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불멸의 《태양상》창작에 새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자욱

 2019.10.28.

인류미술사는 미술의 다양한 종류와 형태들이 발생발전한 력사적과정이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에는 인간과 생활, 자연의 아름다움을 깊이있게 형상하여 만사람을 감동시킨 시대의 명작들도 적지 않게 태여났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태양상처럼 출현하자마자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 세계미술력사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적은 없었다.

환하게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태양상은 주체혁명위업을 굳건히 이어나가시며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영원히 빛내이시고 숭고한 도덕의리로 만민을 감화시키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창작된 국보중의 국보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선 영결식에 모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환하게 웃으시는 불멸의 태양상으로 형상하도록 몸소 발기하시여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만민의 심장속에 영생하신다는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를 뚜렷이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그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느끼시면서도 어떻게 하면 떠나가신 어버이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시겠는가, 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위대한 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가겠는가 하는 오직 이 한가지 생각으로 심장을 끓이시며 사색에 사색을 거듭해나가시였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대대손손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모셔야 하며 모든 사업을 수령님식대로 해나가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절대불변의 신념이였고 확고한 의지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추모하는 조의행사준비를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평양시내를 돌아보시였다.

그때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정과 경모의 마음이 뜨겁게 발현되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통한 마음과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수령님의 동상을 찾는 사람들의 물결이 낮에 밤을 이어 그칠사이가 없었으며 남녀로소 할것없이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상제가 되여 수령님께 조의를 표시하며 수령님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였다.

만수대동상앞 교양마당에선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비가 내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었으며 교양마당 아래쪽에는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가운데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화환을 드리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네댓명의 청년대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지만 웃옷을 벗어 화환이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있었다.

그 광경을 한참동안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청년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 기특하시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못잊어하는 우리 인민의 끝없는 흠모의 정과 수령님을 대를 이어 영원히 높이 모시려는 전체 인민들의 뜨거운 충정심에서 커다란 힘을 얻으시였으며 깊은 감동을 받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날이 갈수록 어버이수령님을 더욱 그리워하며 조의를 표시하는 경건한 모습과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변함없이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려는 불타는 맹세를 통하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억척의 신념이 간직되여있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결식에 모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형상을 위하여 몸소 사진첩을 펼치시고 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사진문헌들을 한장한장 번져가시며 수령영생에 관한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혀가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영웅 및 모범전투원들과 담화하시는 모습, 전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 어버이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린 강서군 태성리농민들속에 계시는 모습, 1980년대에 새로 건설한 만경대물놀이장을 돌아보시는 모습 등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모습은 어느것이나 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신 태양의 모습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며 승리에 대한 락관에 차넘치신 절세의 위인의 모습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상을 구상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7월 10일 해당 일군들을 만나시여 영결식때 모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준비정형을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영결식때 모실 초상화는 그전에 행사장들에 모시였던 초상화를 성의껏 수복하여 액틀에 검은테를 두르기로 합의한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결식때 모실 초상화는 환히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으로 선정해야 할것 같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사진문헌중에서 몸소 주체75(1986)년 6월 24일 새로 개통된 서해갑문을 부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문헌을 선정해주시고 이 사진문헌을 원본으로 하여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잘 형상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이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보면 수령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할것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10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령구행렬에 모실 초상화로 선정해주신것은 수령영생을 조형예술적으로 훌륭히 해결할수 있게 한 천재적인 미학적발견으로 된다.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에는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천재적인 사상리론가, 걸출한 정치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으로서의 수령님의 위대한 풍모가 그대로 집대성되여있으며 혁명의 준엄한 난국을 언제나 웃음으로 맞받아나가신 필승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 혁명적락관이 조형예술적으로 응축되여있다.

태양의 미소야말로 위대한 수령님의 빛나는 한평생을 거대한 화폭과 깊이로 완벽하게 형상하여 수령영생에 관한 사상을 미술화폭으로 조형예술화할수 있는 태양상의 종자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또한 환하게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태양상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벽하게 형상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7월 11일 만수대창작사에 영결식날에 모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형상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그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7월 13일에는 영결식을 철저히 우리 식으로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수령님의 초상화창작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미술가들은 장군님의 천재적예지가 비껴있는 불멸의 화폭에 심장의 붓자욱을 남기며 창작전투를 힘있게 벌려 3일만에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완성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불멸의 화폭을 창조하기 위하여 미술가들이 낮과 밤이 따로없이 전투를 벌린 72시간은 말그대로 령도자와 창작가들, 전체 인민이 한식솔을 이루고 사는 위대한 민족에게서 발휘되는 힘이 얼마나 무한대하며 어떤 기적을 창조하게 되는가를 뚜렷이 보여준 산증거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가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몸소 현지에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형상한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해가 비치는 곳에서도 보시고 그늘속에서도 보시였으며 가까이에서도 보시고 멀리에서도 보시면서 자그마한 부족점도 있을세라 세심하게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형상한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는 언제나 환하게 웃으시던 수령님의 영상이 강하게 안겨온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모시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어버이수령님과의 영결식을 앞둔 7월 18일 수정완성된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또다시 보아주시고 수령님의 초상화가 나오면 온 평양시민들이 다 울것이며 인민들이 가정에서도 밝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시자고 할것이라고 격정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결식때 환하게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텔레비죤화면으로 공개하면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것이라고, 새로 형상한 수령님의 초상화는 정말 대단한 걸작이라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한없이 경건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계실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실로 위대한 태양의 초상화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최고화신이시며 탁월한 예술의 영재이신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그 종자로부터 구체적인 세부형상, 액틀장식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걸작품으로 완성될수 있었다.

하기에 눈물의 바다, 비애의 바다에 잠겼던 주체83(1994)년 7월 그 비통한 날, 해빛처럼 환하게 웃으시는 태양의 모습을 형상한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령구행렬이 수도의 중심거리에 들어서자 거리가 메도록 늘어선 수백만의 평양시민들과 온 나라 인민들, 세계수억의 텔레비죤시청자들은 금시라도 수령님을 뵈온듯한 강한 충격에 휩싸여 사무친 그리움과 비통함에 솟구치는 눈물을 금치 못하며 삽시에 울음의 바다, 피눈물의 바다를 펼쳤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천만뜻밖의 비보를 접하고 불원천리 평양에 와서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한 세계평화련합공동의장인 《세계일보》사 사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천재적인 예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해낼수 없는것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보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한분만 웃으시고 전세계가 울게 한 이것이야말로 절정의 최절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도자님의 천재적인 예지에 경탄하였다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는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숭고한 화폭이라고 하시면서 영결식 때 모신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가 만사람의 울음을 자아낸것은 력사에 특기할 일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수령영생위업의 장엄한 력사가 개척되던 첫 기슭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창작된 불멸의 태양상은 주체미술의 최고정화로서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자랑하며 길이 전해갈 국보중의 국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