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수 박사 김병철
2021.11.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그이께서 지니신 위대한 사상과 특출한 령도력, 숭고한 인간적풍모로 하여, 그이께서 쌓아올리신 불멸의 위대한 업적으로 하여 그 누구도 지녀본적이 없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시고 세계 수억만사람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고계십니다.》 (《김정일전집》 제32권 12페지)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한생을 돌이켜볼 때 세계혁명적인민들은 물론 입부리사나운것으로 소문난 적국의 언론인들까지 한없이 고매한 수령님의 인품에 반하여 칭송한 실례가 수없이 많다.
일본 《요미우리신붕》의 론설위원, 편집부국장, 고문이며 유명한 평론가였던 다까기 다께오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다까기 다께오가 우리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한것은 1971년말이였다. 이미 3년전부터 《아시아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이름있다는 정치지도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것으로써는 자기의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
그러한 때에 그는 조선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에 접하게 되였다. 다까기 다께오는 조선을 모르고서는 아시아를 론할수 없다, 아시아와 세계를 움직이시는 분이 조선에 계신다고 생각하게 되였으며 그것을 자기의 눈과 피부로 확인하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평양행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이해 12월 31일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마다 이날에 평양학생소년궁전에 가시여 어린이들의 설맞이모임에 참가하신다는것을 알고 거기로 달려가 기다리고있었다.
19시 30분, 위대한 수령님께서 궁전에 도착하시였다. 순간 《만세!》의 환호소리가 온 궁전에 메아리쳤다.
앞줄에 있던 수십명의 어린이들이 《아버지, 아버지》하고 수령님께로 달려가 그이의 팔에 매달렸다. 뒤쪽에 있던 아이들도 저저마다 다가가 수령님의 품에 안겨 눈물이 글썽하여 《만세!》를 불렀다.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우시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시고 철부지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정히 들어주기도 하시는가 하면 어린이들의 볼을 정답게 다독여주기도 하시며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어주고계시였다.
아이들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을 우러르는 순간 다까기 다께오의 가슴은 세찬 격정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아, 저분이 바로 세인이 그처럼 경모하여마지 않는 절세의 위인이시구나. 일제의 《토벌》에 부모잃은 아이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항일성전을 벌리신 백두산장군, 어머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든 귀중한 돈으로 헐벗은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히신 어버이,
1930년대에 《요미우리신붕》의 장춘특파원으로 관동군을 종군하였던 다까기 다께오의 뇌리에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일화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 해마다 아이들과 함께 설을 쇠는 지도자가 있었던가! 뜨거운 인간애를 지닌 분만이 아이들을 저렇게 사랑하실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으로 부풀어오른 다까기 다께오의 마음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격의 시구절이 흘러나왔다.
어린이들의 흐름은
바다의 물결같고
이 바다물결우에
즐겁게 떠있는 배와도 같으신분
얼마나 아름다우랴
일체 허물이 없고
그저 친근하기만 하는
그 사랑의 모습은
푸르디푸른 하늘을 받들어선
하얗게 눈치장한 나무들을 비치며
새해의 태양이 솟아오르는 평양
설맞이공연이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까기 다께오를 부르시여 공연을 지도한 교원들에게 자신의 벗이라고 소개하시였다. 손님에 불과한 자기를 벗이라고 불러주시는 수령님의 뜨거운 말씀에 격정에 북받친 다까기 다께오는 위대한 수령님께 《다음번에 공화국을 방문하면 수상님께서 1930년대에 활약하신 혁명전적지들을 찾아가 전기를 쓰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흔드시며 그럴 필요는 없다, 쓰겠으면 인민에 대하여 써달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이분이시야말로 참된 인민의 령수이시다.)라는 찬탄의 목소리가 저절로 울려나왔다.
인민의 어버이에 대한 다까기 다께오의 감동은 지방참관과정에 더욱 절정에 올랐다.
다까기 다께오일행이 동해안을 찾아갔을 때였다.
바다가옆으로 살림집건물들이 해빛을 받으며 한폭의 그림처럼 줄을 지어 서있었다. 그는 무슨 집들이 이렇게 경치아름다운 곳에 줄지어 늘어섰는지 궁금하여 《저건 무슨 호텔입니까?》하고 물어보았다. 동행한 일군의 말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먼바다에 나간 어로공남편들을 걱정하는 안해와 자녀들을 위해 바다가의 풍치좋은 곳에 아빠트를 세우도록 하시였다는것이였다. 그는 몹시 흥분되였다. 일본같은 사회에서 어부들의 집이란 너무나도 초라하였기때문이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어디를 가나 수령님께서 기름묻은 이 손을 잡아주셨다고 말하는 로동자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토로하는 농민들 그리고 아이들도 셀수 없을 정도로 만났다. 이 나라 어디에 가도 수령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수령님에 대한 인민의 믿음과 존경이 불길처럼 타번지지 않는데가 없었다.
다까기 다께오는 자기가 일생을 바쳐 찾고찾던 《아시아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가를 드디여 조선에서 보게 되였다. 하기에 그는 자기의 글에서 《오늘의 아시아에는 새로운 파도가 일고있다. 오늘의 기본조류는 주체이며 현시대는 주체의 길로 나아가고있다. 여기에 아시아의 빛이 있다.》고 격조높이 토로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에 완전히 매혹된 다까기 다께오는 그후 1981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백두산에 오르다》,《김일성장군 조국에로의 길》,《령도의 예술가 김일성》등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인민적풍모를 전하는 저서들과 조선방문기들을 집필하였으며 조일문화교류협회를 창설하고 그 리사장으로 사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