 《농사군이 굶어죽어도 종자는 베고죽는다》(農夫餓死枕厥種子), 《빌어는 먹어도 다리아래소리는 하기 싫다》(雖則乞丐猶然恥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緩驅緩驅牡牛之步) 등은 생활신념, 굳센 의지를 반영하고있다.
《열의 한술 밥이 한그릇 푼푼하다》(十飯一匙還成一飯),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구》(輕彼薄楮尙欲對擧) 등은 단결력을 강조하고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天之方蹶牛出有穴), 《산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活人之啜蛛不布網),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雖臥馬糞此生可願) 등은 락관주의를 반영한 속담들이다.
전통적인 조선속담이야말로 과거 우리 근로인민들의 생활철학이며 후대들에게 남겨준 귀중한 생활의 교훈들이였다.
특히 이러한것은 격언적속담들에서 강한 성격을 띠고 나타나고있는바 우선 경각성을 높일데 대한것들이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晝言雀聽夜言鼠聽), 《구운게도 다리를 떼고 먹는다구》(旣燔之螯亦去其螯)
또한 사람들은 항상 부지런하고 노력해야 하며 또 노력한것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것이 있다.
《부뜨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在竈之鹽捶之乃鹹)
《개구리도 움쳐야 뛰여간다.》(蛙惟跼矣乃能躍矣)
《단단한 땅에 물이 괴이느니》(行潦之聚亦于硬土)
《한술밥에 배부르랴》(纔食一匙不救腹飢)
《공든 탑이 무너지랴》(積功之塔終古不塌)
또한 인간들에게 겸손성, 허심한 태도, 이신작칙하는 품성을 갖추어야 함을 가르치며 조급성을 경계케 하고 사소한 결함이라도 제때에 고쳐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들을 담은 속담들이 있다.
《어린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랬다》(孩兒之言宜納耳門)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내린다》(灌頂之水必流于趾)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여 쓰지 못한다》(雖有忙心綿不繫鍼)
《말잃고 외양간 고친다》(旣喪其馬乃葺厥廐)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三歲之習至于八十)
《바늘도적 소도적 된다》(竊鍼不休終必竊牛)
이밖에도 계급사회의 조건하에서 형성된 이지러지고 비뚤어진 인정세태들을 반영한 《배썩은것 딸을 주고 밤썩은것은 며느리 준다》(棃腐子女栗朽子婦), 《며느리 자라 시어미되니 시어미 티 더한다》(婦老爲姑靡不效尤) 등이 있는가 하면 《열손가락 깨물어 아니 아픈것 없다》(十指徧咋疇不予慼) 등 우리 인민들의 생활적인 세태와 습속을 표현한 재미있는 속담들이 있다.
《이담속찬》에는 이러한 격언적속담들외에 상당히 많은 리언적속담들이 있는바 그중에는 《수박겉핥기》(西爪外舐不識內美), 《군불에 밥짓기》(過火之焰我食可餁), 《배먹고 이닦기》(啖棃之美兼以濯齒) 등 널리 애용되는 속담들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이 우리 근로인민들속에서 창조발전된 무수한 속담들가운데서도 민족적성격이 강하며 우리 인민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이 가장 진실하고 뚜렷하게 표현된것들이 많다. 다산 정약용이 당시까지의 선행성과에 토대하여 우리 인민들속에서 구전으로 널리 류행되던 속담들을 수집하여 비록 한자로 성문화하고 주해를 달아놓았지만 그 문학사적의의는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