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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대국주의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을 비롯한 반동사가들의 고구려국가력사외곡책동으로 하여 고구려국가의 건국년대와 강대국으로서의 면모, 삼국통일을 위한 투쟁, 건국시조왕릉, 살수위치, 고구려국왕의 수 등 고구려국가력사를 리해하는데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다 혹심하게 외곡날조되였다.
그러나 그릇되게 전해져내려오는 고구려력사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 그에 기초하여 고구려의 력사를 전개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고구려의 력사가 외곡날조되였다는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해명하려는 력사학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민족애의 위대한 화신이시며 걸출한 력사가이신
이 글에서는 대국주의자들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혹심하게 외곡날조되였던 우리 민족의 강대국 고구려의 력사를 바로잡아주시고 빛내여주신
1. 빛을 잃었던 고구려를 천년의 력사를 가진 동방의 첫 봉건국가로 빛내주신
《고구려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훨씬 이전시기부터 강대한 국가로 존재하고있었습니다.》 (
우리 민족의 천년강성대국 고구려국가의 력사를 바로 잡아주시고 빛내여주신
우리 나라의 력사를 외곡하는데 앞장섰던 극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은 우리 나라의 삼국시기력사를 서술한 책《삼국사기》에서 고구려의 건국년대를 B.C.37년으로 조작해놓음으로써 고구려가 동방에서는 주변나라보다 근 200년이나 뒤늦게 봉건국가로 등장하였으며 우리 나라 력사에서는 신라보다 20년이나 늦게 봉건국가로 등장하였다는 실로 흑백을 뒤집어놓는 력사날조행위를 감행하였다. 대국주의사가들을 비롯한 반동사가들은 고구려의 건국년대를 깎아내려 서술한 《삼국사기》의 날조된 기록을 극구 류포시키며 그것을 저들의 국가력사를 내세우고 고구려국가의 력사를 더욱더 외곡날조하는데 유리한 사료로서 적극 리용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동방의 첫 봉건국가로 출현하여 우리 민족의 국가들뿐아니라 주변나라들의 봉건사회발전에 영향을 준 동방의 강성대국 고구려의 실제한 건국년대는 력사의 흑막속에 묻혀버리고말았다.
탁월한 력사가이신
중국의 진나라는 당시 중국대륙에서 령토확장과 침략에 열이 올라 7개나라가 싸움을 벌리던 《전국7웅》의 쟁탈전의 소용돌이속에서 B.C.221년에 6개나라들을 통합하고 중국의 첫 봉건국가로 등장하였으며 B.C.214년에 북방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기위해 연나라와 조나라들이 이미 쌓아놓았던 성들을 련결하는 공사를 벌려놓았다.
천하에서 제일 강하다고 위세를 뽐내던 진나라가 북방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기위해 성을 쌓는다는것은 북방에 진나라를 위협하는 보다 강대한 국가가 존재하고있었다는것을 말하는것이였다.
당시 진나라의 북방에는 오직 고구려외에 그 어떤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있었다면 원시공동체사회의 단계에 머물러있는 소수의 종족들이 있었을뿐이였다. 원시종족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장성을 쌓는다는것은 당시 천하에 제일 강대하다고 하면서 황제국가로 일컬으던 진나라에 있어서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므로 당시 진나라가 북방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은것은 다름아닌 고구려의 공격을 막기 위한것이였다는데 대하여서는 론할 여지가 없는것이다.
B.C.221년에 전중국을 통합한 진나라가 곧 고구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2개나라들이 쌓아놓았던 성과 성들을 련결할 조치를 취한것은 이미 고구려국가가 강대한 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을 실증해주는것이며 결국은 진나라가 서기전에 벌써 고구려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다시말하여 고구려국가는 진나라가 서기전에 이미 존재하고있던 국가로서 건국년대에 있어서 진나라보다 앞선다는것을 의미한다.
실로
고구려의 건국년대가 바로 해명됨으로써 건국시기의 측면에서 대국주의자들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외곡날조되여 전해내려오던 신라위주의 삼국시기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민족의 자랑인 고구려위주의 력사로 바로잡을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