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민족인재육성의 새 력사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

 2019.8.2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인재육성의 완전한 터전을 마련하시고 우리 식의 인재육성방식으로 민족인재문제해결의 새 력사를 개척하신 탁월한 위인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인테리들의 반제적인 혁명성과 애국심을 믿으시고 그들을 포섭하여 근로인민에게 복무하는 인테리로 만들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으며 그들에게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자기의 기술과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2권 290페지)

나라마다 인재의 밑천과 교육환경, 물질기술적토대가 서로 다르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혁명실천이 다른것만큼 매개 나라와 민족은 제각기 자기 식의 방략을 가지고 인재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조성된 당시의 조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민족인재양성을 새 조국건설의 첫째가는 중대사로 내세우시고 현명하게 이끄시여 민족인재양성의 불멸의 력사를 창조하시였다.

민족인재육성의 새 력사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무엇보다먼저 인재육성사업을 지식인들을 혁명의 주체의 핵심력량으로 키우시는 사업부터 시작하시여 자체의 민족인재육성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신것이다.

해방후 일제의 식민지노예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족인테리가 매우 적었고 주민의 절대다수가 현대문명에서 멀리 뒤떨어졌던 우리 나라의 형편에서 이 문제는 혁명과 건설사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관건적인 문제로 나섰다.

일제의 식민지노예화, 민족우매화정책의 결과로 우리 나라에는 해방후 지식인 특히 공과계통의 대학을 나온 지식인은 전국적으로 12명밖에 안되였다. 그때 지식인은 인구 70만명당 1명에 불과하였다.

우리 나라의 인재밑천은 거의 령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나라에는 단 한개의 대학도 없었으며 교육토대는 더 론할 여지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당시 나라의 경제형편은 연필 한자루 만들어낼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자체의 힘으로 인재문제를 해결한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만일 현대문명국들이 앞서 걸은 방식을 따르자면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가도 자체의 민족인재문제를 해결할수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민족간부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도는 오랜 지식인들을 혁명과 건설에 적극 인입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오랜 지식인들이 대부분 자산계급의 출신으로서 지난날에는 할수 없이 제국주의와 착취계급에게 복무하기는 하였지만 식민지지식인으로서 외래제국주의의 억압과 민족적차별대우를 받았기때문에 반제혁명의식을 가지고있다는것과 공부를 하고 진리를 파악하고있다는 점에서는 사회발전법칙에 따라 선진계급인 로동계급을 위하여 복무할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그들을 대담하게 믿고 교양개조하여 새 사회건설에 적극 참가시키는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지식인들의 반제적인 혁명성과 애국심을 믿으시고 그들을 포섭하여 근로인민에게 복무하는 지식인으로 만들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으며 그들에게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자기의 기술과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사람한사람 금싸래기와 같이 골라내시여 내세워주신 우리의 지식인들은 민족간부육성의 엄지닭이 되여 혁명인재의 대부대를 키우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였다.

민족인재육성의 새 력사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다음으로 민족인재양성기지를 자체의 힘으로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전망성있게 진행하시여 짧은 기간에 자체의 힘으로 민족간부를 육성하기 위한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지식인들을 새 사회건설에 적극 참가시키는것과 함께 새로운 민족인재들을 키워내는데서도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인재양성기지를 꾸리는 사업부터 우리 식으로 독특하게 밀고나가시였는데 종합대학을 먼저 창설하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민족간부양성기지를 확대하여나가도록 하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 3일 교육부문 일군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새 조국건설에 필요한 간부들을 하루빨리 양성하여야 한다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들을 많이 세우는것과 함께 대학들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의 형편에서는 많은 대학을 한꺼번에 세울수 없으므로 종합대학부터 먼저 내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합대학을 창설하는것은 오늘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절실히 필요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종합대학을 창설하면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일할 간부들을 동시에 양성할수 있으며 종합대학을 먼저 창설하면 그것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빠른 기간에 많은 대학을 세울수 있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합대학은 우리 나라의 튼튼한 민족간부양성기지로 될것이며 앞으로 내올 대학들의 모체로 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당시 교육부문에 종사하게 된 일군들중 누구도 우리 나라 형편에서 종합대학을 세울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또 설사 종합대학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먼저 단과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토대를 마련한 다음에 종합대학을 세우게 될것이라고 보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종합적인 민족간부양성기지부터 창설하신것은 우리 나라의 긴박한 민족간부수요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였다.

당시 가는 곳마다에서 민족간부를 요구하였으나 나라에는 필요한 민족간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또한 각 분야의 민족간부들을 양성할수 있는 대학들을 동시에 세울수 있는 조건도 마련되여있지 못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새 조국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민족간부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워지는 대학이 사회생활의 각 분야의 민족간부들을 종합적으로 다같이 양성할수 있는 대학으로 되여야 하였다.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민족간부실태와 장래 과학발전의 요구를 선견지명의 예지로 헤아리시고 나라의 종합적인 민족간부양성기지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대학으로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모체대학, 종합적인 민족간부양성기지로서의 사명과 임무에 맞게 종합대학에 앞으로 여러 단과대학들로 분리될수 있는 기술관계학부들을 종합적으로 예견성있게 설치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단과대학들을 내올수 있는 기초가 충분히 마련된 즉시로 공학부, 농학부, 의학부를 단과대학들로 분리시키도록 하시고 이 대학들에 교원들과 학자들, 대학일군들과 사회과목교원들도 넘겨주며 단과대학들을 도와주도록 하시였다. 이리하여 해방후 3년만인 주체37(1948)년에 벌써 11개의 대학, 주체38(1949)년에는 15개의 대학과 55개의 기술전문학교들에서 수만명의 학생들이 여러 부문의 유능한 민족간부로 자라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간부양성기지창설에서뿐아니라 교육교양사업도 철저히 우리 식으로 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여기서 특징적인것은 주체가 확고히 선 인재, 혁명화, 로동계급화된 인재의 육성이였다. 혁명화, 로동계급화된 민족인재의 육성,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식 인재육성사업의 내용과 근본특성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로인민출신의 새 지식인을 키워내는 첫 시기부터 바로 인재육성사업에서 주체를 세우는것을 교육사업에서의 기본방침으로 내세우고 일관하게 관철하여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독창적인 인재양성의 길이 있었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교육을 통하여 자기 조국과 혁명, 인민에 충실한 주체사상화되고 애국주의화된 인간들로 훌륭히 키워낼수 있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주체적인 인재육성에 관한 사상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인재중시, 과학중시로 빛나게 구현됨으로써 과학으로 당을 받들고 사회주의를 지키고 빛내이며 사회주의조국을 헌신적으로 받들어나가는 혁명인재의 대부대가 자라나고있다.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생을 품들여 부강조국의 든든한 밑천으로 키워주신 우리 나라 민족인재육성에 관한 사상의 근본특징과 위력이 있다.

참으로 력사상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서 민족인재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신것이야말로 우리 조국과 민족의 만년미래를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고귀한 업적중의 업적이다.