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만경대의 대경사

 2022.2.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지금도 해방후 어머님과 함께 수령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만경대고향집에 들어서던 때의 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7권 376페지)

해방된 조국이 첫 양력설을 맞을 때였다.

온 나라 인민들은 민족재생의 환희에 휩싸여 새 삶에 대한 가슴벅찬 희망과 포부를 안고 뜻깊게 설을 맞이하였다.

만경대의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는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자며느님과 함께 나오신다는 기별을 받게 되시였다.

만경대고향집은 전에없이 활기를 띠고 흥성거렸다.

할머님께서는 아직 보신적 없는 장손며느님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산에서 싸우느라니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하고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시였다. 할아버님께서도 심정은 꼭 같으시였다. 들메나무아지에서 새벽까치가 우짖는 날이면 할아버님께서는 말없이 토방에 나오시여 열려진 사립문을 내다보군 하시였다.

이제 이 사립문으로 항일의 녀장군으로 널리 알려진 장손며느리가 증손자를 앞세우고 들어설것이다. 할아버님께서는 이날도 점도록 토방우에서 서성거리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사랑하는 아드님과 함께 만경대로 향하시는 김정숙동지의 마음도 벅찬 감동으로 설레였다.

김정숙동지께 있어서 만경대는 항일대전의 나날 어느 하루도 잊으신적이 없는 마음의 고향이였다.

만경대로 가시는 이 길은 초행길이였으나 너무도 마음속깊이 자리잡은 고장이여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만경대의 산과 들이 조금도 낯설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김정숙동지께서 아드님과 함께 만경대고향집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는 급히 사립문밖으로 나가시여 증손자분을 부둥켜안으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한참동안 장손며느님과 증손자분을 보시고 감개무량해하시였다.

《우리 집 장손며느리가 새별같은 증손자를 앞세우고 들어오는구나! 오늘이 이 집의 명절이다!》

이러시는 할아버님의 눈가에서도 뜨거운것이 번쩍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할머님과 삼촌어머님께 이끌려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소개를 받으시며 김정숙동지께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큰절을 올리시였다. 친척들에게도 차례로 인사를 드리시였다.

예지로운 얼굴, 정기어린 눈매, 그 어느 구석엔가 이름할수 없는 강직함과 굳세임이 엿보이면서도 끝없이 부드럽고 뜨거운 정이 넘치는 장손며느님의 모습에 할아버님도 할머님도 기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동네사람들도 그이의 부드러우면서도 슬기와 예지에 넘치는 모습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사를 마치시고 아드님을 내세우시였다. 아드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증조할아버님과 증조할머님께 큰절을 드리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절을 받으시다가 그대로 증손자분을 얼싸안으시고 마디굵은 손으로 얼굴이며 어깨를 쓰다듬어주시였다.

《…어쩌면 우리 장군과 이리도 꼭 같은고, 그 험한 세월에도 우리 가문이 이런 영웅동이를 받아안았구나!》

할아버님의 두볼에는 또다시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이어 고향집에서는 소박한 축하연이 있었다. 상에는 고향집과 이웃집들에서 준비한 소박하면서도 성의가 깃든 음식들이 올랐다.

할아버님께서는 《너희들이 큰상을 받지 못했는데 오늘 음식을 큰상으로 생각하거라.》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련하여 가지고오신 술을 할아버님께 부어드리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술잔을 받으시며 흰서리내린 수염을 쓸어만지시였다.

《모진 세상을 이기고 산 보람이 있구나!

장군이 된 손자를 만났지, 오늘은 달같은 장손며느리를 만났지, 우리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내 무릎에 앉히게 되였구나.

이 기쁜 날에 먼저 간 사람들도 눈을 감을게다. 고맙다. 아가야, 네가 와서 오늘은 만경대집이 더 환해지는구나!》

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회심의 이야기를 하시며 잔을 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할아버님, 할머님, 그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제 밝은 세상이 왔으니 만년장수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리시였다.

할머님께서는 《우리야 무슨 고생이 있었겠냐. 그래도 집이라고 지붕을 쓰고 따뜻한 구들에서 지내지 않았느냐. 고생이야 너희들이 했지. 눈우에서 쪽잠을 자고 풀뿌리를 씹으며 15년을 산에서 싸웠으니 그 고생이 오죽했겠느냐.》하시며 장손며느리의 손을 잡고 자꾸 쓰다듬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정한 웃음을 지으시고 할머님을 바라보시며 《할머님께서 고생이 참 많으셨지요. 왜놈경찰과 주구놈들에게 끌려다니시며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고 말씀하시였다.

할머님께서는 생각을 더듬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때에 고생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면서 손자가 있는 곳을 대라고 날뛰였으나 나는 그놈들에게 절대 굽히지 않았다. 비록 배운것은 없었으나 속은 꿋꿋이 살아있었다. 장군인 내 손자가 있는데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였다.

