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은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는데서도 빛나는 전통을 창조한 재능있고 지혜로운 문명한 민족입니다.》 (
조선인민은 예로부터 자기의 창조적로동과 뛰여난 지혜로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빛나는 문화전통을 창조하였다. 특히 고구려의 천문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으며 그 발전상은 고구려사람들이 남긴 문헌기록과 석각천문도, 무덤벽화의 별그림들에 잘 반영되여있다.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고구려의 천문도와 무덤벽화의 별그림들은 모두 지배계급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그려졌지만 거기에는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천문지식과 고상한 미학관, 신앙관념, 민족적감정이 생동하게 반영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세계문화의 보물고에 이바지하고있다.
고구려의 천문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으며 주변나라들과 후세 조선민족국가들의 천문학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였다.
고구려천문학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는것은 첫째로, 천문관측, 천문도작성과 기록이 매우 정확하게 진행된데서 잘 나타난다.
고구려사람들은 정연한 천문관측체계와 시설을 갖추고 별(항성)의 모양과 크기, 밝기는 물론 그 운동상태까지도 정확하게 관측하였으며 그것을 천문도와 별그림들에 훌륭히 표현하였다.
무엇보다먼저 천문관측사업을 매우 정확하게 진행하였다.
우선 천문도와 무덤벽화에 모두 동그라미로 별들을 표시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항성들의 실지모양을 정확하게 관측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항성들의 크기와 밝기등급을 정확하게 표기하였다.
항성들은 크기와 밝기, 떨어져있는 거리에 따라 서로 각이하게 보이며 그에 따라 등급을 설정하고 기록하는것은 항성의 탐색과 관측, 기록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나 무덤벽화 별그림에는 별들이 그 크기와 밝기등급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과 채색으로 다양하게 그려져있다.
고구려무덤벽화의 별그림들을 보면 별을 동그라미로 표시한것과 동그라미안에 ㅅ모양의 무늬를 그린것, 동그라미테두리를 검은색, 붉은색, 보라색으로 돌린것과 테두리를 따로 그리지 않고 바탕색만 칠한것, 동그라미안에 테두리와 다른 색을 칠한것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룡산리1호무덤의 별은 여섯가지의 크기로, 덕화리2호무덤의 별은 세가지로,덕흥리무덤벽화의 별은 네가지의 크기로 그렸다. 그밖의 무덤들에 그려진 별들도 크기를 달리하여 그린것이 많다. 별의 색갈도 덕흥리무덤벽화의것은 붉은색,흰색,푸른색으로 그렸고 덕화리2호무덤의것은 붉은색,흰색,자주색으로 그렸으며 장천1호무덤이나 룡산리1호무덤의것은 노란색과 금분 등으로 그렸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사람들이 별을 크기와 밝기에 따라 여섯가지로 구분하였으며 색갈로도 별들의 밝기를 붉은색, 노란색, 흰색, 푸른색 등으로 갈라서 표시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 현대천문학에서도 별들을 밝기에 따라 여섯가지(맨눈으로 구별할수 있는 별들)로 갈라보고있다.
당시 이웃나라의 천문도들과 별그림들에는 별의 크기나 밝기등급이 전혀 표시되지 않았으며 특히 무덤의 천정에 그려진 별그림들은 그것이 하늘의 세계임을 표현하는 장식적효과만을 내고있는 반면에 고구려의 천문도나 별그림들에 별의 등급을 표현한것은 고구려천문관측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있다.
또한 천체들의 상태를 정확히 관측하였다.
삼국시기의 력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다른 나라의 기록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태양의 흑점과 혜성에 관한 기록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태양흑점관측과 관련하여 영류왕 23년(640년) 9월조에는 《해에 빛발이 없다가 사흘이 지나서야 밝아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태양에 흑점이 나타나서 3일간 계속 있다가 사라졌다는것을 말한다. 여기서 《해에 빛발이 없다》는것은 해뜰 무렵이나 해질무렵에 해가 감색을 띠고있을 때에 그 겉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으로도 발견할수 있는 검은 점들이 많았다는것을 표현한것이다.
이 기록은 우리 나라 천문학사와 세계천문학사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계천문학사에 알려진 태양흑점에 관한 기록들가운데서 579년 4월 3일과 826년 5월 7일사이의 빈자리를 일정하게 메꾸어주었기때문이다.
