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대일본에 미친 조선의 영향 (3)

 2016.7.25.

조선사람에 의해 보급된 금속문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우리 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먼저 발전하였으며 일본의 문화도 우리 나라에서 넘어 간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40권 289페지)

우리 선조들은 일본렬도에 농경문화뿐아니라 금속문화도 보급하였다.

B.C. 4 ~ B.C. 3세기경까지도 일본원주민들은 농사짓는 방법뿐아니라 금속을 모르고있었다. 그들은 돌도구나 만들어썼지 금속제로동도구나 무기같은것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이러한 일본땅에 처음으로 청동이나 철로 만든 도구와 무기같은것을 가지고 건너가 전파하고 광석을 녹여 금속을 얻어내는 제련기술과 금속을 가지고 여러가지 물건을 만드는 가공기술을 가르쳐준것은 우리 선조들인 고대조선사람들이였다.

원시, 고대시기의 로동도구발전과정을 보면 석기 즉 돌을 가공하여 만든 돌도구로부터 청동기(동과 주석의 합금)로 넘어갔고 그것이 다시 철기로 발전하는것이 하나의 법칙으로 되여있다.

그런데 일본렬도에서는 B.C. 4 ~ B.C. 3세기경에 석기만을 쓰던 단계에서 철기와 청동제품이 동시에 나타나게 되였으며 그것도 아주 세련된것들이였다. 때문에 앞선시기의것과 계승관계를 거의 찾아볼수 없다. 이런 현상은 농경문화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첫 금속문화 역시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고B.C. 4 000년기 후반기부터 금속문화를 창조하여 발전시켜온 우리 선조들이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보급한 결과이다.

일본에서 야요이문화인 금속문화가 우리 나라 고대문화의 영향밑에 생겨났다는것은 이 시기 금속문화유적의 분포상태를 놓고도 알수 있다.

야요이시기의 농경문화와 함께 금속문화도 그 시작을 보여주는 최초의 유적들은 신통히도 조선반도와 제일 가까운 북규슈지방을 비롯한 일본서부지방에서만 나타났다.

실례로 철기의 발전정형을 보면 죠몽말기~야요이전기유적들인 후꾸오까현 마가리다유적에서는 단조품인 쇠덩이(쇠도끼로 추측)가, 교또부 오미다네유적에서는 제철과정에 나온 쇠찌끼가 발견되였다. 이것은 죠몽말기~야요이문화초기부터 조선과 제일 가까운 해안지대에 철을 녹이고 단조하는 기술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일본의 금속문화유적들은 동쪽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드물어지고 동쪽지방에서는 시간적으로도 초기의것이 아니라 늦은 시기의것들만 나온다.

이런 사실자체도 벌써 일본의 금속문화가 조선에서 넘어갔다는것을 다시금 확증해준다.

야요이시기 금속문화가 조선의 영향밑에 발생하였다는것은 금속기의 생김새와 재질이 고대조선의것과 같은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야요이전기의 구마모또현 사이또야마유적과 기고시마현 다까하시유적에서 나온 쇠도끼, 쇠자귀 등은 우리 나라 고대의 주머니형쇠도끼, 쇠자귀들과 재질과 생김새가 같다.

또한 이 시기 유적들에서 발굴되는 청동유물들을 보아도 고대조선의것과 꼭같은 좁은놋단검, 청동거울 등이며 특히 청동거울 뒤면의 중심에서 얼마간 치우쳐 고리가 두개 달리고 잔줄무늬가 새겨져 있는것이 신통히도 같다.

일본사람들은 이렇게 조선에서 넘어온 금속기 등을 《박례품》(조선에서 배에 실려 전해온 물건)이라고 하였다.

야요이시기의 금속문화가 고대조선의 영향밑에 생겨났다는것은 일본의 량심적인 학자들도 다 인정하고있다.

실례로 일본 북규슈지방의 박물관(후꾸오까시)에서 일하고있는 고꾸라 요아끼는 고대일본의 금속기가 논농사와 함께 조선에서 전해졌다고 강조한바 있다.

야요이중기이후에 일본의 원주민들은 일본렬도에로 적극적으로 진출한 고대조선사람들을 통해 청동기와 철기제작기술을 배워 점차 자체로 금속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흔히 자기 식의 독특한것을 만들지 못하고 조선의것들을 본따서 만들기 좋아했는데 이런 제품들은 조선의것을 본따서 즉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여 《방제품》이라고 말하고있다. 대체로 이때부터 일본사람들속에서 남의것을 본따서 모방하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생겨났다고도 할수 있다.

참으로 고대 우리 선조들의 영향밑에 일본사람들은 처음으로 농경문화와 금속문화를 배웠고 그때문에 원시상태에서 벗어나 국가시대, 문명시대에 들어서게 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