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홍영철
2024.3.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며 녀성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세상에는 수십억명에 달하는 녀성들이 있지만 우리 공화국의 녀성들처럼 대를 이어 절세위인들의 축복속에 값높은 삶을 누리는 녀성들은 없다.
일본인으로서 조선인의사와 가정을 이룬 후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공화국공민의 영예를 지니고 보람찬 삶을 누려온 리춘희녀성의 영광넘친 인생을 통해 그것을 더욱 가슴뿌듯이 체감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춘희녀성을 알게 되신것은 주체35(1946)년 10월 중순 어느날 그때까지 개인외과병원을 차려놓고 의사를 해오다가 새 조국건설에 나선 오랜 지식인인 리병훈선생을 처음으로 만나주시던 때였다.
어렵고 복잡한 환경에서 건당, 건국, 건군의 위업을 실현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병훈선생을 만나주시고 우리 나라의 정규무력건설에 앞서 조직된 당시 보안간부훈련대대부병원 원장으로 사업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리병훈선생은 새로운 출발을 할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난 경력에 대하여 특히는 일본인녀성을 안해로 데리고 살아온데 대하여 마음속고충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출발을 하려는 그에게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것이지 일본인민을 반대하는것이 아니라고 깨우쳐주시면서 우리가 선생을 믿는이상 부인도 믿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전달받은 그날 리춘희녀성은 쏟아지는 감격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있어 리춘희녀성은 온갖 시름을 털어버리고 희망에 찬 새 생활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디디게 되였다.
그의 이러한 새 출발을 두고 더없이 기뻐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요구대로 공화국의 공민증을 발급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그래야 공화국공민의 영예를 안고 떳떳하게 살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렬사가족이라고 아껴주시며 그에게 크나큰 은정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리춘희녀성의 가정에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그대로 이어졌다.
리춘희녀성의 가정형편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아들과 사위를 인민경제대학에 보내주시였으며 인민군대에 복무하던 손자와 손녀를 제대시켜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게 하심으로써 할아버지의 뒤를 계속 이어나갈수 있도록 뜨거운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하기에 리춘희녀성은 70고령의 나이에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정치적생명을 받아안게 된 그날 몸은 비록 일본에서 태여난 일본사람이지만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이라고 자기의 심정을 격조높이 토로하였다.
이처럼 리춘희녀성은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가장 큰 행복, 인생의 참다운 삶을 빛내여올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