혜성관측과 관련해서는 민중왕 3년(46년) 11월의 관측기록에 혜성이 남쪽에 나타났다가 20일 지나서야 사라졌다고 썼다. 이 기록도 우리 나라에서 혜성을 제일 먼저 정확하게 관측한 기록으로 될뿐아니라 이 시기 다른 나라의 기록에도 없는것으로서 천문학발전사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고구려사람들은 다음으로 천문도를 매우 정확하게 작성하였다.
그것은 우선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나 무덤벽화의 별그림들이 례외없이 북극투영법에 의한 과학적인 좌표표기법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것을 통하여 알수 있다.
고구려석각천문도와 무덤벽화의 별그림들은 모두 광원을 남극에 두고 적도면을 투영면으로 하는 북극투영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별그림들이다. 고구려사람들은 모든 천체가 북극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돌고있다고 보면서 별그림제작에서 벌써 극좌표*를 리용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천문지식이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 극좌표는 북극과 각수의 기준별(처녀별자리의 α별)을 련결하는 선을 기준선으로 하고 그 선과 북극에서 해당 별을 련결하는 선이 만드는 각도와 북극에서 해당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별의 절대위치를 구하는 수단이다.
별에 대한 절대위치를 극좌표에 기초하여 구하는 방법은 그 당시로서는 말할것도 없고 현대천문학에서도 매우 정확한 방법의 하나로 되고있다.
고구려석각천문도에서 고구려사람들은 그 당시에 구면상에 분포되여있는 별들을 하나의 평면우에 투영하는 정확한 투영법을 사용하였다. 즉 하늘에 분포되여있는 복잡한 천체들의 위치를 차례로 묶어 28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1 463개의 별들의 위치를 해당한 별로부터 《북극까지의 거리》와 별들사이의 적경차인 《분도》를 자리표성분으로 하는 하나의 극자리표계에 의하여 표시하였다. 이러한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는 당시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고 극자리표계에 의하여 북극투영법으로 그린 천문지도로서 그것은 높은 천문학적지식에 수학적 및 기하학적지식이 안받침된 창조물이였다.
고구려사람들이 극좌표를 리용하여 별그림을 그렸다는것은 무덤벽화들에 그려진 별그림을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실례로 춤무덤과 씨름무덤의 별그림은 8각고임천정에 그려졌는데 매개 고임단을 원주로 표시하면 춤무덤은 10개, 씨름무덤은 6개의 동심원으로 된다. 그런데 거기에 그린 별그림을 보면 무덤칸의 천정중심점에서 동쪽에 그린 세발까마귀가 있는 해를 련결하는 선을 기준선으로 하고 그 선과 천정중심에서 해당 별을 련결하는 선이 만드는 각도와 천정중심에서 해당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별의 위치를 선택하여 그렸다. 이것은 무덤에 그린 별그림도 극좌표에 의하여 그렸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또한 덕화리2호무덤의 별그림은 천정중심점에 각수의 기준별을 련결하는 선을 기준으로 하고 천정중심점에서 별을 련결하는 선사이의 각도에 따라 그렸다. 이 무덤에서 28수그림은 8각고임 2단에만 그려져있는데 천정중심점에서 별자리까지의 거리는 무시하면서도 극좌표를 적용하는 능숙한 방법을 사용하고있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무덤벽화의 별그림을 그리는데서도 극좌표를 능숙하게 적용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1년의 길이를 정확히 알고 력을 편찬한것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1회귀년의 길이를 정확히 아는것은 력편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리용되는 력서를 정확히 만들자면 정확한 1회귀년의 길이가 주어져야 한다. 옛날에는 나라와 민족마다 천문학발전수준의 차이로부터 1회귀년의 길이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여 사용하였다. 실례로 당대의 높은 문화발전을 자랑하던 로마에서는 1년의 길이를 304일로 취하고있었다. 이로하여 력서와 계절이 전혀 맞지 않아 생활상 큰 불편을 느끼였다.
※ 당시 로마력서의 혼란상태에 대하여서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가이며 작가인 볼테르가 《로마사령관들은 언제나 승리하였으나 그들은 이 승리가 어느 날에 이루어졌는지 항상 모르고있었다.》라고 한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1회귀년의 길이를 정확히 관측한데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있는것과 거의 가까운 력서를 사용하였다. 석각천문도에는 《주천은 365도로서 그 절반은 지평우에 떠있고 나머지 절반은 보이지 않으며 그 도는 모양이 수레바퀴 돌듯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1년을 365.25일로 규정한것으로서 당시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을뿐아니라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태양력의 1년이 365.242 2일이라는것을 념두에 둘 때 고구려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히 우주를 관찰하고 력을 제작하였는가를 알수 있게 한다.
