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난방형식-온돌난방

 2019.4.2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살림집의 온돌난방형식은 앉아서 생활하는 우리 인민의 풍습에 의하여 발생발전하였으며 뻬치까난방형식은 서서 생활하는 서양사람들의 풍습에 의하여 발생발전하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4권 382페지)

살림집난방은 매개 나라의 기후풍토와 민족적생활풍습에 맞게 갖추어지며 서로 다른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온돌은 복사난방의 하나로서 조선인민의 생활풍습에 맞는 고유한 난방시설이다.

조선식온돌난방시설

조선식온돌난방시설은 조선의 자연기후조건과 앉아서 생활하는 조선민족의 방안생활풍습에 맞게 하나의 아궁을 통하여 넓은 면적의 방안을 덥히는 동시에 음식가공도 할수 있는 바닥난방시설로서 고대에 창안리용된 구들시설을 계승발전시킨것이다.

조선에서 온돌은 고조선시기에 발생하여 삼국시기에 와서 전국에 널리 퍼져 민족적인 난방수단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그리고 이전에는 국부온돌이던것이 고려시기에 와서는 전면온돌로 되였으며 신을 벗고 온돌방에 앉아서 생활하는것이 조선인민의 고유한 생활풍속으로 되였다.

조선식온돌난방은 부뚜막아궁과 고래가 낮은 구들 그리고 굴뚝시설이 잘 결합된 하나의 발전된 난방시설이다.

부뚜막아궁은 구들에 불을 때기 위한 시설로서 고대의 아궁시설을 계승발전시킨 바닥난방시설의 한 부분이였다.

조선에서 고대에 발견된 초기 구들시설들에는 화독을 대신한 아궁이 구들에 직접 불을 때기 편리하게 가까이 설치되여있었다.

화독을 대신한 이 아궁은 점차 음식가공과 방안의 온도를 보장하기 위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부엌과 같은 하나의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부엌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형성되고 여기에서 난방과 음식가공을 동시에 진행할수 있는 조건이 지어짐에 따라 아궁시설이 달린 부뚜막이 갖추어지게 되였다.

부뚜막아궁은 이미 고구려의 벽화무덤에서 그 면모를 잘 나타내고있다.

고국원왕릉벽화와 약수리무덤벽화의 난방시설

고국원왕릉과 약수리벽화무덤에 그려진 부뚜막아궁은 밑면이 없는 《П》자형의 형태를 띠고있으며 그우에 시루를 올려놓고있다.

이것은 삼국시기 아궁이 부뚜막에 설치된 부뚜막아궁시설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있었으며 그 형태는 밑면이 없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삼국시기 부뚜막아궁은 구들과 직접 련결되여 구들을 덥힐뿐아니라 음식가공만을 위한 시설로도 리용되였다.

그것은 4계절의 기후적특성을 가지고있는 조선에서 여름에는 구들의 리용보다 음식가공만을 위한 부뚜막아궁이 더 필요하였기때문이라고 본다.

옛 문헌기록에는 조선남부지역 사람들이 가마를 걸수 있는 시설을 집의 서쪽에 설치한다고 전하고있다.

이것은 날씨가 비교적 온화한 조선의 남부지방에서는 음식가공만을 위한 부뚜막아궁이 따로 설치되고 리용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또한 《당서》에서는 신라에서 겨울이면 집안에 부뚜막을 만들며 여름이면 음식에 얼음을 놓아 먹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난방과 음식가공을 동시에 보장할수 있는 부뚜막아궁이 일찍부터 조선남부지방 살림집들에도 있었으며 계절적특성에 맞게 난방과 음식가공을 겸하거나 음식가공만을 위한 부뚜막아궁시설로도 리용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그 이후 조선식난방에서 부뚜막아궁시설들은 모두 고래보다 낮으면서도 고래구들과 직각으로 꺾인 방향에 배치하였으며 아궁목에 부넘이를 설치하고 아궁목으로부터 꺾임을 형성함으로써 역풍을 막고 불이 잘 들게 하였다.

