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에 대한 발굴사업은 유물을 찾아내는것으로 그쳐서는 의의가 없습니다. 발굴된 유물이 은을 내도록 하자면 유물을 옳게 정리하고 그에 대한 분석과 종합을 잘하여야 합니다.》 (
지난 시기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많은 원시시대 유적들이 발굴되였다.
최근에 평양시 강동군 향목리에서는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 문화층이 겹놓인 동굴유적이 새로 발굴되였다.
향목리유적은 평양에서 약 40km 떨어진 강동군 향목리에 자리잡고있다.
연구집단은 대동강류역의 강동군 읍, 봉화리, 문흥리, 향목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과정에 2017년 5월 향목리에서 자연동굴을 발견하고 먼저 이 동굴에 대한 시굴을 진행하였다.
시굴과정에 출토된 유물들은 사람이발 5점, 각종 짐승뼈쪼각 40점, 질그릇쪼각 6점, 조가비 7점, 약간의 숯과 재층이다. 숯과 재층은 표토에서부터 시굴깊이의 전구간에 널려있었다.
시굴은 2m 깊이까지 진행되였는데 퇴적층의 두께가 3m이상에 달할것으로 추정되여 발굴을 진행하였다. 유적에 대한 발굴은 2017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진행되였다.
발굴당시 동굴은 심히 풍화되여 많은 부분이 없어졌는데 동굴안에 쌓인 퇴적층은 비교적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발굴결과 동굴퇴적층은 서로 다른 7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퇴적층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석기 16점, 포유동물화석 1 600여점, 포분화석 900여점, 신석기시대의 조선옛류형사람이발 5점, 질그릇쪼각 40여점, 청동기시대의 팽이그릇쪼각 10점, 조가비 12점을 수집하였다. 퇴적층의 구성상태와 발견된 유물상태를 보면 4~5층은 구석기시대 문화층, 6층은 신석기시대 문화층, 7층은 청동기시대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 승리산동굴유적, 금평동굴유적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층으로 된 원시유적들을 적지 않게 발굴하였다. 그러나 한 유적에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들이 차례로 드러난 유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동굴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만이 발굴되였고 룡곡제1호동굴과 청파대동굴유적 등에서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문화층만이 발굴고증되였다.지금까지 발굴된 원시유적들가운데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차례로 드러난 유적은 평안남도 은산군 금평리에서 1979년에 발굴된 동굴유적뿐이다. 그리고 강동일대에서는 주현동유적과 림경산동굴유적들에서 고대조선사람의 선조인 신석기시대의 조선옛류형사람의 유골과 유물들이 발견되였지만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은 발굴되지 않았다.
이번에 강동군 향목리일대에서 새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차례로 겹놓인 동굴유적이 발굴고증됨으로서 우리 민족사의 유구성과 합법칙적발전과정을 보다 풍부한 자료들로 과학적으로 해명할수 있게 되였다.
향목리유적이 형성된 시기를 정확히 밝히기 위하여 구석기시대에 해당되는 4층에 묻혀있던 방해석의 열형광년대를 측정하였다. 방해석시료의 크기는 직경 20cm, 길이 30cm정도로서 열형광년대측정시료로 적합하였다.
방해석과 주위퇴적물시료로부터 측정한 총선량과 년간선량값으로부터 얻은 년대측정결과를 보면 강동군 향목리유적의 4퇴적층에서 나온 방해석의 열형광년대는 34.1±3.8ka이다.
열형광년대측정을 진행한 방해석이 묻혀있던 곳은 구석기시대 퇴적층인 4층이다. 4층은 석회암각력이 20% 섞인 적황색점토와 1~3cm크기의 석영질잔자갈과 석영질모래로 되여있었는데 여기서는 여러점의 석기들과 많은 짐승뼈화석들이 발견되였다.
1~3층까지는 유물이 거의 없었고 4층은 유물이 발견되기 시작한 첫층인것으로 하여 4층에 묻혀있던 방해석의 열형광년대측정결과로부터 이 유적이 형성되기 시작한 첫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3만여년전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