고구려사람들은 다음으로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표상을 가지고있었으며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고구려무덤벽화들가운데서 지구가 그려진 대표적인 무덤은 덕흥리무덤벽화이다. 무덤의 앞칸 북쪽천정의 가운데부분에 그려진 별은 갈색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연풀색으로 한바퀴 돌려 그렸는데 다른 별보다 현저하게 크고 특색이 있다. 이 옆에는 《地軸一身兩頭》라는 글자가 세로 씌여있는데 이것은 《지축 한몸뚱이에 두개의 머리가 달려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몸뚱이는 지구를 의미하며 두개의 머리는 지구가 북반구와 남반구로 갈라져있는것을 표현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큰 별은 지구를 형상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덕흥리무덤벽화에 있는 지구에 대한 해설문은 당시 고구려사람들이 지구에는 북극과 남극이 있으며 북극과 남극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그 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가며 지구가 둥글다는 표상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짧지만 명백하게 보여주고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으로 되는 지구에 대한 정확한 표현인것으로 하여 세계천문학사에서 특기할 자료로 되며 당시 높이 발전하였던 고구려천문학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천문학의 발전수준이 매우 높았다는것은 둘째로 고구려석각천문도와 무덤벽화 별그림의 내용이 매우 풍부한데서 잘 표현된다.
무엇보다먼저 고구려천문도에는 적도원과 황도원, 은하수가 표시되여있다.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나 일본에서 알려진 기또라고분에 그려진 고구려천문도에는 고조선의 고인돌무덤별자리에는 없었던 북극원과 적도원, 황도원 그리고 은하수를 표시하여 이전 시기보다 높이 발전한 고구려천문학의 발전면모를 과시하고있다.
적도원은 천구(우리를 둘러싼 하늘에 반경이 무한히 큰 가상적인 구가 있어 밤하늘에 보이는 모든 별들을 이 구우에 투영한다고 할 때 이 가상적인 구를 천구라고 한다.)의 중심에 지구가 놓여있다고 할 때 지구의 적도면을 연장하여 천구와 사귀는 선을 말하며 황도원은 지구의 공전자리길면이 천구와 사귀는 선을 말한다. 황도라는 말은 원래 해가 지나가는 길이라는 말이므로 해길이라고도 한다. 천구우에서 적도원과 황도원은 두곳에서 사귀는데 그 두점을 각각 춘분점, 추분점이라고 한다. 황도를 따라 천구를 이동하는 태양이 춘분점에 가닿는 순간이 춘분이며 추분점에 가닿는 순간이 추분이다. 춘분점을 리용하면 천구에서 별의 위치를 알수 있다.
고구려석각천문도에서는 당시 천극(북극점)을 기준점으로 하여 38°의 각거리에 천극의 북극점을 나타내는 북극원을 그렸고 천극으로부터 90°(각거리) 떨어진 위치에 북극원과 동심원으로 적도원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황도원에서 동지점은 적도원밖으로 가장 먼곳에 놓이고 하지점은 적도원안으로 가장 깊이 들어와 놓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적도원에는 적도, 황도원에는 황도라는 글자를 달라주었으며 겹선으로 그려놓았다.
이러한 천문도는 당시의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것이였다.
중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천문도로 전해지는 돈황성도 갑본(8세기로 추정)과 을본(10세기로 추정)들에는 적도원과 황도원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그후 고구려석각천문도와 비슷한 구성체계를 이루고 제작된 천문도는 송나라시기에 가서야 출현하는데 그것이 바로 1247년에 제작된 소주천문도이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천문학이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발전수준에 있었고 고구려사람들이 풍부한 천문지식을 소유하고있었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별그림의 풍부성은 다음으로 고구려의 석각천문도와 무덤벽화의 별그림에 다른 나라의 천문도에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별자리들이 그려져있는것을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그것은 우선 고구려석각천문도에 그려져있는 《팔곡》과 《화개칠》이라는 별자리를 보고 알수 있다. 고구려석각천문도에는 북두칠성의 오른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5각형모양으로 무어진 별자리인 《팔곡》이 있으며(그림 1)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대칭되는 위치에는 활짝 편 부채모양의 《화개칠》이라는 별자리가 있다.(그림 2) 이것은 고구려천문도에만 있는 별자리들로서 고구려사람들의 풍부한 천문지식수준을 잘 말하여준다.
