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강춘식
2021.10.2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을 지니시고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로고를 다 바쳐오신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의 한평생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생애에는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풍족하게 먹이시는것을 평생소원으로 간주하시고 알곡생산을 늘이는것과 함께 나라의 가금업발전에 기울이신 뜨거운 사랑의 자욱도 깃들어있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닭알을 풍족하게 먹일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시는 기회에 자신께서는 어렸을 때 생일이 되여야 닭알에 백하젓을 두고 지져서 한알씩 먹어보았다, 어떤 때는 닭알이 너무 먹고싶어서 할머니한테 졸라서 1년에 한두알 먹어보았다고 교시하시였다.
오랜 세월을 두고 바라던 우리 인민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에게 닭알을 넉넉히 먹이지 못하는것이 한이라고 하시면서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닭공장과 오리공장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 초엽에 이르러 우리 나라에는 큰 규모의 현대적인 닭공장과 오리공장이 많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만족을 모르시고 1970년대에 온 나라 농촌들에서 닭기르기운동을 힘있게 벌리도록 이끄시며 나라의 가금업발전에 실로 크나큰 로고를 바쳐오시였다.
당시 평양시교외에 위치한 삼석마을에서는 원래 닭을 많이 기르지 않았다. 그것은 이 마을농민들이 닭을 기르느라고 품을 들인데 비하여 먹을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오시여 농촌에서 닭을 많이 기를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닭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초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농촌의 매 가정들과 작업반들에서 얼마만한 닭을 기를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이 마을에서 시범을 창조하여 전국에 일반화하실것을 결심하시였다.
그리하여 닭공장들에서 이 농장에 만경닭종자를 보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고 탈곡장과 가정들에 있던 재래종닭을 모두 없애고 빨리 크고 알을 잘 낳는 만경닭을 기르게 하시였다. 그리고 해마다 여러차례 찾아오시여 닭을 한 농가에서 5마리이상, 작업반탈곡장에서는 100마리이상은 얼마든지 기를수 있다는것을 확인하시였다.
주체66(1977)년 1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닭기르기를 잘하는 농촌의 어느 한 단위에서 방식상학을 조직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해당 부문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닭기르기의 모범을 창조해주신 평양시 삼석구역 장수원협동농장 제3작업반에 방식상학준비를 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작업반의 경험은 이미 일군들에게 여러번 보여주었기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작업반에서 방식상학을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장수원협동농장 전복작업반에 나가시였다.
대한추위가 한창이여서 그날은 날씨가 몹시 찼다. 살을 에이는듯 한 강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작업반탈곡장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닭우리부터 돌아보시였다.
닭우리에서는 얼핏 보아도 100마리가 훨씬 넘는 닭들이 무리를 지어 북데기를 헤집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닭관리공으로부터 닭이 130마리이고 닭알을 하루에 70~80개씩 생산한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이 작업반에서 닭을 130마리 길러 닭알을 하루에 70~80개씩 생산하면 닭 한 마리가 한해에 알을 170~180개씩 낳는것으로 되는데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몸소 계산해보시며 여기서처럼 닭을 기르면 전국의 농촌탈곡장들에서 3억개이상의 닭알을 생산할수 있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종 미소를 거두지 못하시며 이 작업반안의 농촌세대들에서 닭을 몇마리씩 기르고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새해명절전까지는 5마리씩 길렀는데 명절때에 잡아먹고보니 지금은 평균 4마리씩 기르고있으며 이제 얼마 안있으면 5마리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관리공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 닭에게 어떤 동물질먹이를 주는가에 대하여 물으시고 지렁이서식장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키운 지렁이를 먹인다는 관리공의 대답을 들으시고 일군들에게 이 작업반에서 탈곡장 닭우리에 지렁이서식장을 만들어놓고 지렁이를 길러 닭에게 먹이고있는데 이것은 동물질먹이를 해결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하시면서 지렁이서식방법을 모든 작업반과 매 농가들에서 널리 받아들여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업반탈곡장들에서만이 아니라 분조들에서도 밭머리에다 웅뎅이를 파고 지렁이를 길러 닭에게 먹이도록 해야 하겠다고, 봄과 여름, 가을에는 닭을 놓아길러야 한다고, 그래야 닭들이 논밭에 떨어진 낟알도 주어먹고 파리와 메뚜기 같은것도 잡아먹을수 있다고 닭기르기에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에 진행된 가금 및 축산업부문 일군협의회에서 농촌에서 닭기르기운동을 벌릴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닭기르기과제를 구체적으로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가 있은지 며칠후인 주체66(1977)년 1월 29일 또다시 현지에서 평안남도 강동군(당시) 농촌경리부문 일군협의회를 여시고 《닭을 많이 기르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온 나라의 모든 농촌들에서 닭기르기운동이 전군중적운동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세상에는 나라마다 령도자는 있어도 한해치고도 가장 추운 계절에 가금업발전을 위하여 농촌마을을 찾고찾으시며 수첩에 농촌세대수와 탈곡장, 정미공장수까지 헤아려 계산까지 하시며 심혈과 로고를 다 기울이시고 닭을 많이 기를데 대한 문제로 연설까지 하시며 이끌어주신 진정한 인민의 수령은 오직 우리 수령님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