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실력가형의 충신 정준택동지

 2024.6.17.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지식인의 가정에서 태여나 광산기술자로 일하다가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비로소 참다운 삶의 길에 들어서게 된 정준택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을 따라 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충신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준택동지는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일군이였으며 깨끗한 량심을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오래동안 사업해온 훌륭한 혁명가였습니다.》

정준택

정준택동지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주체34(1945)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한 광산에서 선광기사로 일하던 정준택동지의 애국심과 뜨거운 건국열의를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해방직후에 국가기관의 중요부문 일군으로, 국가계획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일부 불건전한자들이 어떻게 하나 그를 배척하고 당의 품에서 떼여내려고 음으로 양으로 책동할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은 정준택동무를 믿으니 마음놓고 일하라고, 당이 있는 한 누구도 동무를 못다친다고 하시며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정준택동지는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시고 국가의 중대한 사업을 맡겨주시였을뿐 아니라 혁명가적일본새와 사업기풍을 배워주시며 걸음걸음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모든 지혜와 정력을 조국과 혁명에 다 바쳐나갔다.

정준택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바라시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앞채를 메고 끝까지 실행하였다.

특히 오래동안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사업하면서 늘 공장, 기업소들에 내려가 실태를 알아보고 걸린 문제를 제때에 풀어주군 하였으며 아래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고 좋은 의견도 많이 제기하여 국가의 경제사업이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대로 진행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준택동지가 어떤 충신이였는가 하는것은 하나의 사실자료를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주체39(1950)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던 그를 부르시여 전후 인민경제복구발전계획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는 전국각지에 피해조사성원들을 파견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주요단위들에 내려가 계획작성에 필요한 실태자료들을 조사장악하였다. 그 나날 불의에 달려든 적기들의 맹폭격속에서 화상을 당하면서까지 귀중한 문건들을 건져내오다가 머리에 심한 타박을 받고 병원으로 후송된적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닷새도 못되여 머리와 손에 붕대를 두텁게 감고 지팽이를 짚으며 사무실로 나온 그는 상처의 아픔을 참아가며 밤늦도록 일손을 놓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철저히 수행하기 전에는 물러서거나 절대로 쓰러질수 없다는것이 바로 정준택동지의 드팀없는 신조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나라살림살이를 책임졌다는 자각을 안고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보내주신 승용차를 타고 잠간이면 집에 갔다올수 있었지만 시간과 휘발유가 아까와 밥곽을 들고다니였고 흔할수록 아껴써야 하는것이 석탄이라고 하면서 국가계획위원회의 보이라에는 제일 늦게 불을 지피게 하고 추위가 가면 제일먼저 불을 끄게 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를 풀기 위한 곳에는 항상 자기가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생을 빛나게 살아온 충신이였기에 정준택동지는 비록 오래전에 우리곁을 떠났지만 오늘도 인민들의 기억속에 길이 남아있는것이다.

참으로 정준택동지의 한생은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직한 한생이였으며 오직 당과 수령,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성실하게 바쳐온 혁명가의 참다운 모범을 보여준 한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