이렇게 부뚜막아궁은 부엌에 실용성있게 설치되였으며 조선의 자연기후적특성을 고려하여 구들시설과 련결되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음식가공만을 위한 시설로도 사용할수 있게 만들어지고 리용된 시설의 하나였다.

고래가 낮은 구들은 앉아서 생활하는 조선인민의 살림방생활풍습에 맞게 고래(방의 구들장밑으로 연기와 불길이 통하는 길)를 낮게 설치한 시설이다.

옛 문헌인 《구당서》에 의하면 《그 풍속에 가난하고 루추한자들이 많은데 겨울에는 모두 긴구들고래(장항-長坑)를 만들고 그 밑에 불을 지펴 더위를 얻어낸다.》고 기록되여있다.

이와 같은 긴고래구들은 고대의 외고래구들을 직접적으로 계승발전시킨것이다.

고대에 발생한 초기 구들시설은 외고래구들시설로서 지상살림집조건에 맞게 화독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고 음식가공과 방안의 위생조건보장, 열의 보존을 합리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하는데서 화독보다 발전된 시설이였다. 당시 사람들은 오랜 기간의 화독사용과정에 열을 보조낳는 돌의 성질을 리용하여 구들을 놓는 방법을 생각해내게 되였으며 나아가서는 하나의 아궁을 통하여 넓은 면적의 방안을 덥힐수 있는 고래구들을 창안해내게 되였다.

이렇게 창안된 구들은 처음부터 조선인민의 생활풍습에 맞게 낮고 긴 고래구들형식으로 출현하였으며 삼국시기에는 점차 두고래의 꺾임식긴고래로 발전하였다.

특히 고구려후기의 동대자집자리에서 발견된 두고래의 온돌은 2m너비의 구들이 ㄱ자로 꺾이여 10여m나 길게 형성된것으로서 방바닥의 많은 면적을 덥힐수 있게 발전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대평리유적2호집자리온돌

고구려무덤벽화에 그려진 부뚜막아궁과 구들 역시 당시의 온돌에 대한 생동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있다.

고국원왕릉벽화에는 아궁이의 반대쪽에 길게 뻗은 굴뚝을 그려놓았으며 약수리벽화무덤벽화에는 아궁에 불을 지피고 그 열이 긴 구들고래를 통하여 굴뚝으로 빠지게 되여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것은 고구려의 구들이 보통 꺾음식 긴 구들로서 고래가 벽을 따라 한두번 꺾이면서 방안을 돌아 집밖에 있는 굴뚝으로 련결되여있었던 면모를 잘 나타내고있다. 여기에서 구들골이 길면서도 꺾음식으로 된것은 열의 효률을 높이고 바람의 영향을 막기 위한것이라고 보아진다.

이렇게 놓인 구들에서 방안생활은 주로 온돌고래가 놓인 따뜻한 곳에서 진행되였으며 온돌고래가 놓이지 않은 곳에서는 앉기 편리한 낮은 평상이나 깔개를 깔았다. 고국원왕릉이나 쌍기둥무덤을 비롯한 고구려무덤벽화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방안에 앉아서 생활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래가 낮은 구들은 그 이후 전면구들난방으로 발전되면서 방안에는 방바닥전면에 자리류를 깔고 앉아서 생활하는 문화적인 갖춤을 하게 되였다.

굴뚝은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생기는 연기와 먼지가 빠질수 있게 집밖에 만들어 세운것으로서 부뚜막아궁, 구들과 함께 갖추어지고 리용된 시설이였다.

굴뚝시설은 이미 삼국시기에 그 면모를 잘 나타내고있었다.

고구려의 부뚝막시설

고구려의 약수리벽화무덤에는 아궁이의 반대쪽에 길게 뻗은 굴뚝을 그려놓았고 고국원왕릉벽화에는 《Z》자 모양으로 길게 밖으로 뻗은 굴뚝을 그려놓고있다. 또한 집안의 동대자3호집자리의 굴뚝시설은 밖으로 6m길이의 굴뚝고래를 내고 거기에 잇달려 직경 1m되는 개자리를 파고 설치하였다.

