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의 력사는 자력갱생의 력사라고 말할수 있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전력사를 쥐여짜면 자력갱생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자력갱생은 혁명의 길이 아무리 간고하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 혁명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책임지고 끝까지 수행하는 철저한 혁명적립장이다.
자기 힘을 믿지 않고 남을 쳐다보며 남의 힘에 의존하여서는 혁명과 건설을 할수 없으며 전진도상에서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나갈수 없다.
자력갱생 궤도우에서 전후 페허우에 천리마가 날아올랐고 뜨락또르와 같은 현대적기계들이 탄생하게 되였다.
전후 3개년인민경제계획을 통하여 복구건설의 과업을 수행한 우리 인민앞에는 기계공업을 결정적으로 추켜세워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쌓으며 인민경제의 기술개건을 다그쳐나가야 할 과업이 나섰다.
기계공업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사회주의공업화도 자립적민족경제건설도 할수 없었고 인민생활을 높이는 문제도 풀어나갈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나라 기계공업은 아직 현대적기계를 생산보장할 만한 높이에 올라서지 못하고있었다.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은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에 사로잡혀 수입타령만 하면서 당의 기계공업정책을 시비하였다.
당시 사회주의적농업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로력이 가장 많이 드는 운반작업과 밭갈이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하여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뜨락또르를 만들기 위하여 다른 나라에 설계도면을 줄것을 요구하였는데 그 나라에서는 조선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만들어 무엇하겠는가, 자기들이 뜨락또르를 만들어 팔아주겠으니 그것을 사다 쓰라고 하면서 설계도면을 주지 않았다.
이날
그들은 뜨락또르를 분해하여놓고 그것을 보면서 도면을 한장한장 그리였으며 부속품을 깎기 시작하였다.
2 000여종의 부속품이 있어야 하는 뜨락또르를 생산한다는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프레스가 없는 조건에서 마치로 두드려 차륜과 차체를 만들었다. 기관, 변속함의 본체, 유압장치와 같은 복잡하고 정밀한 부분들을 만들 때의 애로와 난관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들은 동요와 실망을 몰랐으며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양의 로동계급은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만들어낸 첫 뜨락또르의 시운전을 하였는데 뜨락또르는 앞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것이였다. 기관도 곧 멎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이에 고무된 공장의 로동계급은 다시 떨쳐일어나 치렬한 돌격전을 벌려 불과 30여일만에 뜨락또르를 만들어내였다.
이처럼 《천리마》호뜨락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