나는 그놈들에게 〈이놈들아! 내 손자가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네놈들이 아무리 날뛰여도 내 손자를 찾지 못할것이다.〉

그랬더니 그놈들이 겁을 먹고 함부로 나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그놈들도 나를 잘못 다쳤다가는 유격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줄 알았던지 감히 더 못되게 굴지 못하더라.

…이제는 모든것이 모질던 지난날의 얘기가 되였구나. 산 사람이야 뭐라느냐! 오늘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사람들이 원통하지…》

할머님께서는 목이 꽉 메시여 더 말씀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닦으시였다. 나라를 찾을 큰 뜻을 품으시고 고향을 떠나신 맏아드님께서 애석하게 돌아가시고 또 셋째 아드님께서 돌아가신지는 벌써 몇해째던가! 사랑하는 며느님과 둘째 손자분마저 이역의 하늘아래 묻히셨다는 소식이 들려온지도 퍼그나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할머님께서는 그 불행을 잊으실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처음 만경대에 오신 날에도 그러하셨지만 이날 이렇게 장손며느리를 앉히시고 증손자분까지 안으시고보니 먼저 간 혈육들이 더욱 그리웠다. 할아버님과 할머님도 방에 모인 친척분들도 모두 눈굽을 닦으시였다.

일가분들의 마음을 가슴아픈 추억으로부터 기쁨에로 돌아오게 하신 분은 어리신 장군님이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로 달려와 안기시며 비오는 날에 또 오자고 조르시였다. 왜 그러는가고 물으시는 어머님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아버지처럼 들메나무에 올라가 무지개를 잡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어리신 장군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수십년전의 일로 된 위대한 수령님의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며 감격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동네어른들이 노래를 청하자 서슴없이 일어나 《유격대행진곡》을 부르시였다. 재청으로 또 혁명가요를 부르시였다. 아무런 주저나 구김새없이 시원스레 일어나 목청껏 노래를 부르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대범한 모습에 사람들은 감격의 박수를 보내였다.

할아버님께서는 《대끝에서 대가 난다고 우리 증손자도 과시 장군감이로다.》 하고 더없이 대견해하시였다. 만경대고향집은 끝없는 기쁨에 싸였다. 그날밤 일가분들과 마을사람들은 격식없이 노래도 불렀는데 삼촌어머님은 강반석녀사께서 자주 부르셨던 《자장가》를 부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삼촌어머님의 권고와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노래를 부르시였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사향가》였다. 그이께서 부르신 노래는 그날 뜻깊은 자리에 참가했던 만경대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만경대의 밤은 깊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밤으로 평양에 돌아가셨다. 모처럼 찾아오신 고향집이였으나 바쁘신 정사때문에 하루밤 편히 쉬고가시지도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만은 아드님과 함께 조부모님들을 모시고 주무시기로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김정숙동지께서 눈을 떠보시니 옆에 눕히였던 아드님의 자리가 비여있었다. 머리를 들어보시니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증손자분을 안으시고 자신의 머리맡에 앉아계시였다.

《네가 깨여났구나. 밤이 깊었다. 더 자거라.》

다심하신 할머님의 말씀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일어나 《할아버님, 할머님! 왜 주무시지 않습니까?》라고 말씀올리자 할아버님께서 다정하게 이르시였다.

《늙은이들은 잠이 없다. 우리 걱정은 말고 더 자거라. 산에서 바위를 베고 자느라 어느 하루 구들신세를 져보았겠느냐!》

그래도 김정숙동지께서 굳이 자리에 누우려 하시지 않자 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네가 어려서 집을 떠나 고생이 많았다더구나. 어린 나이때부터 나라를 찾겠다구 그 한마음 모질게 먹구 억척같이 살아왔다더구나.

나라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어느 집 처마밑이라고 조용할 날이 있었겠느냐! 우리 집에서도 나라를 찾겠다고 숱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어느 하루도 편히 보낸 날이 없었다.

처마에서 락수물이 떨어지는 밤에도 어디 가서 헐벗고 떨지나 않는지 장밤을 뜬눈으로 새웠느니라.

네 시할머니는 빈 물레를 돌리였다. 왜 빈 물레를 돌리는가 물으면 속이 타서 그런다고 하더구나. 그러나 이젠 그것이 다 옛말이 되였다.

애국의 넋을 자랑으로 삼아온 이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데리고 네가 왔구나! 네가 이 집안에 꽃을 피워라. 이 애를 잘 키워 나라의 창창한 대를 잇게 하여라.》

절절하고 뜨겁게 울리는 할아버님의 말씀의 마디마디는 김정숙동지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졌다.

만경대고향집에서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에서 위대한 수령님일가의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풍을 온몸으로 느끼시며 김정숙동지께서는 할아버님의 말씀을 우리 인민과 겨레의 절절한 당부로 가슴깊이 받아안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 혁명일가의 장손며느리로서 력사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감을 더욱 깊이 간직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