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전영애
2020.7.14.
우리는 오래지 않아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들의 전렬에 계시는 강반석어머님의 서거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날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강반석어머님의 위대한 정신세계와 조국과 혁명을 위해 바치신 희생적인 헌신앞에 인간으로서, 녀성으로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깊이 머리숙이게 된다.
위대한 인간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으며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자식들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있어서 강반석녀사는 어머님이시기 전에 스승이시였고 어머님의 생애는 수령님에게 있어서 그대로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 같은 생애였다.
우리 수령님의 한없이 넓으신 도량과 부드럽고 인정많으신 그 마음, 그러면서도 혁명의 원칙성앞에서는 그 어떤 타협도 모르시는 강의한 의지, 그것은 그대로 강반석어머님의 고결한 품성과 모습에서 닮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그런 곡경에 처할 때마다 나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를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니가 하던 말씀과 흰옷을 입고 나를 바래주던 어머니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김일성전집》 제96권 338페지)
남만원정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에게 하신 강반석어머님의 말씀과 마지막모습은 투쟁과 생활의 고귀한 가르치심이였고 수령님의 한생에 지울수 없는 모습이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 림종을 2달 앞둔 주체21(1932)년 6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들의 뜨거운 성의가 깃든 좁쌀 한말을 지시고 앓고계시는 어머님을 찾아 소사하의 집으로 가시였다.
병환으로 너무도 축가신 어머님의 모습과 집안의 많은 일감은 남만원정을 떠나셔야 하는 우리 수령님의 마음을 무겁게 잡아당기고있었다.
사랑하는 아드님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에서 일어나는 고충을 헤아리신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네가 쌀자루까지 지고다니며 어머니를 부양하게 될줄은 몰랐구나, 너의 효성이 지극하니 고맙기는 하다만 그만한것으로 위안을 받을 내가 아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조선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이 세상에 어머니나 동생들이 없었던셈치고 집걱정은 아예 말라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사업을 잘하면 자신의 병도 다 나을수 있다고, 부대를 데리고 곧 떠나라고, 그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마디마디에 힘을 주시며 말씀하시였다.
가정의 행복도, 어머니의 행복도 혁명에 있으며 혁명을 위해 가정도 생명도 다 바쳐야 한다는 강반석어머님의 그 말씀은 위대한 수령님의 심혼을 폭풍처럼 흔들며 페부에 깊숙이 새겨졌다.
다음날, 려장을 차려입고 나섰지마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집둘레를 돌고 도는 아드님이신 위대한 수령님에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상기도 무엇이 걱정돼서 그렇게 떠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느냐고, 나라를 찾겠다고 결심품구 나선 사람이 그렇게도 마음이 여리고 집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대사를 치를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장차로도 이 에미걱정때문에 집으로 찾아올 생각이라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강반석어머님도 인간이시고 자식을 가진 녀성이신데 왜 자신의 병상태를 가늠하지 못하며 림종의 시각에 자식들과 혈육들이 곁에 있기를 바라지 않으셨으랴.
더구나 남달리 믿음이 크시고 의지가 되시는 맏아드님은 어머님에게 있어서 늘 곁에 두고싶은 자제분이시였다.
그러나 강반석어머님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은 조국과 민족의 아들이였고 한 가정의 리별로 당하는 아픔보다도 조국과 민족이 당하는 아픔이 더 크시였다.
그런 어머님이시였기에 림종을 앞둔 그처럼 쓸쓸한 병상의 고독속에 계시면서도 혁명의 초행길을 떠나시는 아드님에게 매를 드는 심정으로 온몸과 넋이 짜릿짜릿하게 한생의 좌우명으로 되는 심각한 훈계의 말씀을 해줄수 있었던것이였다.
참으로 림종을 앞둔 시각에 아드님을 주저없이 혁명의 길로 떠밀어보내신 어머님의 고결하고 숭고한 세계와 어머님의 높은 뜻을 그대로 심장깊이 새기시고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억세게 걸어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세계는 평범한 어머니와 자식들의 세계로서는 그릴수도, 잴수도 없는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었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떠나보내신 후 다음달인 7월 31일, 애석하게도 40살을 일기로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시였다.
림종의 시각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옆집아주머니를 불러 내가 죽은 후에 우리 아들 성주가 오거든 내가 대하듯 대해주라고, 왜놈들이 살아있고 조선을 독립하지 못한채 오거든 내 무덤을 파가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내자식이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성주는 싸우다가 그저 돌아오지는 않을거라고 하시며 문을 열고 사랑하는 맏아드님이 오실 외나무다리가 있는 쪽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사랑하는 둘째, 셋째아드님에게는 형님을 잘 도와드리라고, 형을 잘 도와드리고 형과 같은 혁명가가 되면 지하에 가서도 편히 잠들수 있다고 마디마디 힘겹게 말씀하시였다.
림종의 시각에도 모든 정신력을 오직 혁명 하나만을 위해 소모하신 강반석어머님, 혁명의 길에 나선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사로운 인정에 빠져서 큰일을 그르칠가봐 늘 걱정하시더니 운명의 마지막순간에도 변함없이 혁명의 한길을 가도록 믿음과 기대가 담긴 유언을 남기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기 전에 조국과 민족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며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전에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강반석어머님의 고결한 정신세계는 이 나라 어머니들이 따라배워야 할 위대한 귀감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그 나날 어머님의 그 말씀과 마지막모습을 가슴에 새기시고 수십성상 항일혁명의 혈로를 헤치시며 일제를 때려부시고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였으며 이 땅우에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주시였다.
참으로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이신 강반석어머님의 한생은 사회주의 이 강산에 영원히 빛나고있으며 이 세상 어머니들의 추억속에 길이길이 남아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