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수령님의 귀한 손님

 2020.12.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장군님께서는 늘 부모없는 아이들때문에 걱정하시였으며 부모없는 아이들의 생활문제를 풀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늘 부모없는 아이들때문에 걱정하시였으며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들의 생활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온 나라 아이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혁명일화들중에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에서 가장 큰 기쁨을 찾으시며 명절날에 부모없는 아이들을 자신의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신 이야기도 있다.

주체49(1960)년 5월 1일이였다.

이날 평양에서는 전세계 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을 경축하는 연회가 진행되였다. 연회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당과 국가의 지도일군들이 참가하였다.

그런데 연회가 시작되여 얼마후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웬일인지 자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어서시더니 일군들에게 꼭 가서 만나주어야 할 귀한 손님이 있어서 동무들과 함께 오래 앉아있지 못하겠으니 량해를 해달라고 하시며 조용히 자리를 뜨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마주보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가연회도중에 꼭 만나주셔야 할 손님이 과연 누구일가?

중앙의 일군들은 거의 다 참가한것이고 지방일군이라면 연회가 끝난 후에 만나주셔도 되지 않을가, 우리 나라에 온 외국의 대표단들은 모두 연회에 참가한것이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댁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혹시 비공식대표단이라도 온게 아닌가 하고 부관도 줄곧 생각에 골몰하였다.

부관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긴급하게 만나셔야 할 손님이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어느덧 승용차가 위대한 수령님의 댁 정문에 들어섰을 때였다.

댁에서 《아버지원수님!》하고 부르며 뛰여나오는 처녀애들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아버지를 맞이하듯 옷자락에 매여달리는 애들을 품에 안으시며 너희들이 기다릴것 같아서 이렇게 왔다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

아이들과 함께 기쁨속에 댁으로 들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부관은 크게 감동되였다.

(부모없는 저 애들이 바로 우리 수령님의 귀한 손님이였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모없는 애들이 저희들끼리 명절을 쇠면 쓸쓸해할것 같아 함께 명절을 보내시려 댁으로 부르시였던것이다.

이틀전인 주체49(1960)년 4월 29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5.1절을 앞두고 온 나라 학생들에게 새 교복을 해입히시고 그들의 모습을 보시기 위하여 4명의 학생들을 부르시였다. 그리고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새옷이 마음에 드는가 물어주시며 그들의 옷차림을 차근차근 살펴보시면서 매 학생의 학습과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최영옥학생이 아버지가 조국해방전쟁때 적들의 폭격에 희생되고 어머니마저 돌아가 딸 4형제는 고아로 되였으며 현재 3형제가 함께 있고 한명은 원산에서 살고있다고 말씀올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면서 집주소를 손수 수첩에 적으시고 그날밤 그들 3형제를 댁으로 부르시여 저녁식사를 함께 하시면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헤아려주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갈 때 래일은 학교에 가고 모레 5.1절날은 자신의 집에서 같이 명절을 쇠자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서 아버지, 어머니생각을 하며 자기들끼리 명절을 쇠기 섭섭해할가봐 이처럼 이틀이 지난 명절날 또다시 그들 3형제를 댁으로 부르시여 친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5.1절이 지난 후 곧 그들을 평양초등학원으로 보내주시였으며 원산에 가있던 동생 영희까지 데려다주시여 네 형제가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도록 해주시였다. 하기에 친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보살핌속에 사는 최영옥의 형제들은 온 세상에 대고 이렇게 소리높이 웨쳤다.

《우리 4형제는 고아가 아닙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데 우리가 왜 고아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