그림 1. 팔곡
그림 2. 화개칠
또한 덕흥리무덤벽화의 《W》자모양의 별자리와 《∧》모양의 별자리, 5개의 행성과 안악1호무덤의 《N》자모양의 별자리들을 보고 알수 있다. 덕흥리무덤벽화의 앞칸 서쪽천정 남쪽에 그려져있는 《W》자모양의 별자리는 현대천문학에서 카시오페아별자리로 불리우는 별자리이다.
※ 1928년에 국제천문학동맹은 신화속의 인물인 고대에티오피아왕후의 이름을 따서 별자리이름을 카시오페아로 명명하였다.
현대천문학에서도 북극성을 찾는데 카시오페아별자리가 북두칠성과 함께 매우 중요한 별자리로 리용되고있다. 이 별자리의 5개별 가운데서 3개의 별(α별, β별,γ별)은 2등성에 가까운 밝은 별들이고 2개의 별(δ별,ε별)은 3등성에 가까운 별이기때문에 북쪽하늘에서 북두칠성과 함께 사람들의 눈에 인차 뜨이는 별자리이다. 그리고 이 별자리는 북극성을 사이에 두고 북두칠성과 대응되는 곳에 위치하고있어 북두칠성이 지평선아래로 내려갈 때에는 이 별자리를 리용하여 북극을 찾는다.
※ 카시오페야성좌의 α별과 β별,δ별과 ε별을 련결한 선분들의 사귐점을 얻고 γ별과 그 사귐점을 지나는 직선의 연장선우에서 γ별로부터 α, β별사이거리의 약 5배되는 위치에서 북극성을 쉽게 찾을수 있다.
덕흥리무덤벽화에 《W》모양으로 된 카시오페아별자리가 특별히 그려져있는것은 고구려시기 우리 선조들이 북극성을 찾는데서 북두칠성과 함께 카시오페아별자리를 적극 리용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카시오페아별자리는 고대시기의 고인돌무덤에도 그려져있어 고조선천문학의 계승관계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천문학발전면모를 잘 보여주고있다.
덕흥리무덤벽화의 앞칸 동벽에 그려진 《∧》모양의 별자리나 천정에 그려진 지구, 수성, 금성, 화성, 목성의 5행성들, 안악1호무덤의 안칸 천정서벽에 그려진 《N》자모양의 별자리도 중국의 천문도나 무덤벽화 별그림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고구려 고유의 행성들과 별자리들이다.
※ 지금까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기와 수당나라시기의 무덤벽화는 근 90기 발굴되였는데 여기서 별그림이 그려진 무덤은 16기정도이며 그나마도 무덤에 그려진 별그림의 거의 전부가 무덤천정이 하늘임을 표현하는 정도의 장식적성격이 매우 강할뿐 당시 사람들의 천문관계지식을 엿볼수 있는 점을 찾기는 어렵다.
이처럼 고구려석각천문도와 무덤벽화의 별그림들은 그 정확성과 풍부성으로 하여 고구려의 천문학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천문학의 발전수준이 매우 높았다는것은 셋째로 백제, 신라를 비롯한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천문학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고구려에서 높이 발전하였던 천문학은 우선 백제와 신라를 비롯한 동족의 나라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였다.
발전된 고구려의 과학기술적성과를 이어받아 백제에서는 천문관측기술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였다. 송산리6호무덤에 묘사된 사신도와 성수도, 룡산리벽화무덤에 그려진 련꽃무늬와 사신도는 고구려의 룡산리1호무덤 등의 벽화내용을 그대로 방불케 한다. 여러 문헌자료에 의하면 백제는 늦어도 6세기이전에는 일관이라는 해와 달, 별에 대한 관측과 계산기록을 담당한 직무와 시간측정을 담당한 루각박사, 력을 만들고 절기를 통보하는 일을 맡은 력박사가 있었다고 한다. 직제이름들에서 알수 있는바와 같이 당시 백제는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시간관측을 체계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에서는 일식, 월식을 비롯한 천체들의 가림현상, 5행성의 운행과 그것들이 낮에 보이는 현상, 혜성과 류성관측 등 넓은 범위에 걸치는 천문관측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였다.
