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어울리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2022.5.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어린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민들과 수령님사이에는 한치의 간격도 없었으며 우리 인민은 어버이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충정으로 높이 받들어모시였다.》

혁명의 직접적담당자들인 인민대중을 생사를 함께 할 귀중한 혁명동지, 자신께서 의거하셔야 할 소중한 사람들로 여기시고 그들과 허물없이 지내는데서 삶의 희열과 보람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혁명은 곧 인민들과의 혈연의 정을 더욱 두터이하는 과정,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듣고 그들과 허물없이 의논하여 정책을 작성하며 그들의 리익을 지켜 싸우는 과정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을 간격이 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사람들을 허물없이 대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것은 다른 사람들과 간격을 두는가 두지 않는가 하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사람들과 간격을 두는가 두지 않는가 하는것은 단순히 사람들과 섭쓸리는것을 달가와하지 않고 자기속을 내비치기 힘들어하는것과 같은 성격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들과 간격을 두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남의 허물을 찾고 남을 탓하는데서 재미를 느끼기때문에 절대로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을수도 허물없이 어울릴수도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는것을 자신의 사업으로, 생활로 여기시였다. 당과 국가의 중대사를 한몸에 안으시고 너무도 바쁘시여 인민들을 자주 찾아가지 못하시는것을 아쉽게 생각하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 찾아온 사람들을 나무람하는 일군들을 보실 때마다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을 금치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바쁘신 사업을 곁에서 보좌해드리던 일군들이 그이께 너무도 무랍없이 구는 사람들을 제지시키려다가 그이의 꾸중을 들은 일은 한두번이 아니였다.

언제인가도 그이께서는 자신을 보좌하는 일군에게 한가지 강조할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인민들과 허물없이 만나는것을 막지 말아달라, 공장에 가면 로동자들이 나를 둘러싸며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농촌에 가면 농민들과 마주앉아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것을 막으면 안된다, 인민들은 나를 만나보고싶어하며 나는 인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싶다, 나는 인민들을 만나는것을 기쁘게 여기고 인민들은 나를 만나는것을 행복으로 여기고있다, 물론 동무들이 나의 신변안전을 걱정할수 있는데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다, 우리 인민들은 당을 진심으로 믿고 받들고있으며 나는 인민들을 굳게 믿고 존경하고있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언제 어디서나 한덩어리가 되여 자그마한 간격도 없이 어울리는 수령과 인민, 이것은 위대하신 수령님과 끝없이 소탈하신 인민의 어버이를 모신 조선인민사이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특이한 화폭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는 당과 국가앞에 지니신 직책상의 업무를 보시는 시간과 장소가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았다.

인민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그이의 업무시간이였고 인민들과 허물없이 마주하고 앉으신 곳이 그이께서 당과 국가의 일을 보시는 장소였다. 공장과 농촌, 탄광과 광산, 어촌을 비롯한 생산현장, 살림집, 합숙, 학교를 비롯하여 인민이 있는 모든 곳, 지어는 길가의 나무밑이나 농촌살림집의 토방, 달리는 렬차 같은데서도 그이께서는 언제나 인민과 허물없이 어울리시였다. 농장에 가시면 미처 정돈도 하지 못한 탈곡장의 마당에 멍석을 펴고 농민들과 함께 앉으시거나 풀밭에 그냥 앉으시여 농사일을 의논하시였고 공장에 가시여서는 구내의 나무밑에서 로동자들과 빙 둘러앉으시여 생산문제를 토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언제나 인민들을 격식과 틀이 없이, 허물없이 대해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수수한 농가에서 모범전투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을 때에도 좁게 앉으면 더 다정해진다시며 그들을 바투 앉히시고 담화를 하시였으며 그들과 함께 오락회를 여시고 몸소 노래도 부르시였다.

군직으로 볼 때 제일 아래인 하전사들앞에서 부른 최고사령관의 노래, 그것은 단순히 어떤 감정의 표현이 아니였다. 평범한 전사들과 간격을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군직으로가 아니라 평범한 군인으로 허물없이 대해주고싶으신 진실한 념원이 력력히 어린 위대한 인간의 사랑의 송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바람에 미처 수령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너나들이로 이야기하며 무랍없이 행동한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였다.

항일의 그날 유격구에서 너무도 허물없이 인민들과 한데 어울리시여 사령관이 아니라 유격구의 사무장으로 잘못 알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나 해방직후 어느 국수집에서 여느 사람들과 조금도 간격이 없이 행동하시여 한 농민이 미처 그이를 알아뵙지 못하고 담배까지 달라고 큰소리로 말했다는 이야기 등 가지가지의 일화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에서만 들을수 있는 이야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허물없이 대해주시였으면 아이들은 그이의 품에서 마음껏 응석을 부렸고 어른들까지도 그이의 한없는 인품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신 그이께 세세한 개인생활에 이르기까지 숨김없이 다 말씀올리고 은정을 베풀어주실것을 청탁드리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적과 피부색, 언어가 서로 다른 외국사람들도 의례상절차에 구애됨이 없이 친근하면서도 허물없이 대해주군하시였다.

외교관례에 따르면 정당이나 국가의 대표자들의 언행에는 크나작으나간에 일정한 격식과 틀이 있다. 그러나 국적이 다르고 피줄과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을 대하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다 중시하신것은 외교관례에 따르는 격식이나 틀이 아니라 꾸밈없고 진실한 대화와 허물없는 친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상 외교절차나 관례를 따르는 필요이상의 격식이나 틀을 반대하시며 언제나 외국인들을 친절하게 허물없이 대하시였고 따뜻한 분위기속에서 모든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나가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는 외국방문의 길에서 그 나라사람들의 식생활과 손님맞이풍습대로 주인이 손으로 뜯어주는 양고기를 그대로 받으시였으며 또 언제인가 벌가리아에 가시였을 때에는 동행한 일군들의 만류도 물리치시고 그 고장사람들이 귀빈을 맞이할 때마다 하는 관습대로 단벗이 가득 담긴 큼직한 두개의 광주리를 건 멜대를 어깨에 메시고 단벗나무밭에서 그 나라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적도 있다.

외교관례나 절차보다도 외국인들의 전통과 풍습을 무엇보다 존중하시고 그들과의 허물없는 친교를 더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기에 가시는 곳마다에서 다른 나라사람들과도 인간적으로 친밀히 어울리시여 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하시였던것이다. 외교적인 격식이나 틀을 더 중시하는 태반의 정치인들에게서는 상상조차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처럼 조선인민들뿐 아니라 외국의 벗들앞에서도 인간적인 면을 더 중시하시고 허물없이 대해주신것으로 하여 어버이수령님의 존엄과 권위, 명성은 더욱 높이 떨쳐지고 위인중의 위인으로서의 그이의 숭고한 인간상은 온 세상인민들에게 더더욱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한평생 자그마한 간격이나 허물도 없이 만사람들과 어울리시며 사업하고 생활해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영생하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