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2016.10.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애국심이 높은 학자입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근 30년동안이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전국각지를 답사하고 측정하였습니다. 그는 백두산에만도 두번씩이나 올라갔댔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99페지)

실학자 김정호

김정호(19세기초~1864년)는 매우 가난하였으나 일생을 조국의 지리연구와 지도제작에 바친 애국심이 높은 실학자였다.

당시 실학자들은 애국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나라 지리연구에 적지 않은 힘을 넣었으며 이전시기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에 앞서 《청구도》라는 조선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10년간에 걸친 실지답사와 조사연구에 기초하여 그리고 선행시기 지도제작에서 이룩된 성과들을 참작하면서 1834년(순조 34년)에 《청구도》를 완성하였다. 《청구도》는 16만분의 1의 축척으로 된 지도였으며 여러가지 자연지형과 행정구역 등을 체계적으로 표시한 지도였다.

그리고 《청구도》는 그 앞부분에 고대조선-고려시기의 지도들과 조선봉건왕조의 8도총도가 따로 붙어있어 현대적인 지도첩과 비슷한 체계를 갖추고있었다.

《청구도》는 당시로서 제일 우수한 지도였으나 일부 부정확한 개소들이 있었다. 그 부족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김정호는 국내외의 수많은 지리책과 지도들에 대한 연구를 더욱 널리 진행하는 한편 27년간에 걸쳐 현지조사와 실측을 진행한데 기초하여 마침내 1861년(철종 12년)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냈다.

《대동여지도》는 33m2에 달하는 매우 큰 조선전도이다.

김정호는 이 큰 지도를 모두 22개의 단으로 나눈 다음 그것을 각각 병풍식으로 접어 책처럼 만들었다. 매 첩본의 한면은 30㎝×20㎝인데 그것은 실제상으로는 120리×80리에 해당한다.

《대동여지도》는 1:16만 2 000의 축척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지도에 삽입된 부분도들인 《5부》와 《경조》(수도)는 각각 1:1만 3 000, 1:5만 6 000의 축척을 써서 더 자세히 묘사하였다.

《대동여지도》는 비교적 정밀한 실측과 일정한 축척에 의하여 만들어졌기때문에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정확성을 보장하고있었다. 그것은 현대의 조선지도를 《대동여지도》의 축척과 꼭같은 크기의 지도로 만들어놓고 두 지도를 대비할 때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뚜렷이 확증해준다.

《대동여지도》에는 산봉우리와 산줄기, 강과 호수, 행정경계선과 행정중심지, 그것들을 련결하는 도로망, 산성과 읍성, 진보, 봉수, 창고, 나루를 비롯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자연의 모든 측면들이 일정한 기호로 표시되여있다. 지도의 제1첩에는 지도에서 사용한 여러가지 기호들을 해설한 《지도표》가 있다.

지도에서는 지명과 기타 대상물들의 이름을 글자로 밝혀놓았다. 《대동여지도》에 기호, 글자로 표시된 사항은 무려 1만 1 600여개나 된다.

대동여지도의 평양부분도

지도에 표시된 지점들은 그 위치가 정확할뿐아니라 도로를 표시하는 줄우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놓아 거리를 정확히 알수 있게 해놓았다.

《대동여지도》는 아직 측정수단들이 발전되지 못한 당시의 조건에서 한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도인것만큼 부정확하게 그려진 곳들도 있다. 그러나 이 지도는 조선봉건왕조말기에 이룩된 지도학분야에서의 가장 큰 성과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