굴뚝밑에 설치된 개자리는 돌과 진흙을 섞어서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둥그렇게 쌓아 형성한것이였다. 이러한 굴뚝시설은 고구려의 정릉사 10호, 1호, 2호건물터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는데 굴뚝자리들에는 직경 1m정도의 개자리를 파고 그 둘레에 기와쪼각에 흙을 묻혀서 쌓은 굴뚝의 밑부분시설이 나타나있었다.

이것은 일찍부터 굴뚝시설이 아궁에서 생긴 연기를 잘 빨아내기 위해 개자리를 파고 찬바람으로부터 굴뚝을 보호하기 위해 그 우를 돌과 기와쪼각으로 두껍고 둥그렇게 쌓아진것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굴뚝시설에 련결된 굴뚝고래는 방안의 고래돌을 덥힌 열이 굴뚝으로 잘 빠지며 방안의 구들골에로 통과한 열이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두꺼운 구들장을 덥어 형성하였다.

이런 요소들이 갖추어진 바닥난방시설에는 찬바람이 꺼꾸로 불어도 바람이 굴뚝 개자리에서 되돌아나가며 찬바람이 구들골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에도 아궁목의 부넘이에서 다시 처리됨으로 찬바람은 더운 열과 함께 굴뚝으로 빠져 불길이 잘 들게 한다.

이렇게 구들고래를 꺾임식으로 하고 부넘이와 개자리를 설치한것은 세찬 바람과 한랭을 막기 위한것으로써 조선인민의 창조적재능의 일단을 잘 보여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이 굴뚝시설은 살림집의 부뚜막아궁, 구들고래와 련결된 하나의 바닥난방시설로서 불을 잘 들이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으로 되여왔다.

이처럼 조선민족이 리용한 바닥난방시설은 일찍부터 불을 지피는 부뚜막아궁과 구들이 련결되고 굴뚝까지 완비된 발전된 살림집난방시설이였다.

조선식바닥난방시설은 조선민족의 생활풍습과 나라의 자연기후조건, 조선민족의 감정과 정서에 맞는 우수한 시설이다.

그 우수성은 첫째로, 바닥난방은 한번 덥히기만 하면 오랜시간 온기가 식지 않고 보존됨으로써 방안의 온도를 보장하여주는것이다.

골구들, 석구들, 부뚜막아궁

조선의 구들은 돌이 오래동안 열을 보존하는 원리로부터 만들어낸것으로서 부분적인 몇개의 돌이 아니라 구들을 이루고있는 많은 돌들을 충분히 가열하여 방안의 온도를 오래동안 보장할수 있게 한다. 또한 고래를 길게 함으로써 온기가 구들밑에서 지체하는 시간을 길게 하며 외부로부터의 찬 영향을 적게 받음으로 해서 열을 오래동안 보존할수 있게 한다.

이와 반면에 유럽의 난방시설인 뻬치까(벽난로)는 공기난방형식으로서 뻬치까의 불이 꺼지면 방안의 온도를 오래 보장하기 못하게 된다. 중세 중국의 난방형식인 캉도 살림방의 어느 한 벽에 의지하여 잠자리만 덥히게 되여있는 부분구들시설로서 그 면적이 좁고 협소하며 방안전체의 온도를 충분히 보장할수 없다. 또한 일본의 살림집난방인 이로리(화로) 역시 그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직접 불을 쪼이면서 온기를 전달받게 되여있는 시설로서 구들처럼 방안전체의 열보장이 충분하지 못하다.

둘째로, 바닥난방시설은 같은 량의 연료를 가지고도 다른 나라의 난방시설보다 방안의 온도를 더 잘 보장할수 있다.

