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교수 박사 우향숙
2019.3.1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시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신 장군님과 같으신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인민이 주인된 조선식 사회주의에서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충분한 휴식시간과 휴식조건을 보장받으며 누구나가 휴식의 권리를 마음껏 향유하고있다. 휴식일과 명절날이면 가족, 친척들과 함께 보람찬 삶의 희열을 한껏 느끼며 훌륭하게 꾸려진 극장과 공원, 유희장과 동물원 등 곳곳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공화국의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다.
하지만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불철주야 헌신과 로고를 바쳐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생애의 전 나날에는 진정 휴식일이 없었다. 명절날과 휴식일 지어 만민의 축복을 받으셔야 할 탄생일에도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차창으로 흘러가는 조국의 산과 들, 인민의 밝은 모습에서 기쁨과 락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하루의 휴식도 없이 애국헌신의 장정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휴식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언제인가 수백리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뜩새벽에야 평양에 도착하시였을 때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 먼길에 피곤하시겠는데 좀 쉬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일군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눅잦혀주시려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수백리 먼길을 달려오시고도 자그마한 내색도 없이 오히려 자기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여 웃음지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한 일군들을 정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충분히 쉬였다고 하시면서 나에게는 휴식하는 방법이 두가지인데 하나는 책이나 문건을 보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지에 나가 인민들을 만나보는것이라고 이야기하시였다.
사실 책이나 문건을 보는것과 현지에 나가 인민들속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처리하여야 하는 현지지도는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일이였다.
휴식이라는 말이 생겨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처럼 고도의 긴장을 동반하는 집무를 휴식으로 여겨온 위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서나 당 및 국가수반들치고 정기적인 휴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불철주야 로고를 바치시면서도 언제 한번 휴식일을 정해놓고 쉬신적이 없으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건강이 걱정되시여 그이의 건강을 보장할 여러가지 사려깊은 조치들을 취하여주시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의 휴식만은 보장해드릴수 없었다.
인간의 보통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초인간적인 정력과 강의한 의지력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신 그 무수한 날과 달들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만년토대를 쌓고 인민의 행복과 찬란한 미래를 담보하는 열렬한 애국헌신의 나날이였다.
그 나날에는 선군으로 조국을 지켜주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오성산과 철령, 판문점과 초도, 1211고지 등 위험천만한 최전방초소들에 대한 현지시찰도 있었고 북방의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시며 모진 고난과 시련의 앞장에서 쪽잠과 줴기밥으로 날과 달, 년대와 년대를 이어오신 절세위인의 눈물겨운 강행군길도 있었다.
진정 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이시기에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잠시라도 휴식하시기를 절절히 바라는 온 나라 인민의 간절한 소원을 뒤에 남기시고 인민행렬차에 오르시였던것이다.
한평생 뜨거운 열과 정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사회주의조선을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으로 일떠세우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은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전체 조선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