고구려의 천문학은 신라의 천문학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서 발굴된 고구려첨성대터유적은 상부구조물의 평면이 원형 혹은 방형이면서 속이 빈 탑식의 화강석구조물로 볼수 있게 한다. 이러한 구조형식을 갖춘 구조물은 신라의 경주첨성대로서 고구려첨성대터유적의 축조년대보다 약 200년후의것으로 인정되고있다. 이것은 신라의 경주첨성대가 고구려첨성대의 구조형식을 모방한것으로 볼수 있게 하며 따라서 신라천문학발전에 미친 고구려의 영향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의 천문학은 중국대륙에도 영향을 미치였다.
그것은 중국 산동성 제남시 마가장에서 발굴된 북제시기의 도귀무덤(571년)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이 무덤의 천정에는 해와 달, 별그림과 구름무늬가 있는데 천정의 동쪽과 서쪽에는 해와 달이, 북쪽천정에는 북두칠성이, 서남쪽에는 남두륙성이, 동남쪽에는 별 두개가 그려져있다.
위진남북조시기의 다른 무덤벽화들에는 장식적인 별그림이 천정을 가득 채우고있는 반면에 이 무덤에서만 특정한 별자리들을 의도적으로 방위별로 배치하고있는것은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특히 북두칠성과 남두륙성을 북쪽과 남쪽의 방위별자리로 삼고 동쪽과 서쪽에 해와 달을 그려넣어 사방위체계를 표현한 방식은 당시 위진남북조시기의 다른 무덤들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고구려 고유의 별자리구성방식의 하나이다. 이러한 해와 달, 남북두별자리로 표현된 사방위체계는 덕흥리무덤벽화(408년), 씨름무덤, 춤무덤, 세칸무덤, 덕화리1호, 2호무덤 등 많은 고구려무덤벽화들에서 보이고있으며 중국의 도귀무덤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고있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의 천문관과 높은 천문지식이 중국지역 여러 나라들의 천문학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였음을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의 천문학은 바다건너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였다.
그것은 일본에서 발굴된 기또라고분과 다까마쯔고분의 천정에 그려진 별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기또라고분의 천정에 그려져 있는 천문도는 그 형상성과 과학성이 매우 높은것으로 하여 당대의 과학적인 천문도로 인정되고있으며 관측위치가 북위 38~39°로서 평양일대에 있던 고구려첨성대에서 관측기록된 고구려의 천문도를 원본으로 하여 그려졌다고 한다. 다까마쯔무덤의 천정에도 고구려무덤벽화 별그림과 같은 양식의 별그림이 그려져있고 특히 무덤벽면에는 고구려옷차림을 한 인물들이 형상되여있어 고구려의 강한 문화적영향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의 천문학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천문학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려무덤벽화들에 그려진 별그림에는 고구려의 별자리구성방식이 잘 남아있다. 고려의 벽화무덤들가운데서 무덤천정에 별그림이 그려져있는 무덤은 4기로서 경상북도 안동의 서삼동무덤벽화(12세기초), 고려 신종(1198~1204년)의 무덤인 양릉, 31대 경효왕(1351~1374년)릉의 현릉,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서곡리고려무덤벽화들이다. 이 무덤들의 천정에는 모두 북두칠성과 북극3성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고구려말기의 통구사신무덤, 집안4호, 5호무덤의 천정에 그려져있는 북두칠성과 북극3성을 련상케 한다.
당시 중국의 천문도들과 별그림들에서는 하늘의 중심에 북극5성을 그리고있었다. 그러나 고려시기의 벽화무덤천정에 북두칠성과 북극3성이 그려져있는것은 고구려와 고려의 계승관계와 고려의 천문학발전에 미친 고구려천문학의 영향을 엿볼수 있게 한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천문도인 《천상렬차분야지도》의 원본이 고구려의 천문도라는것은 잘 알려져있다. 《천상렬차분야지도》의 발문(설명문)에는 1395년에 제작된 이 석각천문도의 원본은 고구려시기에 만들어진 석각천문도인데 그것이 672년에 류실되였고 그 돌판에 종이를 두고 복사해두었던것이 조선봉건왕조 초기에 발견되였으므로 그것을 대본으로 하여 14세기말의 천문학적실정에 맞게 약간 수정을 가하여 만들었다고 씌여있다.
이것은 고구려의 천문도가 후세의 조선민족국가들에서 천문도작성의 귀중한 원본으로 리용되였으며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고구려천문학을 련면히 계승발전시켰음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고구려의 천문학은 당대로서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후세 조선민족국가들의 천문학발전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중세시기 동방천문학발전의 원형으로, 본보기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