바닥난방시설에서 구들고래를 덥히는 열은 음식가공시 리용되는 열을 통하여 덥히게 되여있으며 열이 구들골밑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길므로 적은 연료를 가지고도 방바닥을 쉽게 덥힐수 있다.

그러나 캉은 같은 구들이지만 그들의 걸터앉는 생활풍습에 맞게 고래가 높고 아궁과 구들, 굴뚝이 곧추 련결되여있는 부분난방시설이므로 아궁이 크며 구들밑의 열을 빨리 빨아내는것으로 하여 많은 땔감이 요구된다. 유럽의 벽난로역시 공기난방형식인것으로 하여 많은 땔감을 필요로 하며 이로리(화로)는 열을 항시적으로 보존하고있어야 하는것으로서 땔감이 많이 든다.

이것은 조선식바닥난방시설이 같은 량의 연료를 가지고도 다른 민족의 난방시설에 비하여 방안의 온도를 더 잘 보장할수 있게 하는 시설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셋째로, 바닥난방시설은 방안의 문화성을 높이는데서도 우수하다.

바닥난방시설은 부뚜막아궁과 구들, 굴뚝이 부엌과 살림방, 살림집밖에 분리되여 존재하는 일체화된 시설이므로 불을 피울 때 생기는 먼지와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구들밑을 통하여 집밖의 굴뚝으로 빠져나가므로 방안의 위생문화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방바닥에 삿자리나 돗자리를 깔고 생활하였기때문에 보기에도 좋고 깨끗하며 조선민족의 풍습대로 방안에서 신을 벗고 생활하므로 위생적으로도 좋다.

다른 나라의 난방시설은 부분난방시설로서 연료를 태우거나 온기보장, 연기배출 등이 다 한곳에서 진행되며 캉이나 벽난로가 놓인 살림방에서는 신을 신고 다니게 되여있다. 이것은 바닥난방형식이 살림방의 문화성을 높이고 문화위생적인 생활조건을 보장하는데서 우수하다는것을 말해준다.

넷째로, 바닥난방시설은 방바닥의 습기와 랭기를 막고 통풍이 잘 되게 하며 방안의 리용률을 높이는데서도 우수하다.

바닥난방시설은 구들밑에 낮은 고래로 공간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열이 빠져나감으로써 방안의 습기와 랭기를 막고 통풍이 잘 되게 하고있다.

또한 난방시설이 방바닥밑에 설치되여있기때문에 방안의 가구들을 생활에 편리한 임의의 장소에 옮겨놓을수 있게 되여있으며 방안의 리용률을 최대한 높일수 있게 되여있다.

다섯째로, 사람들의 건강에 알맞는 온도를 보장해주고있다.

온돌난방시설은 방바닥과 방안천정사이의 온도차이가 1℃ 로서 피부의 열감수에서 급격한 변화가 없이 고르로운 온도조건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뻬치까난방형식은 난방시설과 천정사이의 온도차이가 10℃ 이며 열풍난방은 온도차이가 6℃ 에 이른다.

이것은 온돌난방시설이 다른 나라의 난방시설에 비하여 방안생활에 합리적인 온도를 보장해주면서도 열감수를 통한 건강에도 좋은 조건을 보장해주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조선식바닥난방시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특하고 우수한 난방형식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에서는 해방후 온돌방에서 살기 좋아하는 조선인민의 고유한 풍습이 현대적생활양식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계승발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처음으로 일떠서는 한 여러층살림집건설장에 오시여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온돌방에서 살아왔고 온돌방에서 자야 피곤이 풀린다고 하시면서 조선인민의 풍습대로 앞으로 여러층살림집들에도 온돌을 놓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와 지역들에 중앙난방화를 실현하며 그에 맞게 온돌도 현대식으로 발전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온돌은 로동당시대에 와서 조선민족의 앉아 생활하는 풍습을 반영한 바닥난방시설을 계승발전시켜 바닥온수난방, 바닥전기난방시설로 더욱더 발전하였으며 오늘도 여전히 조선인민의 고유한 살림집난방수단의 하나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