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해방된 조선의 첫 애국미헌납운동

 2024.3.5.

지금도 우리는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시여 땅의 노예로 살던 인민이 땅의 주인으로 되는 력사적화폭을 펼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고있다.

토지개혁은 지난날 자기 땅이 없어 등뼈가 휘도록 일하고도 호구지책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우리 농민들을 애국미를 싣고 평양으로 가는 애국자들로 성장하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금 적지 않은 농민들은 김제원농민의 뒤를 이어 현물세를 바치고도 애국미까지 헌납하고있습니다. 이것은 해방전에 착취받고 압박받던 우리 농민들이 나라의 주인된 자각을 안고 새 민주조선건설에 이바지하려는 애국심의 표현이며 토지개혁으로 자기들에게 땅을 분여해준 우리 당과 정부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표시입니다.》

주체35(1946)년 3월 5일은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이 실현된 력사적인 날이다.

토지개혁법령의 발포로 력사적으로 농촌에 깊이 뿌리박혀 농민들의 운명을 롱락하던 착취적인 토지소유관계가 산산이 깨여져나가고 지지리도 못살던 우리 농민들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는 경이적인 사변이 펼쳐졌다.

주체35(1946)년 4월 22일부 《정로》신문은 《토지분배에 오직 감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위대한 수령님께 올린 중화군 간동면(당시) 농민대회의 감사문을 그대로 게재하였다.

《… 김일성장군님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십니다. …토지를 근거삼은 일제의 착취제도는 영영 부서져나가고 밭갈이하는 우리들농민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가지고 밭갈이를 하게 되였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피땀을 뿌리고도 천고마비의 가을이면 피눈물을 거두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농민들은 그해 봄내 여름내 농사를 알심있게 지어 제땅에서 첫 수확을 거두어들였으며 흐뭇한 농사작황으로 기쁨과 행복속에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

한 농민은 자기의 생활에서 일어난 놀라운 전변을 두고 이렇게 토로하였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논 2 400평, 밭 3 000평 그리고 야채, 목화, 감자밭으로 500평을 부친다.

온 집안사람들은 힘을 합하여 한번의 김매기라도 더 하여 평년작이상의 수확을 거두었다.

지금 9명의 식구는 부족없는 생활을 하며 나와 동생들은 여가를 틈타서 공부를 하고있다.》

한뙈기 소작땅마저 지주놈에게 빼앗기고 정든 고향을 눈물속에 떠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농민들이 그토록 가지고싶던 제땅에서 허리가 시큰하도록 농사를 지은 보람을 느끼며 마당가득히 쌓아올린 벼낟가리앞에서 가다듬은 생각이 있었다.

땅은 피땀흘린 농사군들의 진정을 알아준다고 하였으나 이제껏 그 땅은 농민들의 진정을 외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려보시고 그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시였다.

땅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보답의 일념을 안고, 새 조국건설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고싶은 심정으로 농민들은 애국미를 바칠 결심을 하였으며 그 선두에는 재령나무리벌의 김제원농민이 서있었다.

해방전에 피눈물나는 소작살이를 하다가 해방후 3 300평의 토지를 분여받아 평생소원을 풀게 된 그는 첫해 농사에서 많은 소출을 내고 30가마니의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재령군내 농민들은 김제원농민의 모범을 본받아 애국미헌납운동과 량곡수매사업을 힘차게 전개할것을 결정하고 전국의 농민들에게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나설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들은 주체35(1946)년 12월 10일 하루동안에만도 830가마니의 애국미를 국가에 헌납하였으며 주체36(1947)년 1월초까지 전국적으로 1만 8 700여명의 농민들이 애국미헌납운동에 참가하였다.

우리 농민들의 애국열의가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은 당시의 신문에 실린《재령군 나무리벌판에서 농민 김제원동지가 …추켜든 애국지성은 제땅가는 농민들의 마음과 마음에 홰불같이 타올라 애국미헌납운동은 … 치렬히 전개되고있는바 나무리벌판에서 강 하나 사이둔 봉산군 서종면 농민들은 <나무리벌이 있으면 토성벌이 있다. 우리도 김제원선생을 따르자>는 열광적인 구호속에 …열성농민 3백여명이 참가하여 면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성농민대회를 열었다.》라는 기사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애국미를 가득 싣고 평양으로 어서 가자.

이 나라 방방곡곡 그 어디서나 농민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김제원농민을 비롯한 전국의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인민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과 혁명가유자녀들을 공부시킬 만경대혁명학원을 건설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새 조국건설을 힘있게 추동하였다.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단순히 쌀이 아니였다.

지난날 력사밖에 밀려나 굶어죽은 자식을 묻을 한뙈기의 땅도 없어 원한에 몸부림치던 인민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땅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바치는 농민들의 애국심의 결정체였다.

하기에 후에 한 인사가 농민들의 지성이 깃든 애국미로 만경대에 학원교사를 건설한다는 말을 듣고 애국미란 무슨 말인가고 의문을 표시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애국미라는 말을 처음 듣기때문에 잘 모를수 있다고, 우리는 조상대대로 제땅에서 농사를 짓고싶어하는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기 위하여 해방된 이듬해 봄에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였는데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은 나라의 혜택이 너무 고마와서 한해농사를 짓고는 여유량곡을 새 조국을 건설하는데 써달라고 나라에 바치고있다고, 우리는 농민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새 조국건설에 써달라고 보내온 쌀을 애국미라고 부르고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렇듯 우리 농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분여해주신 땅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세기적숙망을 풀고 토지개혁의 열매인 애국미를 바쳐 부강한 새 조국건설에 적극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